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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8일 금요일

중용자잠 해석 어플을 플레이스토어에 배포했습니다.

 



중용자잠_플레이스토어_바로가기


중용자잠 해석을 어플로 바로 보실 수 있도록 어플로 만들었습니다.
중용자잠은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스스로를 수양하면서 만든 중용의 주석서입니다.



중용자잠 어플의 첫 화면입니다. 
첫 화면은 중용자잠의 인덱스로 구성돼 있으면 클릭으로 해당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중용자잠을 읽다가 하단의 QR코드를 클릭하시면 제 블로그에 와서 세부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문제가 있거나 의문이 있는 내용이라면 언제든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23년 3월 27일 월요일

중용자잠을 한 번 인쇄해봤습니다

​블로그에 올려놨던 중용자잠 해석을 한 번 스프링책자로 프린트 해봤습니다.


표지가 구린 이유는... 개인적으로만 쓸 거라 템플릿 있는 것 중에 하나 골라서 제목만 적어서 그렇습니다.

 

사실 당시에 해석하고 공부할 때는 몰랐는데 양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쪽 표시 안하고 그냥 인쇄해봤는데 3-400페이지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상업적 용도는 아니고 개인적으로 보려고 뽑아봤습니다.

"언제 한 번쯤 해석한 것들을 검토해봐야지" 했는데 그냥 컴퓨터로만 작업하려니생각보다 눈에 피로도가 금방 올라오더군요.

그래서 프린트에 먼저 표시하고 조금씩 수정해보려고 합니다.


​문제는... 두 세장 하는데도 너무 오래 걸리더군요 ㅠ...

거의 3-4시간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볼 부분도 많고 수정할 부분도 많아서인지 이상하게 많이 걸리네요...

현실적으로 블로그 글에 수정작업이 다시 반영되기는 좀 많이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주역사전 공부나 다른 공부들도 조금씩은 해봐야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일단 차근차근 작은 것부터 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주말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중용자잠 59-自箴 (끝)

<원문>

箴曰此節有二義。其一以上天之無聲無臭。明君子之所以化民。不在聲色。而在乎至誠也。其一以上天之無聲無臭。明天道隱微。非目之所能睹。非耳之所能聞。惟其戒愼恐懼。如在其上。如在其左右。故曰至矣。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이(此) 절(節)에 두(二) 의미(義)가 있(有)다. 그(其) 하나(一)는 상천(上天)의(之)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음(無聲無臭)으로써(以) 군자(君子)의(之) 백성(民)을 가르치(化)는 방법(所以)을 밝힌(明)다. 목소리(聲)와 기색(色)에 있(在)지 않(不)고(而) 지극한(至) 성(誠)에(乎) 있(在)다(也). 그(其) 하나(一)는 상천(上天)의(之)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음(無聲無臭)으로써(以) 하늘(天)의 도(道)의 은미(隱微)함을 밝힌(明)다. 눈(目)의(之) 볼(睹) 수 있(能)는 바(所)가 아니(非)다. 귀(耳)의(之) 들(聞)을 수 있(能)는 바(所)가 아니(非)다. 오직(惟) 그(其) 계신(戒愼)과 공구(恐懼)이다. 그(其) 위(上)에 있(在)는 듯하(如)다. 그(其) 좌우(左右)에 있(在)는 듯하(如)다. 그러므로(故) 말하기(曰)를 ‘지극하(至)도다(矣).’


<해석>

경계해 말한다. 이 절(節)에 두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상천(上天)의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음으로 군자(君子)가 백성(民)을 가르치는 방법을 밝힌다. 목소리(聲)와 기색(色)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한 정성(誠)에 있다. 그 하나는 상천(上天)의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음으로 하늘(天)의 도(道)의 희미하(隱)고 자세함(微)을 밝힌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신(戒愼)하고 공구(恐懼)할 뿐이다. 그 위에 있는 듯하고 그 좌우(左右)에 있는 듯하므로 ‘지극하도다’라 말한다.




<원문>

〇倫者。序也理也。如脈理腠理之理毛雖至微。獨是有形之物。故能有倫理次序。可以指數。若上天之載。都無形質。竝無聲臭。其微極矣。聲臭空於形質。故極言無形。而至謂之無聲無臭。


<직역>

윤(倫)이라는 것(者)은 차례(序)이다(也). 이치(理)이다(也). [글의 이치(脈理)나 결합 조직(腠理)의(之) 이(理)와 같(如)다.] 터럭(毛)이 비록(雖) 지극히(至) 작(微)아도 다만(獨) 이것(是)은 형태(形)가 있음(有)의(之) 물(物)이다. 그러므로(故) 윤리(倫理)와 차례(次序)가 있(有)을 수 있(能)다. 가리켜(指) 헤아릴(數) 수 있(可以)다. 상천(上天)의(之) 일(載)은 모두(都) 모양과 성질(形質)이 없(無)고 모두(竝) 소리(聲)와 냄새(臭)가 없(無)어 그(其) 작음(微)이 지극함(極)과 같(若)다(矣). 소리(聲)와 냄새(臭)는 모양과 성질(形質)에(於) 없(空)다. 그러므로(故) 형태(形)가 없(無)다고 간하여 말한(極言)다. 그리고(而) 지극함(至) 그것(之)을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음(無聲無臭)이라 이른(謂)다.


<해석>

윤(倫)이라는 것은 차례이고 이치이다. [글의 이치(脈理)나 결합 조직(腠理)의 이(理)와 같다.] 터럭이 비록 지극히 작아도 다만 이것은 형태(形)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倫理)와 차례(次序)가 있을 수 있고 가리켜 헤아릴 수 있다. 상천(上天)의 일(載)은 모두 모양과 성질이 없고 모두 소리와 냄새가 없어 지극히 작은 것과 같다. 소리와 냄새는 모양과 성질에 없다. 그러므로 형태(形)가 없다고 간하여 말한다. 그리고 지극함(至)을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음이라 이른다.




<원문>

漢書揚雄傳引詩曰上天之縡。顔師古曰縡事也。讀與載同。又說文新附字云縡事也。余謂縡者宰也。宰制萬物。故謂之上天之縡。


<직역>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이 시(詩)를 인용하(引)여 말하기(曰)를 “상천(上天)의(之) 일(縡).”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曰)를 “재(縡)는 일(事)이다(也).” 독(讀)과(與) 재(載)는 같(同)다. 또한(又) 『설문(說文)』의 새로(新) 붙(附)은 글자(字)에서 이르기(云)를 “재(縡)는 일(事)이다(也).” 내(余)가 이르기(謂)를 “재(縡)라는 것(者)은 일(宰)이다(也). 모든 것(萬物)을 재제(宰制)한다. 그러므로(故) 그것(之)을 상천(上天)의(之) 일(縡)이라 이른(謂)다.”


<해석>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이 시(詩)를 인용하여 말하기를 “상천(上天)의 일(縡).”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재(縡)는 일이다.” 독(讀)과 재(載)는 같다. 또한 『설문(說文)』의 새로 붙은 글자에서 이르기를 “재(縡)는 일이다.” 내가 이르기를 “재(縡)라는 것은 일이다.” 모든 것(萬物)을 처리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상천(上天)의 일(縡)이라 이른다.”

중용자잠 59-詩云。德輶如毛。

<원문>

詩云。德輶如毛。

毛猶有倫。

上天之載。無聲無臭。

至矣。

시운。덕유여모。

모유유륜。

상천지재。무성무취。

지의。


<직역>

『시(詩)』에서 이르기(云)를 “덕(德)의 가벼움(輶)이 터럭(毛)과 같(如)다.”

터럭(毛)도 오히려(猶) 순서(倫)가 있(有)다.

“상천(上天)의(之) 일(載)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無聲無臭)다.”

지극하(至)도다(矣).


<해석>

『시(詩)』에서 이르기를 “덕(德)의 가벼움이 터럭과 같다.”

터럭도 오히려 구분할 수 있다.

“상천(上天)의 일(載)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지극하도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不若烝民之詩所言德輶如毛。則庶乎可以形容矣。而又自以爲謂之毛。則猶有可比者。是亦未盡其妙。不若文王之詩所言上天之載無聲無臭。然後乃爲不顯之至耳。

蓋聲臭。有氣無形。在物。最爲微妙。而猶曰無之。故惟此可以形容不顯篤恭之妙。非此德之外。又別有是三等。然後爲至也。

右。第三十三章。子思因前章極致之言。反求其本。復自下學爲己謹獨之事。推而言之。以馴致乎篤恭而天下平之盛。又贊其妙。至於無聲無臭而後已焉。蓋擧一篇之要而約言之。其反復丁寧示人之意。至深切矣。學者其可不盡心乎。

「증민(烝民)」의(之) 시(詩)에서 말한(言) 바(所)는 ‘덕(德)의 가벼움(輶)이 터럭(毛)과 같(如)다’만 못하(不若)니 곧(則) 묘사할(形容) 수 있음(可以)에(乎) 가깝(庶)다(矣). 그리고(而) 또한(又) 스스로(自) 그것(之)을 터럭(毛)이라 이르(謂)니 곧(則) 오히려(猶) 비교할(比) 수 있(可)는 것(者)이 있(有)으니 이것(是) 또한(亦) 그(其) 묘함(妙)을 다하(盡)지 못한(未)다고 여긴(以爲)다. 「문왕(文王)」의(之) 시(詩)에서 말한(言) 바(所)의 ‘상천(上天)의(之) 일(載)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無聲無臭)다’만 못하(不若)니 그러한 뒤(然後)에 비로소(乃) 드러나(顯)지 않음(不)의(之) 지극함(至)으로 삼(爲)을따름이다(耳).

대개(蓋) 소리(聲)와 냄새(臭)는 기(氣)는 있(有)는데 모양(形)이 없(無)어 물(物)에 있(在)는 가장(最) 섬세하고 묘함(微妙)으로 삼(爲)으나(而) 오히려(猶) 그것(之)이 없(無)다고 말했(曰)다. 그러므로(故) 오직(惟) 이것(此)이 드러나(顯)지 않(不)고 공손(恭)을 두터이 함(篤)의(之) 묘함(妙)을 묘사할(形容) 수 있(可以)으니 이(此) 덕(德)의(之) 바깥(外)에 또한(又) 따로(別) 이(是) 세(三) 등급(等)이 있(有)고 그러한 뒤(然後)에 지극함(至)이 됨(爲)은 아니(非)다(也).

