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或生而知之。或學而知之。或困而知之。及其知之。一也。
或安而行之。或利而行之。或勉强而行之。及其成功。一也。
子曰。好學近乎知。力行近乎仁。知恥近乎勇。
知斯三者。則知所以脩身。
知所以脩身。則知所以治人。
知所以治人。則知所以治天下國家矣。
혹생이지지。혹학이지지。혹곤이지지。급기지지。일야。
혹안이행지。혹리이행지。혹면강이행지。급기성공。일야。
자왈。호학근호지。력행근호인。지치근호용。
지사삼자。즉지소이수신。
지소이수신。즉지소이치인。
지소이치인。즉지소이치천하국가의。
<직역>
어떤 이(或)는 태어나(生)면서(而) 그것(之)을 알(知)고 어떤 이(或)는 배우(學)고(而) 그것(之)을 알(知)고 어떤 이(或)는 곤궁해져(困)서야(而) 그것(之)을 아(知)는데 마침내(及其) 그것(之)을 알(知)면 하나(一)입니다(也).
어떤 이(或)는 편안하(安)면서(而) 그것(之)을 행하(行)고 어떤 이(或)는 이익이 돼(利)야(而) 그것(之)을 행하(行)고 어떤 이(或)는 억지로 시켜(勉强)야(而) 그것(之)을 행하(行)는데 마침내(及其) 공로(功)를 이루(成)면 하나(一)입니다(也).”
선생님(子)이 말씀하시기(曰)를 “학문(學)을 좋아함(好)은 지(知)에(乎) 가깝(近)다. 힘써 행함(力行)은 인(仁)에(乎) 가깝(近)다. 부끄러움(恥)을 앎(知)은 용(勇)에(乎) 가깝(近)다.
이(斯) 세(三) 가지(者)를 알(知)면 곧(則) 몸(身)을 단정히 하(脩)는 방법(所以)을 안(知)다.
몸(身)을 단정히 하(脩)는 방법(所以)을 알(知)면 곧(則) 사람(人)을 바로잡(治)는 방법(所以)을 안(知)다.
사람(人)을 다스리(治)는 방법(所以)을 알(知)면 곧(則) 천하국가(天下國家)를 다스리(治)는 방법(所以)을 안(知)다(矣).
<해석>
어떤 이는 태어나면서 알(知)고 어떤 이는 배우고 알(知)고 어떤 이는 곤궁해져서야 아(知)는데 마침내 그것을 알면 하나입니다.
어떤 이는 편안히 행하(行)고 어떤 이는 이익이 돼야 행하(行)고 어떤 이는 억지로 시켜야 행하(行)는데 마침내 공로를 이루면 하나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지(知)에 가깝고 힘써 행하는 것은 인(仁)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다.
이 세 가지를 알면 곧 몸(身)을 단정히 하는 방법을 알고
몸(身)을 단정히 하는 방법을 알면 곧 사람을 바로잡는 방법을 알고
사람을 바로잡는 방법을 알면 곧 천하국가(天下國家)를 다스리는 방법을 안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知之者之所知。行之者之所行。謂達道也。以其分而言。則所以知者。知也。所以行者。仁也。所以至於知之成功而一者。勇也。以其等而言。則生知安行者。知也。學知利行者。仁也。困知勉行者。勇也。蓋人性。雖無不善。而氣稟有不同者。故聞道有蚤莫。行道有難易。然能自强不息。則其至。一也。呂氏曰。所入之塗雖異。而所至之域則同。此所以爲中庸。若乃企生知安行之資。爲不可幾及。輕困知勉行。謂不能有成。此道之所以不明不行也。
子曰。二字。衍文。此言。未及乎達德而求以入德之事。通上文三知爲知。三行爲仁。則此三近者。勇之次也。呂氏曰。愚者。自是而不求。自私者。徇人欲而忘返。懦者。甘爲人下而不辭。故好學。非知。然足以破愚。力行。非仁。然足以忘私。知恥。非勇。然足以起懦。
斯三者。指三近而言。人者。對己之稱。天下國家。則盡乎人矣。言此。以結上文修身之意。起下文九經之端也。
