<원문>
箴曰不明者。不知也。不知故不行。不行故不明。此所以互言之。此第一層也。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불명(不明)이라는 것(者)은 알지 못함(不知)이다(也). 알지 못하(不知)므로(故) 행하(行)지 못한(不)다. 행하(行)지 못하(不)므로(故) 알지 못한(不明)다. 이것(此)이 그것(之)을 서로(互) 말하(言)는 까닭(所以)이다. 이것(此)이 제일(第一) 층(層)이다(也).
<해석>
경계해 말한다. 불명(不明)이라는 것은 알지 못함이다. 알지 못하므로 행하(行)지 못한다. 행하(行)지 못하므로 알지 못한다. 이것이 서로 말하는 까닭이다. 이것이 첫째 층이다.
<원문>
〇鮮能知味者。所以不行也。道其不行者。不知味之故也。此第二層也。
<직역>
‘능히(能) 맛(味)을 앎(知)이 드물(鮮)다’라는 것(者)은 행하(行)지 않(不)는 까닭(所以)이다(也). ‘도(道) 그(其) 행해지(行)지 않음(不)’이라는 것(者)은 맛(味)을 알(知)지 못함(不)의(之) 까닭(故)이다(也). 이것(此)이 제이(第二) 층(層)이다(也).
<해석>
‘맛을 잘 앎이 드물다’라는 것은 행하(行)지 않는 까닭이다. ‘도(道) 그 행해지(行)지 않음’이라는 것은 맛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것이 둘째 층이다.
<원문>
〇舜其大知也。人皆曰予知二節。承上文而言知也。回之擇乎中庸。白刃可蹈也二節。承上文而言行也。此第三層也。
<직역>
‘순임금(舜)은 아마도(其) 대지(大知)이리라(也)’와 ‘사람들(人)이 모두(皆) 나(予)는 안(知)다고 말한(曰)다’ 두(二) 절(節)은 윗(上) 글(文)을 이(承)으면서(而) 지(知)를 말한(言)다(也). ‘회(回)의(之) 중용(中庸)에서(乎) 고른(擇)다’와 ‘백인(白刃)도 가히(可) 밟(蹈)는다(也)’ 두(二) 절(節)은 윗(上) 글(文)을 이(承)으면서(而) 행(行)을 말한(言)다(也). 이것(此)이 제삼(第三) 층(層)이다(也).
<해석>
‘순임금(舜)은 아마도 뛰어난 지혜(知)를 가진 사람이리라’와 ‘사람들이 모두 나는 안다고 말한다’ 두 절(節)은 윗글을 이으면서 지(知)를 말한다. ‘회(回)의 중용(中庸)에서 고른다’와 ‘서슬이 번쩍이는 칼도 밟을 수 있다’ 두 절(節)은 윗글을 이으면서 행(行)을 말한다. 이것이 셋째 층이다.
<해설>
回之擇乎中庸。의 원문 : 回之爲人也。擇乎中庸。
<원문>
〇費隱章以智愚屬知。以賢不肖屬行。則此節之爲互言明矣。
<직역>
‘비은(費隱)’장(章)은 지우(智愚)로써(以) 지(知)를 잇(屬)고 현불초(賢不肖)로써(以) 행(行)을 잇(屬)는다. 곧(則) 이(此) 절(節) 그것(之)을 서로(互) 말함(言)으로 한(爲)다. 명료하게 드러난(明)다(矣).
<해석>
‘비은(費隱)’장(章)은 지혜로움(知)과 어리석음(禹)로써 지(知)를 잇고 어짊(賢)과 못남(不肖)으로써 행(行)을 잇는다. 곧 이 절(節)을 서로 말하는 것으로 하니 명료하게 드러난다.
