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誠者。不勉而中。不思而得。從容中道。聖人也。
誠之者。擇善而固執之者也。
博學之。審問之。愼思之。明辨之。篤行之。
有弗學。學之弗能。弗措也。
有弗問。問之弗知。弗措也。
有弗思。思之弗得。弗措也。
有弗辨。辨之弗明。弗措也。
有弗行。行之弗篤。弗措也。
人一能之。己百之。人十能之。己千之。
果能此道矣。雖愚必明。雖柔必强。
自誠明。謂之性。自明誠謂之敎。誠則明矣。明則誠矣。
성자。천지도야。성지자。인지도야。
성자。불면이중。불사이득。용종중도。성인야。
성지자。택선이고집지자야。
박학지。심문지。신사지명변지。독행지。
유불학。학지불능。불조야。
유불문。문지불지。불조야。
유불사。사지불득。불조야。
유불변。변지불명。불조야。
유블행。행지불독。불조야。
인일능지。기백지。인십능지。기천지。
과능차도의。수우필명。수유필강。
자성명。위지성。자명성위지교。성즉명의。명즉성의。
<직역>
성(誠)하는 사람(者)은 하늘(天)의(之) 도(道)이다(也). 성(誠)에 이르(之)려는 사람(者)은 사람(人)의(之) 도(道)이다(也).
정성스럽게 하(誠)는 사람(者)은 힘쓰(勉)지 않(不)아도(而) 부합하(中)고 바라(思)지 않(不)아도(而) 얻(得)고 조용히(從容) 도(道)에 부합하(中)니 성인(聖人)이다(也).
성(誠)에 이르(之)려는 사람(者)은 선(善)을 고르(擇)고(而) 그것(之)을 굳(固)게 유지하(執)는 사람(者)이다(也).
두루(博) 그것(之)을 배우(學)고 자세히(審) 그것(之)을 묻(問)고 삼가(愼) 그것(之)을 바라(思)고 명백히(明) 그것(之)을 분별하(辨)고 오로지(篤) 그것(之)을 행한(行)다.
배우(學)지 않음(弗)이 있(有)더라도 그것(之)을 배우(學)면 능하(能)지 못하(弗)여도 그만두(置)지 말(弗)라(也).
묻(問)지 않음(弗)이 있(有)더라도 그것(之)을 물(問)으면 알(知)지 못하(弗)여도 그만두(置)지 말(弗)라(也).
바라(思)지 않음(弗)이 있(有)더라도 그것(之)을 바라(思)면 얻(得)지 못하(弗)여도 그만두(置)지 말(弗)라(也).
분별하(辨)지 않음(弗)이 있(有)더라도 그것(之)을 분별하(辨)면 깨닫(明)지 못하(弗)여도 그만두(置)지 말(弗)라(也).
행하(行)지 않음(弗)이 있(有)더라도 그것(之)을 행하(行)면 집중하(篤)지 못하(弗)여도 그만두(置)지 말(弗)라(也).
타인(人)이 한 번(一)에 그것(之)을 잘하(能)면 자기(己)는 그것(之)을 백 번 한(百)다. 타인(人)이 열 번(十)에 그것(之)을 잘하(能)면 자기(己)는 그것(之)을 천 번 한(千)다.
정말(果) 이(此) 도(道)에 능하(能)면(矣) 비록(雖) 어리석(愚)더라도 반드시(必) 명(明)하고 비록(雖) 약하(柔)더라도 반드시(必) 힘쓴(强)다.
성(誠)을 말미암(自)아 명(明)함 그것(之)을 성대로 함(性)이라 이른(謂)다. 명(明)을 말미암(自)아 성(誠)함 그것(之)을 교(敎)라 이른(謂)다.
성(誠)하면 곧(則) 명(明)하다(矣). 명(明)하면 곧(則) 성(誠)한다(矣).