오른쪽(右)은 제(第) 삼십삼(三十三) 장(章)이다. 자사(子思)는 앞(前) 장(章)의 극단(極致)의(之) 말씀(言)을 말미암(因)아 그(其) 근본(本)을 자기에게서 찾(反求)고 다시(復) 스스로(自) 하학(下學)을 자기(己)의 홀로(獨)에도 삼감(謹)의(之) 일(事)로 하(爲)고 미루(推)어(而) 그것(之)을 말하(言)여 그것으로써(以) 공손(恭)을 두터이 하(篤)여(而) 천하(天下)가 평안해짐(平)의(之) 대단함(盛)에(乎) 이르게 하(馴致)고 또한(又) 그(其) 묘함(妙)을 기려(贊)서 소리(聲)가 없(無)고 냄새(臭)도 없음(無)에(於) 이른(至) 이후(而後)에야 그쳤(已)다(焉). 모두(蓋) 책의 일부(一篇)의(之) 요점(要)을 들(擧)어(而) 그것(之)을 줄여(約) 말했(言)다. 그(其) 되풀이하(反復)고 간곡하게(丁寧) 사람들(人)에게 보여줌(示)의(之) 뜻(意)이 지극히(至) 깊(深)고 적절하(切)니(矣) 배우(學)는 자(者)가 어찌(其) 마음(心)을 다하(盡)지 않(不)을 수 있(可)겠는가(乎).

중용자잠 58-自箴

<원문>

箴曰文王不大聲以色。惟小心昭事。使民懷德。此愼獨以化育也。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문왕(文王)은 소리(聲)와(以) 기색(色)을 크게 하(大)지 않(不)는다. 오직(惟) 조심히(小心) 밝게 하늘을 섬긴(昭事)다. 백성(民)으로 하여금(使) 덕(德)을 품(懷)게 한다. 이것(此)이 신독(愼獨) 그것으로써(以) 화육(化育)함이다(也).


<해석>

경계해 말한다. 문왕(文王)은 소리(聲)와 기색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조심히 밝게 하늘을 섬기고 백성으로 하여금 덕(德)을 품게 할 뿐이다. 이것이 신독(愼獨)으로 만들어 기르(化育)는 것이다.




<원문>

〇天道不言。而文王不大聲。天道不動。而文王不以色。不動不言。則不覩不聞也。聖人事天以誠。則民亦事君以誠。皆一理也。


<직역>

하늘(天)의 도(道)가 말을 하지 않(不言)는다. 그리고(而) 문왕(文王)은 소리(聲)를 크게 하(大)지 않(不)는다. 하늘(天)의 도(道)가 움직이지 아니한(不動)다. 그리고(而) 문왕(文王)은 기색(色)으로 하(以)지 않(不)는다. 움직이지 아니하(不動)고 말을 하지 않(不言)으니 곧(則) 보이(覩)지 않(不)고 들리(聞)지 않음(不)이다(也). 성인(聖人)이 성(誠)으로써(以) 하늘(天)을 섬김(事) 성하면 곧(則) 백성(民) 또한(亦) 성(誠)으로써(以) 임금(君)을 섬긴(事)다. 모두(皆) 하나(一)의 이치(理)이다(也).


<해석>

하늘(天)의 도(道)가 말을 하지 않듯 문왕(文王)은 소리를 크게 하지 않는다. 하늘(天)의 도(道)가 움직이지 아니하듯 문왕(文王)은 기색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고 말을 하지 않으니 곧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음이다. 성인(聖人)이 정성(誠)으로 하늘(天)을 섬기면 곧 백성(民)도 임금을 정성(誠)으로 임금을 섬긴다. 모두 하나의 이치이다.

중용자잠 58-詩云。予懷明德。不大聲以色。

<원문>

詩云。予懷明德。不大聲以色。

子曰。聲色之於以化民。末也。

시운。여회명덕。부대성이색。

자왈。성색지어이화민。말야。


<직역>

『시(詩)』에서 이르기(云)를 “나(予)는 밝(明)은 덕(德)을 품(懷)는다. 소리(聲)와(以) 기색(色)을 크게 하(大)지 않(不)는다.”

선생님(子)이 말씀하시기(曰)를 “목소리와 얼굴빛(聲色)의(之) 기댐(於) 그것으로써(以) 백성(民)을 가르침(化)은 하위(末)이다(也).


<해석>

『시(詩)』에서 이르기를 “나는 밝은 덕(德)을 품고 소리와 기색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목소리와 얼굴빛에 기대서 백성을 가르치는 것은 하위의 것이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詩。大雅皇矣之篇。引之。以明上文所謂不顯之德者。正以其不大聲與色也。又引孔子之言。以爲聲色。乃化民之末務。今但言不大之而已。則猶有聲色者存。是未足以形容不顯之妙。

시(詩)는 「대아(大雅) 황의(皇矣)」의(之) 편(篇)이다. 그것(之)을 인용하(引)여 그것으로써(以) 윗(上) 글(文)에서 이른바(所謂) 드러나(顯)지 않음(不)의(之) 덕(德)이라는 것(者)은 바로(正) 그것으로써(以) 그(其) 소리(聲)와(與) 기색(色)을 대단하게 여기(大)지 않음(不)을 밝혔(明)다(也). 또한(又) 공자(孔子)의(之) 말씀(言)을 인용하(引)여 소리(聲)와 기색(色)은 곧(乃) 백성(民)을 교화함(化)의(之) 하찮은 일(末務)이라 여긴(以爲)다. 지금(今) 단지(但) 그것(之)을 대단하게 여기(大)지 않음(不)이라 말했(言)을뿐(而已)이라면 곧(則) 오히려(猶) 소리(聲)와 기색(色)이라는 것(者)이 있음(存)이 있(有)으니 이것(是)은 드러나(顯)지 않음(不)의(之) 묘함(妙)을 묘사하기(形容)에 충분하(足以)지 않(未)다. 


『중용장구(中庸章句)』는 원래 아래와 붙어 있는데 임의로 쪼갰다.

중용자잠 57-自箴

<원문>

箴曰不顯者。誠也愼獨也。義與上節同。天道不顯而君子戒愼。故君德不顯。而百辟儀刑。亦天人感應之妙。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드러나(顯)지 않(不)는다’라는 것(者)은 성(誠)이다(也). 신독(愼獨)이다(也). 의미(義)가 윗(上) 절(節)과(與) 같(同)다. 하늘(天)의 도(道)가 드러나(顯)지 않(不)아도(而) 군자(君子)는 계신(戒愼)한다. 그러므로(故) 임금(君)의 덕(德)은 드러나(顯)지 않(不)아도(而) 여러 제후(百辟)의 본보기(儀刑)이다. 또한(亦) 하늘(天)과 사람(人)의 감응(感應)의(之) 묘함(妙)이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드러나지 않는다’라는 것은 정성(誠)이고 신독(愼獨)이다. 의미가 윗 절(節)과 같다. 하늘(天)이 도(道)가 드러나지 않아도 군자(君子)는 계신(戒愼)한다. 그러므로 임금의 덕(德)은 드러나지 않아도 여러 제후의 본보기이다. 또한 하늘(天)과 사람(人)이 반응하는 것의 정교함이다.

중용자잠 57-詩曰。不顯惟德。百辟其刑之。

<원문>

詩曰。不顯惟德。百辟其刑之。

是故。君子篤恭而天下平。

시왈。불현유덕。백벽기형지。

시고。군자독공이천하평。


<직역>

『시(詩)』에서 말하기(曰)를 “드러나(顯)지 않(不)은 이(惟) 덕(德)을 여러 제후들(百辟)이 마땅히(其) 그것(之)을 본받(刑)으리라.”

그러므로(是故) 군자(君子)는 공손(恭)을 두터이 하(篤)면서(而) 천하(天下)를 평정한(平)다.


<해석>

『시(詩)』에서 말하기를 “드러나지 않은 이 덕(德)을 여러 제후들이 마땅히 본받으리라.”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공손을 두터이 하면서 천하(天下)를 평정한(平)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詩。周頌烈文之篇。不顯。說見二十六章。此。借引以爲幽深玄遠之意。承上文。言天子有不顯之德。而諸侯法之。則其德愈深而效愈遠矣。篤。厚也。篤恭。言不顯其敬也。篤恭而天下平。乃聖人至德淵微自然之應。中庸之極功也。

시(詩)는 「주송(周頌) 열문(烈文)」의(之) 편(篇)이다. 불현(不顯)은 해설(說)이 이십육(二十六) 장(章)에 보이(見)니 여기(此)에서 빌려(借) 인용하(引)여 그것으로써(以) 깊숙하고 그윽하(幽深)면서 깊숙하고 멂(玄遠)의(之) 뜻(意)으로 삼(爲)았다. 윗(上) 글(文)을 연결하(承)여 천자(天子)가 드러나(顯)지 않음(不)의(之) 덕(德)이 있(有)어(而) 제후(諸侯)가 그것(之)을 따르(法)면 곧(則) 그(其) 덕(德)이 더욱(愈) 깊(深)어(而) 공로(效)가 더욱(愈) 멂(遠)을 말한(言)다(矣). 독(篤)은 두터움(厚)이다(也). 독공(篤恭)은 그(其) 공경(敬)이 드러나(顯)지 않음(不)을 말한(言)다(也). 공경(恭)을 두터이 해(篤)서(而) 천하(天下)가 평안해짐(平)은 곧(乃) 성인(聖人)의 지극한(至) 덕(德)이 깊(淵)고 작(微)고 스스로 그러함(自然)의(之) 반응함(應)이니 중용(中庸)의(之) 지극한(極) 공로(功)이다(也).

중용자잠 56-自箴

<원문>

箴曰奏詩作鬷。毛傳曰鬷者總也。輻輳流湊。字皆從奏。奏亦總也。奏假無言者。謂萬民總格于無言之化也。七引詩。上三自修也。下三民化也。末一天載也。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주(奏)는 『시(詩)』에서 모임(鬷)으로 한(作)다. 『모전(毛傳)』에서 말하기(曰)를 “종(鬷)이라는 것(者)은 모임(總)이다(也). 부(輻)와 주(輳)와 류(流)와 주(湊)라는 글자(字)는 모두(皆) 주(奏)를 따른(從)다. 주(奏) 또한(亦) 모임(總)이다(也).” ‘모여(奏) 이르(假)니 말(言)이 없(無)다’는 것(者)은 모든 백성(萬民)이 말(言)이 없음(無)의(之) 교화(化)에(于) 모여(總) 오게 함(格)이라 이른(謂)다(也). 시(詩)를 일곱 번(七) 인용하(引)니 위(上) 세 번(三)은 스스로(自) 닦음(修)이다(也). 아래(下) 세 번(三)은 백성(民)을 가르침(化)이다(也). 마지막(末) 한 번(一)은 하늘(天)의 일(載)이다(也).