<원문>
〇或曰知愚以當世君牧而言。賢不肖以當世學者而言。行道之責。在於君牧。而齊桓晉文之等。過於知而不行。魯昭衞靈之等。過於愚而不行。斯其所以思。舜之大知也。明道之責。在於學者。而老莊揚墨之等。過於高遠。閭巷鄙陋之士。局於流俗。斯其所以美回之力行也。天眼太高。俗眼太卑。蘇東坡之言道之所以不明也。道家太達。法家太近。道之所以不行也。
<직역>
어떤 이(或)가 말하기(曰)를 “지우(知愚) 그것으로써(以) 당세(當世)의 군목(君牧)에 대해 말하(而言)고 현불초(賢不肖) 그것으로써(以) 당세(當世)의 학자(學者)에 대해 말하자면(而言) 도(道)를 행함(行)의(之) 책임(責)은 군목(君牧)에게(於) 있(在)다. 그러나(而) 제나라(齊) 환공(桓)과 진나라(晉) 문공(文)의(之) 무리(等)는 지혜로움(知)에(於) 지나치(過)면서(而) 행하(行)지 않(不)았다. 노나라(魯) 소공(昭)과 위나라(衞) 영공(靈)의(之) 무리(等)는 어리석음(愚)에(於) 지나치(過)면서(而) 행하(行)지 않(不)았다. 이것(斯)이 그(其) 순임금(舜)의(之) 대지(大知)를 생각하(思)는 까닭(所以)이다(也). 도(道)를 밝힘(明)의(之) 책임(責)은 학자(學者)에게(於) 있(在)다. 그러나(而) 노장(老莊)과 양묵(揚墨)의(之) 무리(等)는 멀고 높음(高遠)에(於) 지나치(過)고 일반 민가(閭巷)의 식견이 천박함(鄙陋)의(之) 선비(士)는 세상에 돌아다니는 풍속(流俗)에서(於) 좀스럽게 군(局)다. 이것(斯)이 그(其) 회(回)의(之) 역행(力行)을 기리(美)는 까닭(所以)이다(也). 하늘(天)의 눈(眼)은 너무(太) 높(高)고 속인(俗)의 눈(眼)은 너무(太) 낮(卑)으니 [소동파(蘇東坡)의(之) 말(言)] 도(道)의(之) 알지 못하(不明)는 까닭(所以)이다(也). 도가(道家)는 너무(太) 멀(達)고 법가(法家)는 너무(太) 가까(近)우니 도(道)의(之) 행하(行)지 못하(不)는 까닭(所以)이다(也).
<해석>
어떤 이가 말하기를 “지혜로움(知)과 어리석음(禹)으로 그 시대의 군목(君牧)에 대해 말하고 어짊(賢)과 못남(不肖)으로 그 시대의 학자(學者)에 대해 말하자면 도(道)를 행하(行)는 책임은 군목(君牧)에게 있다. 그러나 제나라(齊) 환공(桓)과 진나라(晉) 문공(文)의 무리는 지나치(過)게 지혜로워(知) 행하(行)지 않았다. 노나라(魯) 소공(昭)과 위나라(衞) 영공(靈)의 무리는 지나치(過)게 어리석어(禹) 행하(行)지 않았다. 이것이 그 순임금(舜)의 뛰어난 지혜(知)를 생각하는 까닭이다. 도(道)를 밝히는 책임은 학자(學者)에게 있다. 그러나 노장(老壯)과 양묵(揚墨)의 무리는 지나치(過)게 멀고 높아서 일반 민가에서 사는 식견이 천박한 선비(士)는 세상에 돌아다니는 풍속에서 좀스럽게 군다. 이것이 그 회(回)의 힘써 행함(行)을 기리는 까닭이다. 하늘(天)의 눈은 너무 높고 속인(俗)의 눈은 너무 낮으니 [소동파(蘇東坡)의 말] 도(道)를 알지 못하(不明)는 까닭이다. 도가(道家)는 너무 멀고 법가(法家)는 너무 가까우니 도(道)를 행하지 못하(不行)는 까닭이다.
<원문>
〇由也兼人故退之。求也退步故進之。師也過之故抑之。商也不及故憂之。皆所以納人於中庸之軌者也。聖人之敎。豈有外於中庸者乎。
<직역>
유(由)는(也) 타인(人)을 아우르(兼)므로(故) 그(之)를 물렸(退)다. 구(求)는(也) 퇴보(退步)하므로(故) 그(之)를 전진시켰(進)다. 사(師)는(也) 그것(之)에 지나치(過)므로(故) 그(之)를 눌렀(抑)다. 상(商)은(也) 미치지 못하(不及)므로(故) 그(之)를 애태웠(憂)다. 모두(皆) 중용(中庸)의(之) 궤도(軌)에(於) 사람(人)을 들인(納)는 방법(所以)이라는 것(者)이다(也). 성인(聖人)의(之) 교(敎)가 어찌(豈) 중용(中庸)에서(於) 밖(外)에 있(有)다는 것(者)인가(乎).
<해석>
유(由)는 타인을 아우르므로 그를 물렸다. 구(求)는 뒤로 물러가므로 그를 전진시켰다. 사(師)는 그것에 지나치(過)므로 그를 눌렀다. 상(商)은 미치지 못하(不及)므로 그를 애태웠다. 모두 중용(中庸)의 궤도에 사람을 들이는 방법이라는 것인데 성인(聖人)의 가르침(敎)이 어찌 중용(中庸) 밖에 있다는 것인가.
<해설>
유(由) : 자로(子路)
구(求) : 염유(冉孺)
퇴보(退步) : 뒤로 물러감
사(師) : 자장(子張)
상(商) : 자하(子夏)
0 개의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