<해석>
정성스럽게 하(誠)는 사람은 하늘(天)의 도(道)이다. 정성스럽게 하(誠)려는 사람은 사람(人)의 도(道)이다.
정성스럽게 하(誠)는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부합하(中)고 바라(思)지 않아도 얻고 조용히 도(道)에 부합하니 성인(聖人)이다.
정성스럽게 하(誠)려는 사람은 선(善)을 고르고 굳게 유지하는 사람이다.
두루 배우고 자세히 묻고 삼가 바라(思)고 명백히 분별하고 오로지 행한다.
배우지 않는 경우가 있더라도 배우기 시작했다면 능하지 못하여도 그만두지 말라.
묻지 않는 경우가 있더라도 묻기 시작했다면 알지 못하여도 그만두지 말라.
바라(思)지 않는 경우가 있더라도 바라(思)기 시작했다면 얻지 못하여도 그만두지 말라.
분별하지 않는 경우가 있더라도 분별하기 시작했다면 깨닫지 못하여도 그만두지 말라.
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더라도 행하기 시작했다면 전일하지 못하여도 그만두지 말라.
타인이 한번에 그것을 잘하면 자기는 그것을 백 번 하라. 타인이 열 번에 그것을 잘하면 자기는 그것을 천 번 한다.
정말 이 도(道)에 능하면 비록 어리석더라도 반드시 깨닫(明)고 비록 약하더라도 반드시 힘쓴(强)다.
정성스럽게 함(誠)을 말미암아 깨달음(明)을 성대로 함(性)이라 이른다. 깨달음(明)을 말미암아 정성스럽게 함(誠)을 가르침(敎)이라 이른다.
정성스럽게 하(誠)면 곧 깨닫(明)고 깨달(明)으면 곧 정성스럽게 한(誠)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此。承上文誠身而言。誠者。眞實無妄之謂。天理之本然也。誠之者。未能眞實無妄而欲其眞實無妄之謂。人事之當然也。聖人之德。渾然天理。眞實無妄。不待思勉而從容中道。則亦天之道也。未至於聖。則不能無人欲之私。而其爲德。不能皆實。故未能不思而得。則必擇善然後。可以明善。未能不勉而中。則必固執而後。可以誠身。此則所謂人之道也。不思而得。生知也。不勉而中。安行也。擇善。學知以下之事。固執。利行以下之事也。
此。誠之之目也。學問思辨。所以擇善而爲知。學而知也。篤行。所以固執而爲仁。利而行也。程子曰。五者。廢其一。非學也。
君子之學。不爲則已。爲則必要其成。故常百倍其功。此。困而知。勉而行者也。勇之事也。
明者。擇善之功。强者。固執之效。呂氏曰。君子所以學者。爲能變化氣質而已。德勝氣質。則愚者可進於明。柔者可進於强。不能勝之。則雖有志於學。亦愚不能明。柔不能立而已矣。蓋均善而無惡者。性也。人所同也。昏明强弱之稟。不齊者。才也。人所異也。誠之者。所以反其同而變其異也。夫以不美之質。求變而美。非百倍其功。不足以致之。今以鹵莽滅裂之學。或作或輟。以變其不美之質。及不能變。則曰。天質不美。非學所能變。是。果於自棄。其爲不仁。甚矣。
右。第二十章。此。引孔子之言。以繼大舜文武周公之緖。明其所傳之一致。擧而措之。亦猶是爾。蓋包費隱。兼小大。以終十二章之意。章內。語誠始詳。而所謂誠者。實此篇之樞紐也。又按。孔子家語。亦載此章而其文尤詳。成功一也之下。有公曰。子之言。美矣至矣。寡人。實固不足以成之也。故其下。復以子曰。起答辭。今無此問辭。而猶有子曰二字。蓋子思刪其繁文。以附于篇。而所刪。有不盡者。今當爲衍文也。博學之以下。家語。無之。意彼有闕文。抑此或子思所補也歟。