<해석>

경계해 말한다. 주(奏)는 『시(詩)』에서 모임으로 한다. 『모전(毛傳)』에서 말하기를 “종(鬷)이라는 것은 모임이다. 부(輻)와 주(輳)와 류(流)와 주(湊)라는 글자는 모두 주(奏)를 따른다. 주(奏)도 모임이다.” ‘모여 이르니 말(言)이 없다’는 것은 모든 백성이 말(言) 없는 교화에 모여 오게 함이라 이른다. 시(詩)를 일곱 번 인용하니 위 세 번은 스스로 닦는 것이고 아래 세 번은 백성을 가르치는 것이고 마지막 한 번은 하늘(天)의 일(載)이다.




<원문>

箴曰愼獨則致中和。致中和則成位育之功。故曰民勸民威也。上文云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신독(愼獨)하면 곧(則) 치중화(致中和)한다. 치중화(致中和)하면 곧(則) 위육(位育)의(之) 공로(功)를 이룬(成)다. 그러므로(故) 말하기(曰)를 ‘민권(民勸)’과 ‘민위(民威)’이다(也). 윗(上) 글(文)에서 이르기(云)를 ‘그(其) 성(性)을 다할(盡) 수 있(能)다면 곧(則) 사람(人)의(之) 성(性)을 다할(盡) 수 있(能)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신독(愼獨)하면 곧 중화(中和)에 이른다. 중화(中和)에 이르면 곧 자리잡고 자라(位育)는 공로를 이룬다. 그러므로 ‘백성(民)이 힘쓴(勸)다’와 ‘백성(民)이 두려워한(威)다’라 말한다. 윗 글에서 이르기를 윗 글에서 이르기를 ‘그 성(性)을 다할 수 있다면 곧 사람(人)의 성(性)을 다할 수 있다.’




<원문>

〇君子事天。不動而敬。不言而信。故小民事君子。亦不賞而勸。不怒而威。此天人感應之妙。


<직역>

군자(君子)는 하늘(天)을 섬긴(事)다. 움직이(動)지 않(不)으나(而) 공경한(敬)다. 말하(言)지 않(不)으나(而) 믿(信)는다. 그러므로(故) 평민(小民)이 군자(君子)를 섬김(事) 또한(亦) 상주(賞)지 않(不)아도(而) 힘쓴(勸)다. 성내지 아니하(不怒)여도(而) 두려워한(威)다. 이것(此)이 하늘(天)과 사람(人)의 감응(感應)의(之) 묘함(妙)이다.


<해석>

군자(君子)는 하늘(天)을 섬긴다. 움직이지 않으나 공경한다. 말하지 않으나 믿는다. 그러므로 평민이 군자(君子)를 섬김도 상주지 않아도 힘쓴다. 성내지 않아도 두려워한다. 이것이 하늘(天)과 사람(人)이 반응하는 것의 정교함이다.

중용자잠 56-詩曰。奏假無言。時靡有爭。

<원문>

詩曰。奏假無言。時靡有爭。

是故。君子不賞而民勸。不怒而民威於鈇鉞。

시왈。주격무언。시미유쟁。

시고。군자불상이민권。불노이민위어부월。


<직역>

『시(詩)』에서 말하기(曰)를 “모여(奏) 이르(假)나 말(言)이 없(無)다. 그 때에(時)도 다툼(爭)이 있(有)지 않(靡)다.”

그러므로(是故) 군자(君子)가 상을 주(賞)지 않(不)아도(而) 백성(民)이 힘쓴(勸)다. 성내(怒)지 않(不)아도(而) 백성(民)이 도끼(鈇鉞)보다(於) 두려워한(威)다.


<해석>

『시(詩)』에서 말하기를 “모여 이르나 말(言)이 없다. 그 때에도 다툼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상을 주지 않아도 백성이 힘쓰고 성내지 않아도 백성이 도끼보다 두려워한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詩。商頌烈祖之篇。奏。進也。承上文而遂及其效。言進而感格於神明之際。極其誠敬。無有言說而人自化之也。威。畏也。鈇。莝斫刀也。鉞。斧也。

시(詩)는 「상송(商頌) 열조(烈祖)」의(之) 편(篇)이다. 주(奏)는 나아감(進)이다(也). 윗(上) 글(文)을 연결하(承)면서(而) 드디어(遂) 그(其) 공로(效)에 미친(及)다. 말하자면(言) 나아가(進)면서(而) 하늘과 땅의 신령(神明)에(於) 느껴(格) 다다름(格)의(之) 즈음(際)에 그(其) 참됨(誠)과 공경(敬)을 지극히 하(極)여 설명하는 말(言說)이 있(有)지 않(無)아도(而) 사람들(人)이 스스로(自) 그것(之)에 교화된(化)다(也). 위(威)는 두려워함(威)이다(也). 부(鈇)는 여물(莝)을 자르(斫)는 칼(刀)이다(也). 월(鉞)은 도끼(斧)이다(也).

중용자잠 55-自箴

<원문>

箴曰相在爾室者。愼獨也。天道不動。而君子不弛其敬。此戒愼乎其所不睹也。天道不言。而君子不壞其信。此恐懼乎其所不聞也。此本胡雲峰之說。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네(爾) 거처(室)에 있음(在)을 본(相)다’는 것(者)은 신독(愼獨)이다(也). 하늘(天)의 도(道)는 움직이지 않(不動)는다. 그러나(而) 군자(君子)는 그(其) 공경(敬)을 늦추(弛)지 않(不)는다. 이것(此)이 ‘그(其) 보(睹)지 못하(不)는 바(所)에서(乎) 계신(戒愼)한다’이다(也). 하늘(天)의 도(道)는 말을 하지 않(不言)는다. 그러나(而) 군자(君子)는 그(其) 믿음(信)을 무너뜨리(壞)지 않(不)는다. 이것(此)이 ‘그(其) 듣(聞)지 못하(不)는 바(所)에서(乎) 공구(恐懼)한다’이다(也). [이것(此)은 호운봉(胡雲峰)의(之) 말씀(說)에 근거한(本)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네 거처에 있음을 본다’는 것은 신독(愼獨)이다. 하늘(天)의 도(道)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군자(君子)는 그 공경을 늦추지 않는다. 이것이 ‘그 보지 못하는 바에서 계신(戒愼)한다’이다. 하늘(天)의 도(道)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군자(君子)는 그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이것이 ‘그 듣지 못하는 바에서 공구(恐懼)한다’이다. [이것은 호운봉(胡雲峰)의 말씀에 근거한다.

중용자잠 55-詩云。相在爾室。尚不愧於屋漏。

<원문>

詩云。相在爾室。尚不愧於屋漏。

故君子不動而敬。不言而信。

시운상재이실。상불괴우옥루。

고군자부동이경。불언이신。


<직역>

『시(詩)』에서 이르기(云)를 “네(爾) 거처(室)에 있음(在)을 보(相)아도 또한(尚) 가장 깊숙한 곳(屋漏)에서(於)도 부끄러워하(愧)지 않(不)다.”

그러므로(故) 군자(君子)는 움직이(動)지 않(不)으나(而) 공경하(敬)고 말하(言)지 않(不)으나(而) 믿(信)는다.


<해석>

『시(詩)』에서 이르기를 “네가 거처에 있다고 생각해보아도 가장 깊숙한 곳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움직이지 않으나 공경하고 말하지 않으나 믿는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詩。大雅抑之篇。相。視也。屋漏。室西北隅也。承上文。又言君子之戒謹恐懼。無時不然。不待言動而後敬信。則其爲己之功。益加密矣。故下文。引詩。幷言其效。

시(詩)는 「대아(大雅) 억(抑)」의(之) 편(篇)이다. 상(相)은 봄(視)이다(也). 옥루(屋漏)는 집(室)의 서북(西北)쪽 모퉁이(隅)이다(也). 윗(上) 글(文)을 연결하(承)여 또한(又) 군자(君子)의(之) 경계하(戒)고 삼가(謹)고 공구(恐懼)함이 때마다(時) 그렇지 아니함(不然)이 없(無)고 말(言)과 행동(動)을 기다린(待) 이후(而後)에야 공경하(敬)고 믿음(信)이 아니(不)니 곧(則) 그(其) 자기(己)를 위함(爲)의(之) 공로(功)가 더욱(益) 자세함(密)을 더함(加)을 말한(言)다(矣). 그러므로(故) 아랫(下) 글(文)에서 시(詩)를 인용해(引)서 그(其) 공로(效)를 아울러(幷) 말한(言)다.

중용자잠 54-自箴

<원문>

箴曰潛雖伏矣。亦孔之昭者。微之顯也。天道微而顯。故君子愼其獨。愼其獨。故內省不疚。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가라앉(潛)아 오직(雖) 엎드린(伏)다(矣). 그래도(亦) 그것(之)을 통하(孔)여 밝힌(昭)다’라는 것(者)은 미(微)의(之) 드러남(顯)이다(也). 하늘(天)의 도(道)는 미(微)하면서(而) 드러난(顯)다. 그러므로(故) 군자(君子)는 그(其) 홀로(獨)에도 삼간(愼)다. 그(其) 홀로(獨)에도 삼가(愼)므로(故) 내성불구(內省不疚)한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가라앉아 오직 엎드린다. 그래도 그것을 통하여 밝힌다’라는 것은 자세한 것(微)이 드러남이다. 하늘(天)의 도(道)는 자세하(微)면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그 홀로(獨)에도 삼간(愼)다. 그 홀로(獨)에도 삼가(愼)므로 자기자신을 되돌아보아 마음속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원문>

〇朱子曰無惡於志。猶言無愧於心。


<직역>

주자(朱子)가 말하기(曰)를 “‘뜻(志)에(於) 부끄러움(惡)이 없(無)다’는 마음(心)에(於) 부끄러움(愧)이 없(無)다고 말함(言)과 같(猶)다.”


<해석>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뜻(志)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마음(心)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용자잠 54-詩云。潛雖伏矣。亦孔之昭。

<원문>

詩云。潛雖伏矣。亦孔之昭。

故君子內省不疚。無惡於志。君子之所不可及者。其唯人之所不見乎。

시운。잠수복의。역공지소。

고군자내성불구。무오어지。군자지소불가급자。기유인지소불견호。


<직역>

『시(詩)』에서 이르기(云)를 “가라앉(潛)아 오직(雖) 엎드린(伏)다(矣). 그래도(亦) 그것(之)을 통하(孔)여 밝힌(昭)다.”

