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7일 월요일

중용자잠 53-自箴

<원문>

箴曰衣錦尙絅者。誠也愼獨也。君子愼獨。故闇然而日章。小人欺人。故的然而日亡。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비단옷을 입(衣錦)고 홑옷(絅)을 더하(尙)네’라는 것(者)은 성(誠)이다(也). 신독(愼獨)이다(也). 군자(君子)는 신독(愼獨)한다. 그러므로(故) 어렴풋하고 애매하(闇然)면서(而) 나날이(日) 나타난(章)다. 소인(小人)은 사람을 속인(欺人)다. 그러므로(故) 분명하(的然)면서(而) 나날이(日) 없어진(亡)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더하네’라는 것은 정성(誠)이고 신독(愼獨)이다. 군자(君子)는 신독(愼獨)하므로 어렴풋하고 애매하면서 나날이 나타난다. 소인(小人)은 사람을 속이므로 분명하면서 나날이 없어진다.




<원문>

〇溫者不嚴酷也。理者。文理也條理也。君子不必嚴酷。而自然有文理條理。


<직역>

온(溫)이라는 것(者)은 엄격하고 모질(嚴酷)지 아니함(不)이다(也). 이(理)라는 것(者)은 글의 조리(文理)이다(也). 일의 두서(條理)이다(也). 군자(君子)는 엄격하고 모질(嚴酷) 필요 없(不必)다. 그리고(而)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글의 조리(文理)와 일의 두서(條理)가 있(有)다.


<해석>

온(溫)이라는 것은 엄격하고 모질지 않은 것이다. 이(理)라는 것은 글의 조리이고 일의 두서이다. 군자(君子)는 엄격하고 모질 필요 없다. 그리고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문맥과 일의 두서가 있도록 한다.




<원문>

箴曰上天玄遠而臨于屋漏。日監在玆。則知遠之近也。自起者風。而主張噓翕。必有其故。顯造化之跡。未有明於風者。則知風之自也。風者。物之所以感動也。天道隱微而鳶飛魚躍。功化至著。則知微之顯也。能此三知。則必愼其獨。故曰可與入德矣。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상천(上天)은 깊숙하고 멀(玄遠)면서(而) 방의 귀퉁이(屋漏)에서(于) 내려다본(臨)다. 해(日)의 살핌(監)이 여기(玆)에 있(在)다. 곧(則) ‘먼 것(遠)의(之) 가까움(近)을 안(知)다’이다(也). 스스로(自) 일어남(起)이라는 것(者)은 움직임(風)이다. 그러나(而) 의견을 내세우(主張)고 숨을 불(噓)고 거둠(翕)에 반드시(必) 그(其) 까닭(故)이 있(有)다. [조화(造化)의(之) 발자취(跡)를 드러낸(顯)다. 움직임(風)에서(於) 밝힌(明)다는 것(者)은 있은 적이 없(未有)다.] 곧(則) ‘움직임(風)의(之) 시초(自)를 안(知)다’이다(也). 풍(風)이라는 것(者)은 물(物)의(之) 움직이(感動)는 방법(所以)이다(也). 하늘(天)의 도(道)는 은미(隱微)하면서(而) 솔개(鳶)가 날(飛)고 물고기(魚)가 뛰며 좋아한(躍)다. 공로(功)와 교화(化)가 지극히(至) 나타난(著)다. 곧(則) ‘미(微)의(之) 드러남(顯)을 안(知)다’이다(也). 이(此) 셋(三)을 알(知) 수 있(能)다면 곧(則) 반드시(必) 그(其) 홀로(獨)에도 삼간(愼)다. 그러므로(故) 말하기(曰)를 ‘함께(與) 덕(德)에 들어갈(入) 수 있(可)다’이다(矣).


<해석>

경계해 말한다. 상천(上天)은 깊숙하고 멀면서 방의 귀퉁이에서 내려다본다. 해의 살핌이 여기에 있다. 곧 ‘먼 것의 가까움을 안다’이다. 스스로 일어난다는 것은 움직임(風)이다. 그러나 의견을 내세우고 숨을 불고 거두는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다. [낳고 기르고 죽임(造化)의 발자취를 드러낸다. 움직임(風)에서 밝힌다는 것은 있은 적이 없다.] 곧 ‘움직임(風)의 시초를 안다’이다. 풍(風)이라는 것은 물(物)의 움직이는 방법이다. 하늘(天)의 도(道)는 희미하고 자세하(隱微)면서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며 좋아하도록하니 공로와 교화가 지극히 드러난다. 곧 ‘자세한 것(微)이 드러남을 안다’이다. 이 셋을 알 수 있다면 곧 반드시 그 홀로(獨)에도 삼간(愼)다. 그러므로 ‘함께 덕(德)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원문>

〇上文升高行遠節。亦以鬼神爲遠。而如在其上。如在其左右。則遠者近矣。


<직역>

윗(上) 글(文)의 ‘높은 곳(高)에 오르(升)고 먼 곳(遠)을 간(行)다’는 절(節) 또한(亦) 귀신(鬼神)으로써(以) 먼 것(遠)으로 한(爲)다. 그러나(而) 그(其) 위(上)에 있(在)는 듯하(如)고 그(其) 좌우(左右)에 있(在)는 듯하(如)면 곧(則) 먼(遠) 것(者)도 가까움(近)이다(矣).


<해석>

윗 글의 ‘높은 곳에 오르고 먼 곳을 간다’는 절(節)도 귀신(鬼神)을 먼 것으로 했다. 그러나 그 위에 있는 듯하고 그 좌우에 있는듯하면 곧 먼 것도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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