自。由也。德無不實而明無不照者。聖人之德。所性而有者也。天道也。先明乎善而後。能實其善者。賢人之學。由敎而入者也。人道也。誠則無不明矣。明則可以至於誠矣。
右。第二十一章。子思承上章夫子天道人道之意而立言也。自此以下十二章。皆子思之言。以反覆推明此章之意。
이것(此)은 윗(上) 글(文)의 ‘몸(身)을 참되게 함(誠)’을 연결하(承)면서(而) 말한(言)다. ‘성(誠)’이라는 것(者)은 순수하고 바르(眞實)면서 망령됨(妄)이 없음(無)의(之) 이름(謂)이니 천리(天理)의(之) 본래 그대로의 것(本然)이다(也). ‘성지(誠之)’라는 것(者)은 순수하고 바르(眞實)면서 망령됨(妄)이 없(無)을 수 없(未能)으나(而) 그(其) 순수하고 바르(眞實)면서 망령됨(妄)이 없(無)고자 함(欲)의(之) 이름(謂)이니 사람(人)의 일(事)의(之) 마땅히 해야 할 일(當然)이다(也). 성인(聖人)의(之) 덕(德)이 천리(天理)와 구별할 수 없(渾然)으니 순수하고 바르(眞實)면서 망령됨(妄)이 없(無)어 생각하(思)고 힘쓰기(勉)를 기다리(待)지 않(不)아도(而) 조용히(從容) 도(道)에 부합하(中)니 곧(則) 또한(亦) 하늘(天)의(之) 도(道)이다(也). 성인(聖)에(於) 이르(至)지 못하(未)면 곧(則) 인욕(人欲)의(之) 사사로움(私)이 없(無)을 수 없(不能)어(而) 그(其) 덕(德)됨(爲)이 모두(皆) 진실될(實) 수는 없(不能)으므로(故) 생각하(思)지 않(不)고(而) 얻(得)을 수 없(未能)으니 곧(則) 반드시(必) 선(善)을 고른(擇) 연후(然後)에 선(善)을 밝힐(明) 수 있(可以)고 힘쓰(勉)지 않(不)고는(而) 부합할(中) 수 없(未能)으니 곧(則) 반드시(必) 굳(固)게 유지한(執) 이후(而後)에 몸(身)을 참되게 할(誠) 수 있(可以)으니 이것(此)이 곧(則) 이른바(所謂) 사람(人)의(之) 도(道)이다(也). 생각하(思)지 않(不)아도(而) 얻음(得)은 나면서 앎(生知)이다(也), 힘쓰(勉)지 않(不)아도(而) 부합함(中)은 편안히 행함(安行)이다(也). 선(善)을 고름(擇)은 배워서 앎(學知) 이하(以下)의(之) 일(事)이다. 굳(固)게 유지함(執)은 이로워서 행함(利行) 이하(以下)의(之) 일(事)이다(也).
이것(此)은 ‘성(誠之)’의(之) 목록(目)이다(也). 배우(學)고 묻(問)고 생각하(思)고 분별함(辨)은 선(善)을 고르(擇)면서(而) 지혜로운 사람(知)이 되(爲)는 방법(所以)이니 배워(學)서(而) 앎(知)이다(也). 오로지(篤) 행함(行)은 굳(固)게 유지하(執)면서(而) 어진 사람(仁)이 되(爲)는 방법(所以)이니 이로워(利)서(而) 행함(行)이다(也). 정자(程子)가 말하기(曰)를 “다섯(五)가지(者)에 그(其) 하나(一)라도 버리(廢)면 학문(學)이 아니(非)다(也).
군자(君子)의(之) 배움(學)은 하(爲)지 않(不)는다면 곧(則) 그쳐지(已)나 하(爲)면 곧(則) 반드시(必) 그(其) 완성(成)을 요구한(要)다. 그러므로(故) 항상(常) 그(其) 공부(功)를 백배로 하(百倍)니 이것(此)은 곤궁해져(困)서야(而) 앎(知)과 억지로 시켜(勉)서야(而) 행하(行)는 사람(者)이다(也). 용(勇)의(之) 일(事)이다(也).