그러므로(故) 군자(君子)는 자기자신을 되돌아보아 부끄러움이 없(內省不疚)고 뜻(志)에(於) 부끄러움(惡)이 없(無)다. 군자(君子)의(之) 미칠(及) 수 없(不可)는 바(所)라는 것(者)은 아마도(其) 오직(唯) 사람(人)의(之) 보(見)지 못하(不)는 바(所)이리라(乎).


<해석>

『시(詩)』에서 이르기를 “가라앉아 오직 엎드린다. 그래도 그것을 통하여 밝힌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자기자신을 되돌아보아 부끄러움이 없고 뜻에 부끄러움이 없다. 군자(君子)가 미치지 못하는 바라는 것은 아마도 오직 사람의 보지 못하는 바이리라.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詩。小雅正月之篇。承上文。言莫見乎隱。莫顯乎微也。疚。病也。無惡於志。猶言無愧於心。此。君子謹獨之事也。

시(詩)는 「소아(小雅) 정월(正月)」의(之) 편(篇)이다. 윗(上) 글(文)을 연결하(承)여 어두운 곳(隱)보다(乎) 잘 나타남(見)이 없(莫)고 작은 일(微)보다(乎) 잘 드러남(顯)이 없음(莫)을 말한(言)다(也). 구(疚)는 병(病)이다(也). 무오어지(惡於志)는 마음(心)에(於) 부끄러움(愧)이 없음(無)을 말함(言)과 같(猶)다. 이것(此)은 군자(君子)의 홀로(獨)에도 삼감(謹)의(之) 일(事)이다(也).


<해설>

『심경밀험(心經密驗)』 - 일부 발췌

詩曰潛雖伏矣。亦孔之昭。故君子內省不疚。

西山曰處幽如顯。視獨如衆。反之於己。無所疚惡。

〇案顯微者所以論鬼神之體。而先儒解之爲所處之室。愼獨者所以戒獨知之事。而先儒解之爲獨處之地。其所差不小。人之行惡。未必每在於隱辟之處。人之行惡。未必皆在於獨處之室。人之行惡。未必皆微細之事。聖人所戒。豈如是偏而不全哉。人於宗廟朝廷之上。光顯高明之地。正其顔色。善其辭令。以行其志之所欲爲。而乃其所行。或殉私而滅公。或樹黨而立威。或戕賢而害民。若是者獨非所謂小人之行惡乎。其運心役智。憸邪陰險。人以爲忠。而自知其奸者甚多。若是者非所謂人所不知而已所獨知乎。先儒於閑居屋漏諸文。看得有差。遂以愼獨爲獨處。

『시(詩)』에 말하기(曰)를 “가라앉(潛)아 오직(雖) 엎드린(伏)다(矣). 그래도(亦) 그것(之)을 통하(孔)여 밝힌(昭)다.” 그러므로(故) 군자(君子)는 자기자신을 되돌아보아 마음 속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内省不疚)다.

서산(西山)이 말하기(曰)를 “어두운 곳(幽)에 머무름(處)이 나타남(顯)과 같(如)고 홀로(獨) 봄(視)이 무리(衆)와 같(如)다면 자기(己)에서(於) 그것(之)을 돌이킴(反)이 근심함(疚)과 부끄러워하(惡)는 바(所)가 없(無)다.

상고건대(案) 미(微)를 드러냄(顯)이라는 것(者)은 귀신(鬼神)의(之) 체(體)를 논하(論)는 방법(所以)이다. 그러나(而) 선유(先儒)는 풀이(解) 그것(之)을 처하는 곳(所處)의(之) 방(室)으로 했(爲)다. 신독(愼獨)이라는 것(者)은 혼자만 깨달아 앎(獨知)의(之) 일(事)를 경계하(戒)는 방법(所以)이다. 그러나(而) 선유(先儒)는 풀이(解) 그것(之)을 홀로 거처함(獨處)의(之) 곳(地)으로 했(爲)다. 그(其) 어긋난(差) 바(所)가 작(小)지 않(不)다. 사람(人)의(之) 악(惡)을 행하(行)면 반드시(必) 늘(每) 숨(隱)고 피함(辟)의(之) 곳(處)에(於) 있(在)음은 아니(未)다. 사람(人)의(之) 악(惡)을 행함(行)은 반드시(必) 모두(皆) 홀로 거처함(獨處)의(之) 방(室)에(於) 있(在)음은 아니(未)다. 사람(人)의(之) 악(惡)을 행함(行)은 반드시(必) 모두(皆) 미세(微細)의(之) 일(事)은 아니(未)다. 성인(聖人)의() 경계하(戒)는 바(所)가 어찌(豈) 이렇게(如是) 치우치(偏)면서(而) 완전하지 않(不全)은가(哉). 사람(人)은 종묘(宗廟)<조선(朝鮮) 시대(時代)에, 역대(歷代) 임금과 왕비(王妃)의 위패(位牌)를 모시던 왕실(王室)의 사당(祠堂)>와 조정(朝廷)<나라의 정치(政治)를 의논(議論), 집행(執行)하던 곳>의(之) 위(上)와 밝게 드러남(光顯)과 고상하고 현명함(高明)의(之) 곳(地)에서(於) 그(其) 안색(顔色)<얼굴 빛>을 바르게하(正)고 그(其) 응대하는 말(辭令)을 잘하(善)여 그것으로써(以) 그(其) 뜻(志)의(之) 하(爲)고자 하(欲)는 바(所)를 행한(行)다. 그러나(而) 이에(乃) 그(其) 행하(行)는 바(所)가 혹(或) 사사로움(私)을 추구하(殉)면서(而) 공적인 것(公)을 없애(滅)고 혹(或) 당파를 세우(樹黨)면서(而) 위엄(威)을 세우(立)고 혹(或) 어진 사람(賢)을 죽이(戕)면서(而) 백성을 해롭게 한(害民)다. 이와 같(若是)은 것(者)은 다만(獨) 소위(所謂) 소인(小人)의(之) 악(惡)을 행함(行)이 아닌(非)가(乎). 그(其)가 마음(心)을 움직이(運)고 재능(智)을 부려(役)서 간사하(憸邪)고 음험(陰險)<내흉스럽고 우악함>하면 다른 사람(人)은 충(忠)으로 여기(以爲)나(而) 스스로(自) 그(其) 간사한(奸) 사람(者)임을 앎(知)이 매우 많(甚多)다. 이와 같(若是)은 것(者)이 소위(所謂) 다른 사람(人)이 알지 못하(不知)는 바(所)이나(而) 자기(已) 혼자만 깨달아 아(獨知)는 바(所)가 아닌(非)가(乎). 선유(先儒)는 한거(閑居)와 옥루(屋漏) 등 여러(諸) 글(文)에서(於) 보(看)고 얻음(得)에 어긋남(差)이 있(有)어 드디어(遂) 신독(愼獨)으로써(以) 홀로 거처함(獨處)으로 했(爲)다.



若是者非所謂人所不知而已所獨知乎에서 已는 己이다. [한국고전종합DB는 수정하지 않음]

중용자잠 53-自箴

<원문>

箴曰衣錦尙絅者。誠也愼獨也。君子愼獨。故闇然而日章。小人欺人。故的然而日亡。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비단옷을 입(衣錦)고 홑옷(絅)을 더하(尙)네’라는 것(者)은 성(誠)이다(也). 신독(愼獨)이다(也). 군자(君子)는 신독(愼獨)한다. 그러므로(故) 어렴풋하고 애매하(闇然)면서(而) 나날이(日) 나타난(章)다. 소인(小人)은 사람을 속인(欺人)다. 그러므로(故) 분명하(的然)면서(而) 나날이(日) 없어진(亡)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더하네’라는 것은 정성(誠)이고 신독(愼獨)이다. 군자(君子)는 신독(愼獨)하므로 어렴풋하고 애매하면서 나날이 나타난다. 소인(小人)은 사람을 속이므로 분명하면서 나날이 없어진다.




<원문>

〇溫者不嚴酷也。理者。文理也條理也。君子不必嚴酷。而自然有文理條理。


<직역>

온(溫)이라는 것(者)은 엄격하고 모질(嚴酷)지 아니함(不)이다(也). 이(理)라는 것(者)은 글의 조리(文理)이다(也). 일의 두서(條理)이다(也). 군자(君子)는 엄격하고 모질(嚴酷) 필요 없(不必)다. 그리고(而)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글의 조리(文理)와 일의 두서(條理)가 있(有)다.


<해석>

온(溫)이라는 것은 엄격하고 모질지 않은 것이다. 이(理)라는 것은 글의 조리이고 일의 두서이다. 군자(君子)는 엄격하고 모질 필요 없다. 그리고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문맥과 일의 두서가 있도록 한다.




<원문>

箴曰上天玄遠而臨于屋漏。日監在玆。則知遠之近也。自起者風。而主張噓翕。必有其故。顯造化之跡。未有明於風者。則知風之自也。風者。物之所以感動也。天道隱微而鳶飛魚躍。功化至著。則知微之顯也。能此三知。則必愼其獨。故曰可與入德矣。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상천(上天)은 깊숙하고 멀(玄遠)면서(而) 방의 귀퉁이(屋漏)에서(于) 내려다본(臨)다. 해(日)의 살핌(監)이 여기(玆)에 있(在)다. 곧(則) ‘먼 것(遠)의(之) 가까움(近)을 안(知)다’이다(也). 스스로(自) 일어남(起)이라는 것(者)은 움직임(風)이다. 그러나(而) 의견을 내세우(主張)고 숨을 불(噓)고 거둠(翕)에 반드시(必) 그(其) 까닭(故)이 있(有)다. [조화(造化)의(之) 발자취(跡)를 드러낸(顯)다. 움직임(風)에서(於) 밝힌(明)다는 것(者)은 있은 적이 없(未有)다.] 곧(則) ‘움직임(風)의(之) 시초(自)를 안(知)다’이다(也). 풍(風)이라는 것(者)은 물(物)의(之) 움직이(感動)는 방법(所以)이다(也). 하늘(天)의 도(道)는 은미(隱微)하면서(而) 솔개(鳶)가 날(飛)고 물고기(魚)가 뛰며 좋아한(躍)다. 공로(功)와 교화(化)가 지극히(至) 나타난(著)다. 곧(則) ‘미(微)의(之) 드러남(顯)을 안(知)다’이다(也). 이(此) 셋(三)을 알(知) 수 있(能)다면 곧(則) 반드시(必) 그(其) 홀로(獨)에도 삼간(愼)다. 그러므로(故) 말하기(曰)를 ‘함께(與) 덕(德)에 들어갈(入) 수 있(可)다’이다(矣).