그것(之)을 아(知)는 사람(者)의(之) 아(知)는 바(所)와 그것(之)을 행하(行)는 사람(者)의(之) 행하(行)는 바(所)는 마땅한(達) 도(道)를 이른(謂)다(也). 그(其) 구별(分)을 가지고(以)서(而) 말하(言)면 곧(則) 아(知)는 방법(所以)인 것(者)은 지(知)이다(也). 행하(行)는 방법(所以)인 것(者)은 인(仁)이다(也). 그것(之)을 알(知)고 공로(功)를 이루(成)면서(而) 동일함(一)에(於) 이르(至)는 방법(所以)이라는 것(者)은 용(勇)이다(也). 그(其) 등급(等)을 가지고(以)서(而) 말하(言)면 곧(則) 나면서 알(生知)고 편안히 행하(安行)는 것(者)은 지(知)이다(也). 배우고 알(學知)고 이로워서 행하(利行)는 것(者)은 인(仁)이다(也). 곤해져서 알(困知)고 억지로 행하(勉行)는 것(者)은 용(勇)이다(也). 모든(蓋) 사람(人)의 성(性)은 비록(雖) 불선(不善)이 없(無)으나(而) 기질(氣)과 품성(稟)에 같지 않(不同)은 것(者)이 있(有)으므로(故) 도(道)를 들음(聞)에 이르(蚤)고 늦음(莫)이 있(有)고 도(道)를 행함(行)에 어렵(難)고 쉬움(易)에 있(有)으나(然) 스스로(自) 힘쓰(强)고 쉬(息)지 않(不)을 수 있(能)다면 곧(則) 그(其) 도달함(至)은 하나(一)이다(也). 여씨(呂氏)가 말하기(曰)를 “들어감(入)의(之) 길(塗)인 바(所)가 비록(雖) 다르(異)나(而) 도달함(至)의(之) 땅(域)인 바(所)는 곧(則) 같(同)으니 이것(此)이 중용(中庸)이 되(爲)는 까닭(所以)이다. 만약(若) 도리어(乃) 나면서 앎(生知)과 편안히 행함(安行)의(之) 바탕(資)을 마음에 둬(企)서 거의(幾) 미칠(及) 수 없(不可)다고 하(爲)고 곤해져서 앎(困知)과 억지로 행함(勉行)을 가벼이 여겨(輕) 성공(成)이 있(有)을 수 없(不能)다고 이르(謂)면 이것(此)이 도(道)의(之) 확실하지 않(不明)고 행해지(行)지 않(不)는 까닭(所以)이다(也).
‘자왈(子曰)’ 두(二) 글자(字)는 잘못 들어간 글자(衍文)이다. 이것(此)은 마땅한(達) 덕(德)에(乎) 미치지(及) 못하(未)지만(而) 덕(德)에 들어감(入)의(之) 일(事)로써(以) 구함(求)을 말하(言)니 윗(上) 글(文)의 세(三) 지(知)를 지(知)로 하(爲)고 세(三) 행(行)을 인(仁)으로 함(爲)을 보(通)면 곧(則) 이(此) 세가지(三)에 가까운(近) 것(者)은 용(勇)의(之) 다음(次)이다(也). 여씨(呂氏)가 말하기(曰)를 “어리석은 사람(愚者)은 자기 의견만 옳게 여기(自是)면서(而) 구하(求)지 않(不)고 이기적인(自私) 사람(者)은 사람(人)의 욕심(欲)을 쫓(徇)으면서(而) 되돌아오기(返)를 잊(忘)고 나약한(懦) 사람(者)은 타인(人)의 아래(下)가 됨(爲)을 달게 여기(甘)면서(而) 사양하지 않(不辭)는다. 그러므로(故) 학문(學)을 좋아함(好)이 지(知)는 아니(非)나(然) 어리석(愚)지 않기(破)에 충분하(足以)고 힘써 행함(力行)이 인(仁)은 아니(非)나(然) 사사로움(私)을 잊기(私)에 충분하(足以)고 부끄러움(恥)을 앎(知)이 용(勇)은 아니(非)나(然) 나약함(懦)을 고치기(起)에 충분하(足以)다.
이(斯) 세(三)가지(者)는 세(三) 가까운 것(近)을 가리키(指)면서(而) 말하(言)니 인(人)이라는 것(者)은 자기(己)와 대조함(對)의(之) 일컬음(稱)이다. 천하국가(天下國家)는 곧(則) 모든(盡) 사람(人)에 대함(乎)이다(矣). 이것(此)을 말하(言)여 그것으로써(以) 윗(上) 글(文)에서 ‘수신(修身)’의(之) 뜻(意)을 마치(結)고 아랫(下) 글(文)에서 ‘구경(九經)’의(之) 처음(端)을 시작한(起)다(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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