명(明)이라는 것(者)은 선(善)을 고름(擇)의(之) 공로(功)이다. 강(强)이라는 것(者)은 굳(固)게 유지함(執)의(之) 효과(效)이다. 여씨(呂氏)가 말하기(曰)를 “군자(君子)가 배우(學)는 까닭(所以)이라는 것(者)은 기질(氣質)을 바꿀(變化) 수 있(能)기 위함(爲)일 뿐이(而已)니 덕(德)이 기질(氣質)을 이기(勝)면 곧(則) 어리석(愚)은 사람(者)이 밝은 곳(明)에(於) 나아갈(進) 수 있(可)고 약한(柔) 사람(者)이 강(强)에(於) 나아갈(進) 수 있(可)다. 그것(之)을 이길(勝) 수 없(不能)다면 곧(則) 비록(雖) 배움(學)에(於) 뜻(志)이 있(有)어도 또한(亦) 어리석은 사람(愚)이 밝아질(明) 수 없(不能)고 약한 사람(柔)이 이룰(立) 수 없(不能)을 뿐이(而已)다(矣). 모두(蓋) 선(善)은 같(均)고(而) 악(惡)은 없(無)는 것(者)은 성(性)이고(也) 사람들(人)의 같이하(同)는 바(所)이다(也). 어둡(昏)고 밝(明)고 강하(强)고 약함(弱)의(之) 천품(稟)이 가지런하(齊)지 않(不)은 것(者)은 재(才)이고(也) 사람들(人)의 다른(異) 바(所)이다(也). 성지(誠之)라는 것(者)은 그(其) 같은 것(同)으로 되돌리(反)고(而) 그(其) 다른 것(異)을 바꾸(變)는 방법(所以)이다(也). 대저(夫) 아름답(美)지 않음(不)의(之) 성질(質)로써(以) 바꿔(變)서(而) 아름답게 함(美)을 구함(求)에 그(其) 공부(功)를 백배로 하(百倍)지 않(非)는다면 그것(之)에 이르기(致)에 충분하(足以)지 않(不)다. 지금(今) 꼼꼼하지 못하고 거침(鹵莽滅裂)의(之) 배움(學)으로써(以) 혹(或) 하(作)고 혹(或) 그쳐(輟) 그것으로써(以) 그(其) 아름답(美)지 않음(不)의(之) 성질(質)를 바꿈(變)에 바꿀(變) 수 없음(不能)에 미치(及)면 곧(則) 말하기(曰)를 “타고난 성질(天質)의 아름답(美)지 않음(不)은 배워(學)서 바꿀(變) 수 있(能)는 바(所)가 아니(非)다.” 이것(是)은 끝내(果) 스스로 돌아보지 아니함(自棄)에(於) 그(其) 인(仁)이 아님(不)이 됨(爲)이 심함(甚)이다(矣).