<해석>

경계해 말한다. 상천(上天)은 깊숙하고 멀면서 방의 귀퉁이에서 내려다본다. 해의 살핌이 여기에 있다. 곧 ‘먼 것의 가까움을 안다’이다. 스스로 일어난다는 것은 움직임(風)이다. 그러나 의견을 내세우고 숨을 불고 거두는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다. [낳고 기르고 죽임(造化)의 발자취를 드러낸다. 움직임(風)에서 밝힌다는 것은 있은 적이 없다.] 곧 ‘움직임(風)의 시초를 안다’이다. 풍(風)이라는 것은 물(物)의 움직이는 방법이다. 하늘(天)의 도(道)는 희미하고 자세하(隱微)면서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며 좋아하도록하니 공로와 교화가 지극히 드러난다. 곧 ‘자세한 것(微)이 드러남을 안다’이다. 이 셋을 알 수 있다면 곧 반드시 그 홀로(獨)에도 삼간(愼)다. 그러므로 ‘함께 덕(德)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원문>

〇上文升高行遠節。亦以鬼神爲遠。而如在其上。如在其左右。則遠者近矣。


<직역>

윗(上) 글(文)의 ‘높은 곳(高)에 오르(升)고 먼 곳(遠)을 간(行)다’는 절(節) 또한(亦) 귀신(鬼神)으로써(以) 먼 것(遠)으로 한(爲)다. 그러나(而) 그(其) 위(上)에 있(在)는 듯하(如)고 그(其) 좌우(左右)에 있(在)는 듯하(如)면 곧(則) 먼(遠) 것(者)도 가까움(近)이다(矣).


<해석>

윗 글의 ‘높은 곳에 오르고 먼 곳을 간다’는 절(節)도 귀신(鬼神)을 먼 것으로 했다. 그러나 그 위에 있는 듯하고 그 좌우에 있는듯하면 곧 먼 것도 가까워진다.

중용자잠 53-詩曰。衣錦尚絅。

<원문>

詩曰。衣錦尚絅。

惡其文之著也。

故君子之道。闇然而日章。小人之道。的然而日亡。

君子之道。淡而不厭。簡而文。溫而理。

知遠之近。知風之自。知微之顯。可與入德矣。

시왈。의금상경。

오기문지저야。

고군자지도。암연이일장。소인지도。적연이일망。

군자지도。담이불염。간이문。온이리。

지원지근。지풍지자。지미지현。가여입덕의。


<직역>

『시(詩)』에서 말하기(曰)를 “비단옷을 입(衣錦)고 홑옷(絅)을 더하(尙)네.”

그(其) 꾸밈(文)의(之) 나타남(著)을 싫어한(惡)다(也).

그러므로(故) 군자(君子)의(之) 도(道)는 어렴풋하고 애매하(闇然)면서(而) 나날이(日) 나타난(章)다. 소인(小人)의(之) 도(道)는 분명하(的然)면서(而) 나날이(日) 없어진(亡)다.

군자(君子)의(之) 도(道)는 어렴풋하(淡)면서(而) 꺼려지(厭)지 않(不)고 질박하(簡)면서(而) 정돈되(文)고 온화하(溫)면서(而) 다스려진(理)다.

먼 것(遠)의(之) 가까움(近)을 알(知)고 움직임(風)의(之) 시초(自)를 알(知)고 미(微)의(之) 드러남(顯)을 알(知)면 함께(與) 덕(德)으로 들어갈(入) 수 있(可)다(矣).


<해석>

『시(詩)』에서 말하기를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더하네.”

그 꾸민 것이 나타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군자(君子)의 도(道)는 어렴풋하고 애매하면서 나날이 나타난다. 소인(小人)의 도(道)는 분명하면서 나날이 없어진다.

군자(君子)의 도(道)는 어렴풋하면서 꺼려지지 않고 질박하면서 정돈되고 온화하면서 다스려진다.

먼 것의 가까움을 알고 움직임의 시초를 알고 자세한 것(微)이 드러남을 알면 함께 덕(德)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前章。言聖人之德。極其盛矣。此。復自下學立心之始言之。而下文。又推之。以至其極也。詩。國風衛碩人。鄭之丰。皆作衣錦褧衣。褧。絅同。襌衣也。尙。加也。古之學者。爲己。故其立心如此。尙絅故。闇然。衣錦故。有日章之實。淡簡溫。絅之襲於外也。不厭而文且理焉。錦之美在中也。小人。反是。則暴於外而無實以繼之。是以。的然而日亡也。遠之近。見於彼者由於此也。風之自。著乎外者本乎內也。微之顯。有諸內者形諸外也。有爲己之心。而又知此三者。則知所謹而可入德矣。故下文。引詩。言謹獨之事。

앞(前) 장(章)에서는 성인(聖人)의(之) 덕(德)이 그(其) 대단함(盛)을 지극히 함(極)을 말했(言)다(矣). 이것(此)은 다시(復) 하학(下學)이 마음(心)을 세움(立)의(之) 시작(始)부터(自) 그것(之)을 말하(言)고(而) 아랫(下) 글(文)에 또한(又) 그것(之)을 미루(推)어 그것으로써(以) 그(其) 지극함(極)에 이른(至)다(也). 시(詩)는 「국풍(國風) 위석인(衛碩人)」과 「정지봉(鄭之丰)」에 모두(皆) ‘비단옷(錦)을 입(衣)고 홑옷(衣)을 입(褧)는다’라 지어져있(作)으니 경(褧)은 홑옷(絅)과 같(同)으니 홑옷(襌衣)이다(也). 상(尙)은 더함(加)이다(也). 옛날(古)의(之) 학자(學者)는 자기(己)를 위한(爲)다. 그러므로(故) 그(其) 마음(心)을 세움(立)이 이와 같(如此)다. 홑옷(絅)을 더하(尙)므로(故) 어렴풋하고 애매하(闇然)고 비단옷(錦)을 입(衣)으므로(故) 나날이(日) 드러남(章)의(之) 내용(實)이 있(有)다. 담백하(淡)고 간략하(簡)고 따뜻함(溫)은 겉(外)에(於) 홑옷(絅)의(之) 입음(襲)이다(也). 싫어하(厭)지 않(不)고(而) 꾸미(文)고 또한(且) 다스림(理)은(焉) 비단옷(錦)의(之) 아름다움(美)이 안(中)에 있음(在)이다(也). 소인(小人)은 이것(是)을 어기(反)니 곧(則) 밖(外)에(於) 나타내(暴)면서(而) 내용(實) 그것으로써(以) 그것(之)을 이어나감(繼)이 없(無)다. 그러므로(是以) 분명한(的)듯하(然)나(而) 나날이(日) 없어진(亡)다(也). 원지근(遠之近)은 저기(彼)에(於) 나타난(見) 것(者)이 여기(此)에(於) 말미암음(由)이다(也). 풍지자(風之自)는 밖(外)에(乎) 드러난(著) 것(者)이 안(內)에(乎) 근거함(本)이다(也). 미지현(微之顯)은 안(內)에(諸) 있(有)는 것(者)이 밖(外)에(諸) 나타남(形)이다(也). 자기(己)를 위함(爲)의(之) 마음(心)이 있(有)고(而) 또한(又) 이(此) 세(三) 가지(者)를 알(知)면 곧(則) 삼갈(謹) 바(所)를 알(知)고(而) 덕(德)에 들어갈(入) 수 있(可)다(矣). 그러므로(故) 아랫(下) 글(文)에서 시(詩)를 인용하(引)여 홀로(獨)에도 삼감(謹)의(之) 일(事)을 말한(言)다.

중용자잠 52-自箴

<원문>

箴曰至誠者。愼獨也。立天下之大本者。致中和也。知天地之化育者。天地位而萬物育也。夫焉有所倚者。中立而不倚也。此亦謂仲尼。毛云盡中庸之爲德者。匪他人。仲尼是也。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지성(至誠)’이라는 것(者)은 신독(愼獨)이다(也). ‘천하(天下)의(之) 큰(大) 근본(本)을 세운(立)다’는 것(者)은 치중화(致中和)이다(也). ‘천지(天地)의(之) 화육(化育)을 안(知)다’는 것(者)은 ‘천지(天地)가 자리잡(位)으면서(而) 모든 것(萬物)이 자란(育)다’이다(也). ‘아아(夫) 어찌(焉) 치우친(倚) 바(所)가 있(有)겠는가’라는 것(者)은 중립(中立)하면서(而) 의지하(倚)지 않음(不)이다(也). 이(此) 또한(亦) 중니(仲尼)를 이른(謂)다. [모(毛)가 이르기(云)를 “중용(中庸)의(之) 덕(德)됨(爲)을 다함(盡)이라는 것(者)은 다른 사람(他人)이 아니(匪)라 중니(仲尼)가 옳(是)다(也).]


<해석>

경계해 말한다. ‘지극한 정성(誠)’이라는 것은 신독(愼獨)이다. ‘천하(天下)의 큰 근본(本)을 세운다’는 것은 중화(中和)에 이름이다. ‘천지(天地)의 만들어 기름(化育)을 안다’는 것은 ‘천지(天地)가 자리잡으면서 모든 것(萬物)이 자란다’이다. ‘아아 어찌 치우친 바가 있겠는가’라는 것은 중립(中立)하면서 의지하지 않음이다. 이것도 중니(仲尼)를 이른다. [모(毛)가 이르기를 “중용(中庸)의 덕(德)됨을 다함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중니(仲尼)가 옳다.]




<원문>

〇聰明聖知達天德者。謂聖人能知聖人也。


<직역>

‘민첩하(聰)고 사리에 밝(明)고 슬기롭(聖)고 변별하(知)여 하늘(天)의 덕(德)을 통달한(達)다’는 것(者)은 성인(聖人)이 성인(聖人)을 알(知) 수 있음(能)을 이른(謂)다(也).


<해석>

‘민첩하고 사리에 밝고 슬기롭고 변별하여 하늘(天)의 덕(德)을 통달한다’는 것은 성인(聖人)이 성인(聖人)을 알 수 있음을 이른다.




