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孔子曰生而知之者上也。學而知之者次也。困以學之。又其次也。困而不學。民斯爲下矣。季氏篇
<직역>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曰)를 “태어나(生)면서(而) 그것(之)을 아(知)는 사람(者)은 첫째(上)이다(也). 배우(學)고(而) 그것(之)을 아(知)는 사람(者)은 다음(次)이다(也). 곤궁해져(困)서야(而) 그것(之)을 배움(學) 또한(又) 그것(其)의 다음(次)이다(也). 곤궁해져(困)서도(而) 배우(學)지 않(不)으면 백성(民)은 이것(斯)을 아래(下)로 생각한(爲)다(矣).” [「계씨(季氏)」 편(篇)]
<해석>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태어나(生)면서 아(知)는 사람은 첫째이다. 배우(學)고 아(知)는 사람은 다음이다. 곤궁해져(困)서야 배움(學)도 그것의 다음이다. 공궁해져(困)서도 배우(學)지 않으면 또한 백성은 이것을 아래로 생각한다.” [「계씨(季氏)」 편]
<해설>
困以學之의 원문은 困而學之이다.
<원문>
〇箴曰生知學知困知。其知道則一也。安行利行勉行。其行道則一也。然五達道三達德。九經之末。皆云所以行之者一也。一者誠也。然則四箇一也。亦當一例看。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나면서 알(生知)든 배워서 알(學知)든 곤궁해져서 알(困知)든 그(其) 도(道)를 알(知)면 곧(則) 하나(一)이다(也). 편안히 행하(安行)든 이로워서 행하(利行)든 억지로 행하(勉行)든 그(其) 도(道)를 행하(行)면 곧(則) 하나(一)이다(也). 그런데(然) 오달도(五達道)와 삼달덕(三達德)은 구경(九經)의(之) 끝(末)이니 모두(皆) 이르기(云)를 ‘그것(之)을 행하(行)는 방법(所以)이라는 것(者)은 하나(一)이다(也).’ 하나(一)라는 것(者)은 성(誠)이다(也). 그러면(然則) 네(四) 개(箇)의 ‘하나(一)이다(也)’는 또한(亦) 마땅히(當) 하나(一)의 종류(例)로 본(看)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나면서 알(生知)든 배워서 알(學知)든 곤궁해져서 알(困知)든 그 도(道)를 알면 곧 하나이다. 편안히 행하(安行)든 이로워서 행하(利行)든 억지로 행하(勉行)든 그 도(道)를 행하면 곧 하나이다. 그런데 오달도(五達道)와 삼달덕(三達德)은 구경(九經)의 끝이니 모두 ‘그것을 행하는 방법이라는 것은 하나이다’라 일렀다. 하나라는 것은 성(誠)이다. 그러면 네 개의 ‘하나이다’도 하나의 종류로 봐야 한다.
<원문>
箴曰好學則知所以踐形。故近乎知。力行則知所以愛人。故近乎仁。愛父母兄弟愛君愛民知恥則必因困發憤。强力爲善。故近乎勇。然好學者。學知者也。力行者。利行者也。知恥者。困勉者也。皆非上等。故曰近乎知近乎仁近平勇。明上面有生知安行一層也。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학문(學)을 좋아하(好)면 곧(則) 몸(形)을 실천시키(踐)는 방법(所以)을 안(知)다. 그러므로(故) 지(知)에(乎) 가깝(近)다. 힘써 행하(力行)면 곧(則) 타인(人)을 사랑하(愛)는 방법(所以)을 안(知)다. 그러므로(故) 인(仁)에(乎) 가깝(近)다. [부모형제(父母兄弟)를 사랑함(愛)과 임금(君)을 사랑함(愛)과 백성(民)을 사랑함(愛)] 부끄러움(恥)을 알(知)면 곧(則) 반드시(必) 부족함(困)을 말미암(因)아 떨쳐 일어나(發憤)고 힘써(强力) 선(善)을 한(爲)다. 그러므로(故) 용(勇)에(乎) 가깝(近)다. 그리하여(然) 호학(好學)이라는 것(者)은 배워서 앎(學知)이라는 것(者)이다(也). 힘써 행함(力行)이라는 것(者)은 이로워서 행함(利行)이라는 것(者)이다(也). 부끄러움(恥)을 앎(知)이라는 것(者)은 억지로 시킴(困勉)이라는 것(者)이다(也). 모두(皆) 높은 등급(上等)은 아니(非)다. 그러므로(故) 말하기(曰)를 ‘지(知)에(乎) 가깝(近)고 인(仁)에(乎) 가깝(近)고 용(勇)에(乎) 가깝(近)다.’ 윗면(上面)에 나면서 앎(生知)과 편안히 행함(安行)의 한 겹(一層)이 있음(有)을 밝힌(明)다(也).
<해석>
경계해 말한다. 학문을 좋아하면 곧 몸을 실천시키는 방법을 안다. 그러므로 지(知)에 가깝다. 힘써 행하면 곧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안다. 그러므로 인(仁)에 가깝다. [부모형제를 사랑함과 임금을 사랑함과 백성을 사랑함] 부끄러움을 알면 곧 반드시 부족함을 말미암아 떨쳐 일어나고 힘써 선(善)을 한다. 그러므로 용(勇)에 가깝다. 그리하여 학문을 좋아한다는 것은 배워서 앎(學知)이다. 힘써 행함이라는 것은 이뤄워서 행함(利行)이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억지로 시킨(困勉)다는 것이다. 모두 높은 등급은 아니다. 그러므로 ‘지(知)에 가깝고 인(仁)에 가깝고 용(勇)에 가깝다’고 말했다. 윗면에 나면서 앎(生知)과 편안히 행함(安行)이라는 한 겹이 있음을 밝힌다.
<해설>
近平勇은 近乎勇이다.
<원문>
〇舊說力行。作利行解。
<직역>
이전의 이론(舊說)에서는 ‘역행(力行)’을 ‘이행(利行)’이라 주석(解)을 지(作)었다.
<해석>
이전의 이론에서는 ‘힘써 행함’을 ‘이로워서 행함(利行)’이라 주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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