오른쪽(右)은 제(第) 이십(二十)장(章)이다. 이것(此)은 공자(孔子)의(之) 말씀(言)을 인용하(引)여 순임금(大舜)과 문왕(文)과 무왕(武)과 주공(周公)의(之) 계통(緖)을 이어나감(繼)으로써(以) 그(其) 전하여 내려오는 바(所傳)의(之) 한결같음(一致)을 밝혀(明)서 그것(之)을 들추어 내(擧)면서(而) 처리하(措)면 또한(亦) 이(是)와 같(猶)다(爾). 모두(蓋) 비은(費隱)을 포함하(包)고 소대(小大)를 아울러(兼) 그것으로써(以) 십이(十二) 장(章)의(之) 뜻(意)을 마친(終)다. 장(章) 안(內)에서 성(誠)을 말함(語)이 비로소(始) 자세하(詳)니(而) 이른바(所謂) 성(誠)이라는 것(者)은 진실로(實) 이(此) 책(篇)의(之) 축과 중심(樞紐)이다(也). 또한(又) 생각건대(按)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또한(亦) 이(此) 장(章)이 실렸(載)고(而) 그(其) 글(文)이 더욱(尤) 자세하(詳)다. ‘성공일야(成功一也)’의(之) 아래(下)에 “애공(公)이 말하기(曰)를 ‘선생님(子)의(之) 말씀(言)이 아름답(美)고(矣) 지극하(至)나(矣) 과인(寡人)은 진실로(實) 고루하(固)여 그것(之)을 이루기(成)에 충분하(足以)지 않(不)습니다’”가 있(有)다(也). 그러므로(故) 그(其) 아래(下)에 다시(復) ‘자왈(子曰)’로써(以) 대답(答)의 말씀(辭)을 시작하(起)니 지금(今) 여기(此) 묻(問)는 말씀(辭)이 없(無)으나(而) 다만(猶) ‘자왈(子曰)’ 두(二) 글자(字)가 있(有)으니 아마도(蓋) 자사(子思)가 그(其) 어수선한(繁) 글(文)을 삭제하(刪)여 그것으로써(以) 책(篇)에(于) 붙여(附)서(而) 삭제된(刪) 바(所)에 완벽하(盡)지 않(不)은 것(者)이 있(有)다. 지금(今) 잘못 들어간 글자(衍文)로 함(爲)이 마땅하(當)다(也). ‘박학지(博學之)’ 이하(以下)는 『가어(家語)』에 그것(之)에 없(無)으니 생각건대(意) 저기(彼)에 빠진 글귀(闕文)가 있(有)거나 혹은(抑) 여기(此)에 혹(或) 자사(子思)가 보충한(補) 바(所)이리라(也歟).
자(自)는 말미암음(由)이다(也). 덕(德)에 성실하지 못함(不實)이 있(無)고(而) 밝음(明)에 비추(照)지 못함(不)이 없(無)는 것(者)은 성인(聖人)의(之) 덕(德)이니 성대로 하(性)면서(而) 갖춘(有) 것(者)이고(也) 하늘(天)의 도(道)인 바(所)이다(也). 먼저(先) 선(善)에 대해(乎) 확실히 한(明) 이후(而後)에야 그(其) 선(善)에 책임을 다할(實) 수 있(能)다는 것(者)은 어진(賢) 사람(人)의(之) 학문(學)이니 가르침(敎)을 말미암(由)으면서(而) 들어가(入)는 것(者)이고(也) 사람(人)의 도(道)이다(也). 참되게 하(誠)면 곧(則) 밝히(明)지 못함(不)이 없(無)다(矣). 밝아지(明)면 곧(則) 참되게 함(誠)에(於) 이를(至) 수 있(可以)다(矣).
오른쪽(右)은 제(第) 이십일(二十一) 장(章)이다. 자사(子思)가 윗(上) 장(章)의 스승님(夫子)의 하늘(天)의 도(道)와 사람(人)의 도(道)의(之) 뜻(意)을 연결하(承)면서(而) 건의하여 말함(立言)이다(也). 여기(此)부터(自) 이하(以下)의 십이(十二) 장(章)은 모두(皆) 자사(子思)의(之) 말씀(言)이니 반복함(反覆)으로써(以) 이(此) 장(章)의(之) 뜻(意)을 미루(推)어 밝혔(明)다.
<해설>
다산학(茶山學)에서 심지사려(心知思慮)의 미발(未發)은 성인(聖人)이 될 수 없으니 사(思)를 ‘생각하다’가 아닌 ‘바라다’로 해석했다.
미발(未發) =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미발(未發)
미발(未發) ≠ 심지사려(心知思慮)의 미발(未發)
이 절(節)은 『중용자잠(中庸自箴)』 2권 마지막이다. 이후의 절(節)부터는 3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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