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6일 일요일

중용자잠 21-子曰。鬼神之爲德。其盛矣乎。

<원문>

子曰。鬼神之爲德。其盛矣乎。

視之而弗見。聽之而弗聞。體物而不可遺。

使天下之人齊明盛服。以承祭祀。

洋洋乎。如在其上。如在其左右。

詩曰。神之格思。不可度思。矧可射思。

夫微之顯。誠之不可掩。如此夫。

자왈。귀신지위덕。기성의호。

시지이불견。청지이불문。체물이불가유。

사천하지인재명성복。이승제사。

양양호。여재기상。여재기좌우。

시왈。신지격사。불가탁사。신가역사。

부미지현。성지불가엄。여차부。


<직역>

선생님(子)이 말씀하시기(曰)를 “귀신(鬼神)의(之) 덕(德)됨(爲)은 마땅히(其) 성하(盛)도다(矣乎).

그것(之)을 보(視)나(而) 보이(見)지 않(弗)고 그것(之)을 들(聽)으나(而) 들리(聞)지 않(弗)는다. 근본적(體)인 것(物)이니(而) 떨어질(遺) 수 없(不可)다. 천하(天下)의(之) 사람들(人)로 하여금(使) 심신을 깨끗하게 하(齊明)고 옷(服)을 엄정하게 하(盛)고(以) 제사(祭祀)를 받들게 한(承)다.

한없이 넓(洋洋)도다(乎). 그(其) 위(上)에 있(在)는 듯하(如)고 그(其) 좌우(左右)에 있(在)는 듯하(如)다.

『시(詩)』에서 말하기(曰)를 ‘귀신(神)의(之) 오심(格)조차(思) 헤아릴(度) 수 없(不可)구나(思) 더욱이(矧) 싫어할(射) 수 있(可)겠는가(思).’

아아(夫) 미(微)의(之) 드러남(顯)에 성(誠)의(之) 가릴(掩) 수 없음(不可)이 이와 같(如此)구나아(夫).”


<해석>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귀신(鬼神)의 덕(德)됨은 마땅히 성하도다. 그것을 보나 보이지 않고 그것을 들으나 들리지 않는다. 근본적(體)인 것(物)이니 떨어질 수 없다. 천하(天下)의 사람들로 하여금 심신을 깨끗하게 하고 옷을 엄정하게 입어 제사를 받들게 한다. 한없이 넓도다. 그 위에 있는 듯하고 그 좌우에 있는 듯하다. 『시(詩)』에서 말하기(曰)를 ‘귀신(鬼神)의 오심조차 헤아릴 수 없구나 더욱이 싫어할 수 있겠는가.’ 아아 자세한 것(微)이 드러나서 정성스럽게 함(誠)을 가릴 수 없게 됨이 이와 같구나아.”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程子曰。鬼神。天地之功用。而造化之迹也。張子曰。鬼神者。二氣之良能也。愚謂。以二氣言。則鬼者。陰之靈也。神者。陽之靈也。以一氣言。則至而伸者爲神。反而歸者爲鬼。其實。一物而已。爲德。猶言性情功效。

鬼神。無形與聲。然物之終始。莫非陰陽合散之所爲。是其爲物之體而物之所不能遺也。其言體物。猶易所謂幹事。

齊之爲言。齊也。所以齊不齊而致其齊也。明猶潔也。洋洋。流動充滿之意。能使人畏敬奉承而發見昭著如此。乃其體物而不可遺之驗也。孔子曰。其氣發揚于上。爲昭明焄蒿悽愴。此百物之精也。神之著也。正謂此爾。