<원문>

朱子曰經者。理其緒而分之。綸者。比其類而合之也。


<직역>

주자(朱子)가 말하기(曰)를 “경(經)이라는 것(者)은 그(其) 실마리(緒)를 구별하(理)면서(而) 그것(之)을 나눔(分)이다. 륜(綸)이라는 것(者)은 그(其) 무리(類)를 대어 보(比)면서(而) 그것(之)을 합함(合)이다(也).”


<해석>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경(經)이라는 것은 그 실마리를 구별하면서 나누는 것이다. 륜(綸)이라는 것은 그 무리를 대어 보면서 합하는 것이다.”




<원문>

〇毛曰大經卽達道九經之屬。經者分之也。綸者合之也。


<직역>

모(毛)가 말하기(曰)를 “큰(大) 도리(經)는 곧(卽) 달도(達道)와 구경(九經)의(之) 무리(屬)이다. 경(經)이라는 것(者)은 그것(之)을 나눈(分)다(也). 륜(綸)이라는 것(者)은 그것(之)을 합한(合)다(也).”


<해석>

모(毛)가 말하기를 “큰 도리(徑)는 곧 마땅한 도(道)와 아홉가지 도리(經)의 무리이다. 경(經)이라는 것은 그것들을 나눠 말한 것이고 륜(綸)이라는 것은 그것을 합하여 말한 것이다.

중용자잠 52-唯天下至誠。爲能經綸天下之大經。立天下之大本。知天地之化育。

<원문>

唯天下至誠。爲能經綸天下之大經。立天下之大本。知天地之化育。

夫焉有所倚。

肫肫其仁。淵淵其淵。浩浩其天。

苟不固聰明聖知。達天德者。其孰能知之。

유천하지성。위능경륜천하지대경。입천하지대본。지천지지화육。

부언유소의。

준준기인。연연기연。호호기천。

구불고총명성지。달천덕자。기숙능지지。


<직역>

오직(唯) 천하(天下)의 지극한(至) 성(誠)이 능히(能) 천하(天下)의(之) 큰(大) 도리(經)를 관리하(經)면서 하나로 묶(綸)고 천하(天下)의(之) 큰(大) 근본(本)을 세우(立)고 천지(天地)의(之) 화육(化育)을 알(知)도록 한(爲)다.

아아(夫) 어찌(焉) 치우친(倚) 바(所)가 있(有)겠는가.

정성스럽(肫)고 정성스럽(肫)구나 그(其) 인(仁)이여. 깊(淵)고 깊(淵)구나 그(其) 못(淵)이여. 넓(浩)고 넓(浩)구나 그(其) 하늘(天)이여.

오로지(苟) 진실로(固) 민첩하(聰)고 사리에 밝(明)고 슬기롭(聖)고 변별하(知)여 하늘(天)의 덕(德)을 통달한(達) 사람(者)이 아니(不)라면 그(其) 누가(孰) 능히(能) 그것(之)을 알(知)겠는가.


<해석>

천하(天下)의 지극히 정성(誠)만이 천하(天下)의 큰 도리(經)를 관리하면서 하나로 묶을 수 있고 천하(天下)의 큰 근본(本)을 세울 수 있고 천지(天地)의 만들어 기름(化育)을 알 수 있도록 한다.

아아 어찌 치우친 바가 있겠는가.

정성스럽고 정성스럽구나 그 인(仁)이여. 깊고 깊구나 그 못이여. 넓고 넓구나 그 하늘(天)이여.

오로지 진실로 민첩하고 사리에 밝고 슬기롭고 변별하여 하늘(天)의 덕(德)을 통달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經綸。皆治絲之事。經者。理其緖而分之。綸者。比其類而合之也。經。常也。大經者。五品之人倫。大本者。所性之全體也。惟聖人之德。極誠無妄。故於人倫。各盡其當然之實。而皆可以爲天下後世法。所謂經綸之也。其於所性之全體。無一毫人欲之僞以雜之。而天下之道千變萬化。皆由此出。所謂立之也。其於天地之化育。則亦其極誠無妄者有默契焉。非但聞見之知而已。此皆至誠無妄自然之功用。夫豈有所倚著於物而後能哉。

肫肫。懇至貌。以經綸而言也。淵淵。靜深貌。以立本而言也。浩浩。廣大貌。以知化而言也。其淵其天。則非特如之而已。

固。猶實也。鄭氏。唯聖人。能知聖人也。

右。第三十二章。承上章而言大德之敦化。亦天道也。前章。言至聖之德。此章。言至誠之道。然至誠之道。非至聖。不能知。至聖之德。非至誠。不能爲。則亦非二物矣。此篇。言聖人天道之極致至此而無以加矣。

경(經)과 윤(綸)은 모두(皆) 실(絲)을 관리함(治)의(之) 일(事)이다. 경(經)이라는 것(者)은 그(其) 실(緖)을 구별하(理)면서(而) 그것(之)을 나눔(分)이다. 윤(綸)이라는 것(者)은 그(其) 종류(類)를 비교하(比)면서(而) 그것(之)을 합함(合)이다(也). 경(經)은 일정함(常)이다(也). 대경(大徑)이라는 것(者)은 오전과 오륜과 오상(五品)의(之) 인륜(人倫)이다. 대본(大本)이라는 것(者)은 성으로 타고난(性) 바(所)의(之) 전체(全體)이다(也). 오직(惟) 성인(聖人)의(之) 덕(德)이 지극히(極) 참되게 하(誠)고 망령됨(妄)이 없(無)다. 그러므로(故) 인륜(人倫)에서(於) 각자(各) 그(其) 마땅히 해야 할 일(當然)의(之) 내용(實)을 다하(盡)면서(而) 모두(皆) 천하(天下) 후세(後世)의 법(法)이 될(爲) 수 있(可以)으니 이른바(所謂) 그것(之)을 경륜함(經綸)이다(也). 그(其) 성으로 타고난(性) 바(所)의(之) 전체(全體)에(於) 아주 작은 정도(一毫)의 사람(人)의 욕망(欲)의(之) 잘못(僞) 그것으로써(以) 그것(之)에 섞임(雜)도 없(無)어(而) 천하(天下)의(之) 도(道)의 여러 가지로 변하(千變)고 끝없이 변화함(萬化)이 모두(皆) 이(此)를 말미암(由)아 나오(出)니 이른바(所謂) 그것(之)을 세움(立)이다(也). 그(其) 천지(天地)의(之) 만들어 기름(化育)에(於) 곧(則) 또한(亦) 그(其) 지극히(極) 참되게 하(誠)고 망령됨(妄)이 없(無)는 것(者)에 서로 맞음(默契)이 있(有)다(焉). 단지(但) 듣(聞)고 봄(見)의(之) 알(知) 뿐(而已)이 아니(非)다. 이것들(此)은 모두(皆) 지극히(至) 참되게 하(誠)고 망령됨(妄)이 없(無)는 스스로 그러함(自然)의(之) 작용(功用)이니 대저(夫) 어찌(豈) 물(物)에(於) 나타남(著)을 의지하(倚)는 바(所)가 있(有)은 이후(而後)에야 능하(能)겠는가(哉).

순순(肫肫)은 간절하(懇)고 지극한(至) 모양(貌)이니 그것으로써(以) 경륜하(徑輪)면서(而) 말한(言)다(也). 연연(淵淵)은 고요하(靜)고 깊(深)은 모양(貌)이니 그것으로써(以) 근본(本)을 세우(立)면서(而) 말한(言)다(也). 호호(浩浩)는 넓고 큰(廣大) 모양(貌)이니 그것으로써(以) 알(知)고 기르(化)면서(而) 말한(言)다(也). 그(其) 못(淵)과 그(其) 하늘(天)은 곧(則) 특별히(特) 그것(之)과 같(如)을뿐(而已)은 아니(非)다.

고(固)는 참으로(實)와 같(猶)다(也). 정씨(鄭氏)가 말하기(曰)를 “오직(唯) 성인(聖人)이 성인(聖人)을 알(知) 수 있(能)다(也).”

오른쪽(右)은 제(第) 삼십이(三十二) 장(章)이다. 윗(上) 장(章)을 연결하(承)면서(而) 큰(大) 덕(德)의(之) 두터이 교화함(敦化)을 말하(言)니 또한(亦) 하늘(天)의 도(道)이다(也). 앞(前) 장(章)에서는 지극한(至) 성인(聖)의(之) 덕(德)을 말하(言)고 이(此) 장(章)에서는 지극히(至) 참됨(誠)의(之) 도(道)를 말했(言)다.

그러나(然) 지극히(至) 참됨(誠)의(之) 도(道)는 지극한(至) 성인(聖)이 아니(非)라면 알(知) 수 없(不能)고 지극한(至) 성인(聖)의(之) 덕(德)은 지극히(至) 참되(誠)지 않(非)다면 할(爲) 수 없(不能)으니 곧(則) 또한(亦) 두개(二)의 것(物)이 아니(非)다(矣). 이(此) 편(篇)에서 성인(聖人)과 하늘(天)의 도(道)의(之) 극단(極致)을 말함(言)이 이(此)에 이르(至)니(而) 더할(加) 수 없(無以)다(矣).

중용자잠 51-自箴

<원문>

箴曰惟天下至聖。孔子也。惟天下至誠。亦孔子也。仲尼祖述以下。至肫肫其仁。皆贊美孔子之言。而古今諸家。未有明指。豈不恨哉。上文云萬物竝育。小德川流。大德敦化。皆所以贊孔子。而朱子屬之天道。故竝此至聖至誠二節。不屬之孔子也。然聲名洋溢一段。非仲尼而誰也。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오직(惟) 천하(天下)의 지극히(至) 슬기로운 사람(聖)’은 공자(孔子)이다(也). ‘오직(惟) 천하(天下)의 지극히(至) 정성스럽게 하는 사람(誠)’ 또한(亦) 공자(孔子)이다(也). ‘중니(仲尼)가 본받아 계승했(祖述)다’ 이하(以下)에서 ‘정성스럽(肫)고 정성스럽(肫)다. 그(其) 인(仁)이여’에 이르기까지(至) 모두(皆) 공자(孔子)의(之) 말씀(言)을 기린(贊美)다. 그러나(而) 고금(古今)의 여러 학파들(諸家)은 뜻(指)을 밝힘(明)이 있은 적이 없(未有)다. 어찌(豈) 유감으로 생각하(恨)지 않(不)겠는가(哉). 위의 글(上文)에서 이르기(云)를 ‘모든 것(萬物)이 가지런히 자란(竝育)다’와 ‘작(小)은 덕(德)은 냇물의 흐름(川流)이다’와 ‘큰(大) 덕(德)은 힘써(敦) 교화한(化)다’는 모두(皆) 공자(孔子)를 기리(贊)는 방법(所以)이다. 그러나(而) 주자(朱子)는 하늘(天)의 도(道)에 그것(之)을 연결한(屬)다. 그러므로(故) 모두(竝) 이(此) ‘지성(至聖)’과 ‘지성(至誠)’ 두(二) 절(節)을 공자(孔子)에 그것(之)을 연결하(屬)지 않(不)았다(也). 그런데(然) ‘평판 높은 이름(聲名)이 충만하(洋溢)다’ 한 단락(一段)은 중니(仲尼)가 아니(非)고(而) 누구(誰)인가(也).


