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箴曰至誠者。愼獨也。立天下之大本者。致中和也。知天地之化育者。天地位而萬物育也。夫焉有所倚者。中立而不倚也。此亦謂仲尼。毛云盡中庸之爲德者。匪他人。仲尼是也。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지성(至誠)’이라는 것(者)은 신독(愼獨)이다(也). ‘천하(天下)의(之) 큰(大) 근본(本)을 세운(立)다’는 것(者)은 치중화(致中和)이다(也). ‘천지(天地)의(之) 화육(化育)을 안(知)다’는 것(者)은 ‘천지(天地)가 자리잡(位)으면서(而) 모든 것(萬物)이 자란(育)다’이다(也). ‘아아(夫) 어찌(焉) 치우친(倚) 바(所)가 있(有)겠는가’라는 것(者)은 중립(中立)하면서(而) 의지하(倚)지 않음(不)이다(也). 이(此) 또한(亦) 중니(仲尼)를 이른(謂)다. [모(毛)가 이르기(云)를 “중용(中庸)의(之) 덕(德)됨(爲)을 다함(盡)이라는 것(者)은 다른 사람(他人)이 아니(匪)라 중니(仲尼)가 옳(是)다(也).]
<해석>
경계해 말한다. ‘지극한 정성(誠)’이라는 것은 신독(愼獨)이다. ‘천하(天下)의 큰 근본(本)을 세운다’는 것은 중화(中和)에 이름이다. ‘천지(天地)의 만들어 기름(化育)을 안다’는 것은 ‘천지(天地)가 자리잡으면서 모든 것(萬物)이 자란다’이다. ‘아아 어찌 치우친 바가 있겠는가’라는 것은 중립(中立)하면서 의지하지 않음이다. 이것도 중니(仲尼)를 이른다. [모(毛)가 이르기를 “중용(中庸)의 덕(德)됨을 다함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중니(仲尼)가 옳다.]
<원문>
〇聰明聖知達天德者。謂聖人能知聖人也。
<직역>
‘민첩하(聰)고 사리에 밝(明)고 슬기롭(聖)고 변별하(知)여 하늘(天)의 덕(德)을 통달한(達)다’는 것(者)은 성인(聖人)이 성인(聖人)을 알(知) 수 있음(能)을 이른(謂)다(也).
<해석>
‘민첩하고 사리에 밝고 슬기롭고 변별하여 하늘(天)의 덕(德)을 통달한다’는 것은 성인(聖人)이 성인(聖人)을 알 수 있음을 이른다.
<원문>
朱子曰經者。理其緒而分之。綸者。比其類而合之也。
<직역>
주자(朱子)가 말하기(曰)를 “경(經)이라는 것(者)은 그(其) 실마리(緒)를 구별하(理)면서(而) 그것(之)을 나눔(分)이다. 륜(綸)이라는 것(者)은 그(其) 무리(類)를 대어 보(比)면서(而) 그것(之)을 합함(合)이다(也).”
<해석>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경(經)이라는 것은 그 실마리를 구별하면서 나누는 것이다. 륜(綸)이라는 것은 그 무리를 대어 보면서 합하는 것이다.”
<원문>
〇毛曰大經卽達道九經之屬。經者分之也。綸者合之也。
<직역>
모(毛)가 말하기(曰)를 “큰(大) 도리(經)는 곧(卽) 달도(達道)와 구경(九經)의(之) 무리(屬)이다. 경(經)이라는 것(者)은 그것(之)을 나눈(分)다(也). 륜(綸)이라는 것(者)은 그것(之)을 합한(合)다(也).”
<해석>
모(毛)가 말하기를 “큰 도리(徑)는 곧 마땅한 도(道)와 아홉가지 도리(經)의 무리이다. 경(經)이라는 것은 그것들을 나눠 말한 것이고 륜(綸)이라는 것은 그것을 합하여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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