詩。大雅抑之篇。格來也。矧況也。射厭也。言厭怠而不敬也。思語辭。

誠者。眞實無妄之謂。陰陽合散。無非實者。故其發見之不可揜。如此。

右。第十六章。不見不聞。隱也。體物如在。則亦費矣。此前三章。以其費之小者而言。此後三章。以其費之大者而言。此一章。兼費隱。包大小而言。

정자(程子)가 말하기(曰)를 “귀신(鬼神)은 천지(天地)의 작용(功用)이고(而) 조화(造化)의(之) 자취(迹)이다(也). 장자(張子)가 말하기(曰)를 “귀신(鬼神)이라는 것(者)은 음양(二氣)의(之) 타고난 능력(良能)이다(也). 내(愚)가 이르기(謂)를 “음양(二氣)로써(以) 말하자면(言) 곧(則) 귀(鬼)라는 것(者)은 음(陰)의(之) 결과(靈)이다(也). 신(神)이라는 것(者)은 양(陽)의(之) 결과(靈)이다(也). 만물의 원기(一氣)로써(以) 말하자면(言) 곧(則) 영향을 미치(至)면서(而) 펴지(伸)는 것(者)을 신(神)으로 한(爲)다. 물러나(反)면서(而) 돌아오(歸)는 것(者)을 귀(鬼)로 한(爲)다. 그(其) 본질(實)은 한가지(一) 것(物)일 뿐이(而已)다. 덕(德)됨(爲)은 성정(性情)과 효과(功效)를 말함(言)과 같(猶)다.

귀신(鬼神)은 모양(形)과(與) 소리(聲)가 없(無)으나(然) 물(物)의(之) 마지막과 처음(終始)은 음양(陰陽)이 모이(合)고 흩어짐(散)의(之) 한 일(所爲)임에 틀림없(莫非)다. 

이것(是)은 그(其) 물(物)의(之) 근본(體)이 되(爲)니(而) 물(物)의(之) 떨어질(遺) 수 없(不能)는 바(所)이다(也). 그(其) 물(物)의 근본(體)을 말하자면(言) 『역(易)』의 이른바(所謂) ‘일(事)을 처리함(幹)’과 같(猶)다.

제(齊)의(之) 말(言)됨(爲)은 가지런히 함(齊)이다(也). 가지런하(齊)지 못한 것(不)을 가지런히 하(齊)여(而) 그(其) 가지런함(齊)에 이르(致)는 방법(所以)이다(也). 명(明)은 깨끗이 함(潔)과 같(猶)다(也). 양양(洋洋)은 흘러 움직이(流動)고 가득 참(充滿)의(之) 뜻(意)이다.

사람(人)으로 하여금(使) 두려워하(畏)고 공경하(敬)고 뜻을 받들어 잇게 할(奉承) 수 있(能)으니(而) 밖으로 나타나(發見)고 환하게 드러남(昭著)이 이와 같(如此)다. 이에(乃) 그(其) 물(物)의 근본(體)이니(而) 떨어질(遺) 수 없음(不可)의(之) 증거(驗)이다(也).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曰)를 “그(其) 기(氣)가 위(上)에서(于) 펼쳐 일어나(發揚)서 밝아짐(昭明)과 어지러워짐(焄蒿)과 슬픔(悽愴)이 된(爲)다. 이것(此)은 여러가지 물건(百物)의(之) 순수함(精)이다(也). 신(神)의(之) 나타남(著)이다(也).” 바로(正) 이것(此)을 이른(謂)다(爾).

시(詩)는 「대아(大雅) 억(抑)」의(之) 편(篇)이다. 격(格)은 옴(來)이다(也). 신(矧)은 더욱이(況)이다(也). 역(射)은 싫어함(厭)이다(也). 싫어하(厭)고 업신여기(怠)면서(而) 공경하(敬)지 않음(不)을 말한(言)다(也). 사(思)는 어사(語辭)이다.

성(誠)이라는 것(者)은 순수하고 바르(眞實)면서 어그러짐(妄)이 없음(無)의(之) 이름(謂)이다. 음양(陰陽)의 모이(合)고 흩어짐(散)은 모두(無非) 바른(實) 것(者)이므로(故) 그(其) 밖으로 나타남(發見)의(之) 가릴(揜) 수 없음(不可)이 이와 같(如此)다.

오른쪽(右)은 제(第) 십육(十六)장(章)이다. 보이(見)지 않(不)고 들리(聞)지 않음(不)은 은(隱)이다(也). 물(物)의 근본(體)이 있(在)는 듯함(如)은 곧(則) 또한(亦) 널리 쓰임(費)이다(矣). 이(此) 이전(前)의 세(三) 장(章)은 그(其) 비(費)의(之) 작(小)은 것(者)을 가지고(以)서(而) 말한(言)다. 이(此) 이후(後)의 세(三) 장(章)은 그(其) 비(費)의(之) 큰(大) 것(者)을 가지고(以)서(而) 말한(言)다. 이(此) 한(一) 장(章)은 비(費)와 은(隱)을 아울러(兼) 큰 것(大)과 작은 것(小)을 포함하(包)면서(而) 말한(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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