<해석>

경계해 말한다. ‘오직 천하(天下)의 지극히 슬기로운 사람’은 공자(孔子)이다. ‘오직 천하(天下)의 지극히 정성스럽게 하는 사람(誠)’도 공자(孔子)이다. ‘중니(仲尼)가 본받아 계승했다’ 이하에서 ‘정성스럽고 정성스럽다. 그 인(仁)이여’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자(孔子)의 말씀을 기린다. 그러나 옛날과 지금의 여러 학파들 중에 뜻을 밝힌 적이 없다. 어찌 유감으로 생각하지 않겠는가. 위의 글에서 ‘모든 것(萬物)이 가지런히 자란다’와 작은 덕(德)은 냇물의 흐름이다’와 ‘큰 덕(德)은 힘써 교화한다’고 이른 모든 것들은 모두 공자(孔子)를 기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주자(朱子)는 하늘(天)의 도(道)에 연결해서 모두 이 ‘지성(至聖)’과 ‘지성(至誠)’ 두 절(節)을 공자(孔子)에 연결하지 않았다. 그런데 ‘평판 높은 이름이 충만하다’ 한 단락은 중니(仲尼)가 아니고 누구인가.’




<원문>

〇有容有執有敬有別。朱子謂之仁義禮智見章句似也。


<직역>

받아들임(容)이 있(有)고 처리함(執)이 있(有)고 공경함(敬)이 있(有)고 나눔(別)이 있음(有)은 주자(朱子)가 그것(之)을 인의예지(仁義禮智)라 이른(謂)다. [『장구(章句)』에 보인(見)다.] 비슷하(似)다(也).


<해석>

받아들이고 처리하고 공경하고 나누는 것을 주자(朱子)가 인의예지(仁義禮智)라 일렀다. [『장구(章句)』에 보인다.] 비슷하다.




<원문>

箴曰配天二字。極不可解。古者配天。實有其禮。不可苟稱。詩云殷之未喪師。克配上帝。文王篇詩云思文后稷。克配彼天。思文篇詩云三后在天。王配于京。下武篇周書曰肆惟殷禮陟配天。君奭文斯皆當時實有其禮。故詩人言之。孝經曰郊祀后稷以配天。宗祀文王以配上帝。忽以天與上帝。 分之爲二。此文本之緯書。朱子疑之。固不足述。而配天之禮則誠有之也。但配天有二。一是郊配。若有虞氏郊堯。夏后氏郊鯀。殷人郊冥。周人郊稷者是也。一是禘配。周禮云兆五帝於四郊。小宗伯五帝者羲農軒嚳堯舜之等。今未詳旣祭於郊則亦配天也。觀射父曰禘郊之事。不過繭栗。見楚語周定王曰禘郊之事則有全烝。見周語禘者五帝之祭也。鄭玄謂之五方天帝非也。見余春秋說。魯語展禽之言曰虞夏禘黃帝。殷周禘嚳。祭法同此則大傳所謂報本之禘也。總之孔子之德。雖爲大聖。不郊不禘。則不可曰配天。由是言之。至聖至誠二節。或非孔子之謂乎。抑配天之法。在天而不在人。孔門諸賢。明知孔子之德。優於配天。故直謂之配天與。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배천(配天)’ 두(二) 글자(字)는 매우(極) 이해할 수 없(不可解)다. 옛날(古者)의 ‘배천(配天)’에는 참으로(實) 그(其) 예(禮)가 있(有)었다. 진실로(苟) 이를(稱) 수 없(不可)다. 『시(詩)』에서 이르기(云)를 ‘은나라(殷)의(之) 사람(師)을 잃(喪)지 않음(未)에는 능히(克) 상제(上帝)와 짝했(配)다.’ [「문왕(文王)」편(篇)] 『시(詩)』에서 이르기(云)를 ‘학문의 덕(文)을 순일하게 갖춘(思) 후직(后稷)께서 능히(克) 저(彼) 하늘(天)과 짝하(配)셨다.’ [「사문(思文)」편(篇)] 『시(詩)』에서 이르기(云)를 ‘삼후(三后)께서 하늘(天)에 계시(在)고 왕(王)께서 서울(京)에(于) 짝하(配)셨다.’ [「하무(下武)」편(篇)] 「주서(周書)」에서 말하기(曰)를 ‘드디어(肆) 오직(惟) 은나라(殷)가 예(禮)로 올라(陟) 하늘(天)과 짝했(配)다.’ [「군석(君奭)」 글(文)] 이것들(斯) 모두(皆)는 마땅히(當) 당시(時) 참으로(實) 그(其) 예(禮)가 있(有)었다. 그러므로(故) 시인(詩人)이 그것(之)을 말했(言)다. 『효경(孝經)』에서 말하기(曰)를 ‘후직(后稷)에게 제사지냄(郊祀) 그것으로써(以) 하늘(天)과 짝하(配)고 문왕(文王)에게 제사지냄(宗祀) 그것으로써(以) 상제(上帝)와 짝한(配)다.’ 갑자기(忽) 하늘(天)과(與) 상제(上帝)로써(以) 그것(之)을 나누(分)어 둘(二)로 한(爲)다. 이것들(此)은 문헌(文本)의(之) 경서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책(緯書)이다. 주자(朱子)는 그것(之)을 의심했(疑)다. 거듭(固) 서술함(述)이 모자라(不足)다. 그리고(而) 하늘(天)과 짝함(配)의(之) 예(禮)는 곧(則) 성(誠)에 그것(之)이 있(有)다(也). 다만(但) 배천(配天)은 둘(二)이 있(有)다. 하나(一)는 이(是) 교사를 지내(郊)는 배(配)이다. 유우씨(有虞氏)는 요임금(堯)에 교사를 지내(郊)고 하후씨(夏后氏)는 곤(鯀)에 교사를 지내(郊)고 은나라(殷) 사람(人)은 명(冥)에 교사를 지내(郊)고 주나라(周) 사람(人)은 직(稷)에 교사를 지낸(郊)다는 것(者)과 같(若)다. 이것들(是)이다(也). 하나(一)는 이(是) 오제에 제사를 지내(禘)는 배(配)이다. 『주례(周禮)』에서 이르기(云)를 ‘교외(四郊)에서(於) 오제(五帝)에게 제사를 지낸(兆)다.’ [「소종백(小宗伯)」] 오제(五帝)라는 것(者)은 희(羲)와 농(農)과 헌(軒)과 곡(嚳)과 요(堯)와 순(舜)의(之) 무리(等)이다. [지금(今)은 자세하지 않(未詳)다.] 이미(旣) 야외(祭)에서(於) 교사를 지내(郊)면 곧(則) 또한(亦) 하늘(天)과 짝한(配)다(也). 관역보(觀射父)가 말하기(曰)를 ‘체교(禘郊)의(之) 일(事)은 누에고치나 밤톨(繭栗)에 지나지 않(不過)는다.’ [「초어(楚語)」에 보인(見)다.] 주나라(周) 정왕(定王)이 말하기(曰)를 ‘체교(禘郊)의(之) 일(事)에는 곧(則) 익히지 않은 희생(全烝)이 있(有)다.’ [「주어(周語)」에 보인(見)다.] 체(禘)라는 것(者)은 오제(五帝)의(之) 제사(祭)이다(也). [정현(鄭玄)이 그것(之)을 오방천제(五方天帝)라 일렀(謂)다. 아니(非)다(也). 내(余) 「춘추설(春秋說)」에 보인(見)다.] 「노어(魯語)」에서 전금(展禽)의(之) 말씀(言)에 말하기(曰)를 ‘우나라(虞)와 하나라(夏)는 황제(黃帝)에게 제사를 지내(禘)고 은나라(殷)와 주나라(周)는 곡(嚳)에게 제사를 지낸(禘)다.’ [「제법(祭法)」과 같(同)다.] 이것(此)이 곧(則) 「대전(大傳)」의 소위(所謂) 은혜를 갚음(報本)의(之) 제사(禘)이다(也). 그것(之)을 종합하(總)면 공자(孔子)의(之) 덕(德)을 비록(雖) 훌륭한(大) 슬기(聖)로 하(爲)여도 교사를 지내(郊)지 않(不)고 오제에 제사를 지내(禘)지도 않(不)았다. 곧(則) 하늘(天)과 짝한(配)다고 말할(曰) 수 없(不可)다. 이것(是)을 말미암(由)아 그것(之)을 말하(言)면 ‘지성(至聖)’과 ‘지성(至誠)’ 두(二) 절(節)은 혹(或) 공자(孔子)의(之) 이름(謂)이 아니(非)겠는가(乎). 또한(抑) 하늘(天)과 짝함(配)의(之) 법(法)은 하늘(天)에 있(在)지(而) 사람(人)에 있(在)지 않(不)다. 공자의 제자(孔門)분들(諸賢)은 공자(孔子)의(之) 덕(德)을 분명하게 알(明知)았다. 하늘(天)과 짝함(配)에(於) 충분하(優)다. 그러므로(故) 곧(直) 그것(之)을 배천(配天)이라 이름(謂)인가(與).


<해석>

경계해 말한다. ‘배천(配天)’ 두 글자는 매우 이해할 수 없다. 옛날의 ‘배천(配天)’에는 정말로 예(禮)가 있었다. 진실로 이를 수 없다. 『시(詩)』에서 이르기 ‘은나라(殷)가 사람을 잃지 않았을 때는 능히 상제(上帝)와 짝했(配)다.’ [「문왕(文王)」편] 『시(詩)』에서 이르기를 ‘학문의 덕을 순일하게 갖춘 후직(后稷)께서 능히 저 하늘(天)과 짝하(白)셨다.’ [「사문(思文)」편] 『시(詩)』에서 이르기를 우왕과 탕왕과 문왕과 무왕께서 하늘(天)에 계시고 왕(王)께서 서울에 짝하(配)셨다.’ [「하무(下武)」편] 「주서(周書)」에서 말하기를 ‘드디어 오직 은나라(殷)가 예(禮)로 올라 하늘(天)과 짝했(配)다.’ [「군석(君奭)」 글] 이것들 모두는 마땅히 당시 참으로 예(禮)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그것을 말했다. 『효경(孝經)』에서 말하기를 ‘후직(后稷)을 제사지내서 하늘(天)과 짝하(配)고 문왕(文王)에게 제사지내서 상제(上帝)와 작한다.’ 갑자기 하늘(天)과 상제(上帝)로 나누어 둘로 했다. 이것들은 문헌 중에 경서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위서라는 책인데 주자(朱子)는 그것을 의심했다. 거듭 서술해도 모자라다. 그리고 하늘(天)과 짝하(配)는 예(禮)는 곧 정성(誠)에 있다. 다만 하늘(天)과 짝한(配)다는 것은 둘이 있다. 하나는 교사를 지내(郊)는 배(配)이다. 유우씨(有虞氏)는 요임금(堯)에 교사를 지내고 하후씨(夏后氏)는 곤(鯀)에 교사를 지내고 은나라(殷) 사람은 명(冥)에 교사를 지내고 주나라(周) 사람은 직(稷)에 교사를 지낸다는 것과 같은 이것들이다. 하나는 오제에 제사를 지내(禘)는 배(配)이다. 『주례(周禮)』에서 이르기를 ‘교외에서 희와 농과 헌과 곡과 요와 순에게 제사를 지낸다.’ [「소종백(小宗伯)」] 오제(五帝)라는 것은 희(羲)와 농(農)과 헌(軒)과 곡(嚳)과 요(堯)와 순(舜)의 무리이다. [지금은 자세하지 않다.] 이미 야외에서 교사를 지내면 곧 또한 하늘(天)과 짝하(配)는 것이다. 관역보(觀射父)가 말하기를 ‘체교(禘郊)의 일은 누에고치나 밤톨같이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초어(楚語)」에 보인다.] 주나라(周) 정왕(定王)이 말하기를 ‘체교(禘郊)에는 곧 익히지 않은 희생이 있다.’ [「주어(周語)」에 보인다.] 체(禘)라는 것은 오제(五帝)의 제사이다. [정현(鄭玄)이 그것을 동쪽의 청제와 서쪽의 백제와 남쪽의 적제와 북족의 흑제와 중앙의 황제라 일렀는데 아니다. 내 「춘추설(春秋說)」에 보인다.] 「노어(魯語)」에서 전금(展禽)의 말씀 중에 말하기를 ‘우나라(虞)와 하나라(夏)는 황제(黃帝)에게 제사를 지내고 은나라(殷)와 주나라(周)는 곡(嚳)에게 제사를 지낸다.’ [「제법(祭法)」과 같다.] 이것이 곧 「대전(大傳)의 이른바 은혜를 갚는 제사이다. 그것을 종합하면 공자(孔子)의 덕(德)을 비록 훌륭한 슬기(聖)로 하여도 교사를 지내(郊)지 않고 오제에 제사를 지내(禘)지도 않았다. 곧 하늘(天)과 짝한(配)다고 말할 수 없다. 이를 말미암아 말하면 ‘지성(至聖)’과 ‘지성(至誠)’ 두 절(節)은 혹 공자(孔子)의 이름이 아니겠는가. 또한 하늘(天)과 짝하(配)는 법은 하늘(天)에 있지 사람(人)에 있지 않다. 공자(孔子)의 제자들은 공자(孔子)의 덕(德)을 분명하게 알았으니 하늘(天)과 짝한다기(配)에 충분해서 곧 하늘(天)과 짝했(配)다고 이른 것인가.

중용자잠 51-唯天下至聖。

<원문>

唯天下至聖。

爲能聰明睿知。足以有臨也。

寬裕溫柔。足以有容也。

發强剛毅。足以有執也。

齊莊中正。足以有敬也。

文理密察。足以有別也。

溥博。淵泉。而時出之。

溥博如天。淵泉如淵。

見而民莫不敬。言而民莫不信。行而民莫不說。

是以聲名洋溢乎中國。施及蠻貊。

舟車所至。人力所通。天之所覆。地之所載。日月所照。霜露所隊。

凡有血氣者莫不尊親。故曰配天。

유천하지성。

위능총명예지。족이유림야。

관유온유。족이유용야。

발강강의。족이유집야。

제장중정。족이유경야。

문리밀찰。족이유별야。

부박。연천。이시출지。

부박여천。연천여연。

현이민막불경。언이민막불신。행이민막불열。

시이성명양일호중국。이급만맥。

주거소지。인력소통。천지소부。지지소재。일월소조。상로소추。

범유혈기자막불존친。고왈배천。


<직역>

오직(唯) 천하(天下)의 지극히(至) 슬기로운 사람(聖)이 

민첩하(聰)고 사리에 밝(明)고 너그럽(睿)고 변별함(知)을 할(爲) 수 있(能)으니 임함(臨)이 있기(有)에 충분하(足以)다(也).

너그럽(寬)고 넉넉하(裕)고 온화하(溫)고 부드러(柔)워 받아들임(容)이 있기(有)에 충분하(足以)다(也).

이루(發)고 힘쓰(强)고 왕성하(剛)고 굳세(毅)서 처리함(執)이 있기(有)에 충분하(足以)다(也).

가지런하(齊)고 엄숙하(莊)고 적절하(中)고 바르(正)니 공경함(敬)이 있기(有)에 충분하(足以)다(也).

문맥(文理)을 자세히(密) 살피(察)니 구분함(別)이 있기(有)기 충분하(足下)다(也).

넓(博博)고 깊(淵泉)으면서(而) 때맞춰(時) 그것(之)을 드러낸(出)다.

넓음(溥溥)은 하늘(天)과 같(如)고 깊음(淵泉)은 못(淵)과 같(如)다.

나타나(見)고도(而) 백성(民)이 공경하(敬)지 않는 자가 없(莫不)었다. 말하(言)고도(而) 백성(民)이 믿(信)지 않는 자가 없(莫不)었다. 행하(行)고도(而) 백성(民)이 기뻐하(說)지 않는 자가 없(莫不)었다.

그러므로(是以) 평판 높은 이름(聲名)이 중국(中國)에(乎) 충만하(洋溢)다. 은혜(施)가 만맥(蠻貊)에게 미친(及)다.

배와 수레(舟車)의 이르(至)는 바(所)와 사람(人)의 힘(力)의 통하(通)는 바(所)와 하늘(天)의(之) 덮(覆)는 바(所)와 땅(地)의(之) 싣(載)는 바(所)와 해와 달(日月)의 비추(照)는 바(所)와 서리와 서리와 이슬(霜露)의 떨어진(隊) 바(所)에서

모든(凡) 혈기(血氣)가 있(有)는 사람(者)은 우러러보(尊)고 가까이하(親)지 않는 자가 없(莫不)었다. 그러므로(故) 말하기(曰)를 “하늘(天)과 짝한(配)다.”


<해석>

천하(天下)의 지극히 슬기로운 사람(聖)만이

민첩하고 사리에 밝고 너그럽고 변별할 수 있으니 임할 수 있었다.

너그럽고 넉넉하고 온화하고 부드러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루고 힘쓰고 왕성하고 굳세서 처리할 수 있었다.

문맥(文理)을 자세히 살피니 구분할 수 있었다.

넓고 깊으면서 때맞춰 그것을 드러냈다.

넓음은 하늘(天)과 같고 깊음은 못과 같다.

나타나고도 백성 중에 공경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말하고도 백성 중에 믿지 않는 자가 없었고 행하고도 백성 중에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평판 높은 이름이 중국(中國)에 충만하고 은혜가 남방의 야만인에게 미쳤다.

배와 수레가 이르는 곳과 사람의 힘이 통하는 곳과 하늘(天)이 덮는 곳과 땅(地)이 싣는 곳과 해와 달(日月)이 비추는 곳과 서리와 이슬이 떨어진 곳에서

모든 혈기(血氣)가 있는 사람 중에 우러러보고 가까이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하늘(天)과 짝한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聰明睿知。生知之質。臨。謂居上而臨下也。其下四者。乃仁義禮智之德。文。文章也。理。條理也。密。詳細也。察。明辨也。

溥博。周偏而廣闊也。淵泉。靜深而有本也。出。發見也。言五者之德。充積於中而以時發見於外也。

言其充積極其盛而發見當其可也。

舟車所至以下。蓋極言之。配天。言其德之所及。廣大如天也。

右。第三十一章。承上章而言小德之川流。亦天道也。

민첩하(聰)고 사리에 밝(明)고 너그럽(睿)고 변별함(知)은 나면서 앎(生知)의(之) 성질(質)이다. 임(臨)은 위(上)에 머물(居)면서(而) 아래(下)에 임함(臨)을 이른(謂)다(也). 그(其) 아래(下) 네(四) 가지(者)는 곧(乃) 인의예지(仁義禮智)의(之) 덕(德)이다. 문(文)은 한 편의 글(文章)이다(也). 이(理)는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條理)이다(也). 밀(密)은 낱낱이 자세함(詳細)이다(也). 찰(察)은 명백히 구별함(明辨)이다(也).

부박(溥博)은 모든 면에 다 두루 걸치(周偏)면서(而) 막힌 데가 없음(廣闊)이다(也). 연천(淵泉)은 고요하(靜)고 깊(深)으면서(而) 근본(本)이 있(有)다(也). 출(出)은 노출됨(發見)이다(也). 다섯(五)가지(者)의(之) 덕(德)이 안(中)에(於) 가득 차게 쌓(充積)이면서(而) 때(時)로(以) 밖(外)에(於) 노출됨(發見)을 말한(言)다(也).

그(其) 가득 차게 쌓음(充積)이 그(其) 대단함(盛)을 지극히 하(極)면서(而) 노출됨(發見)이 그(其) 가능함(可)을 마땅하게 함(當)을 말한(言)다(也).

주거소지(舟車所至) 이하(以下)는 모두(蓋) 그것(之)을 극단적으로 말한(極言)다(也). 배천(配天)은 그(其) 덕(德)의(之) 미치(及)는 바(所)가 넓고 커(廣大)서 하늘(天)과 같음(如)을 말한(言)다(也).

오른쪽(右)은 제(第) 삼십일(三十一) 장(章)이다. 윗(上) 장(章)을 연결하(承)면서(而) 작(小)은 덕(德)의(之) 흐름이 끊기지 아니함(川流)을 말하(言)니 또한(亦) 하늘(天)의 도(道)이다(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