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7일 월요일

중용자잠 35-自箴

<원문>

朱子曰一者。誠也。


<직역>

주자(朱子)가 말하기(曰)를 “일(一)이라는 것(者)은 성(誠)이다(也).”


<해석>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일(一)이라는 것은 정성스러움(誠)이다.”




<원문>

〇又曰凡事皆欲先立乎誠。


<직역>

또한(又) 말하기(曰)를 “모든(凡) 일(事)을 모두(皆) 먼저(先) 성(誠)에서(乎) 이루(立)고자 함(欲)이다.”


<해석>

또한 말하기를 “모든 일을 모두 먼저 정성스러움(誠)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원문>

〇箴曰豫則立三字。中庸大學之總義也。欲平者先治。欲治者先齊。欲齊者先修。欲修者先正。欲正者先誠。誠者萬事之所豫也。欲獲者先信。欲信者先順。欲順者先誠。誠者萬事之所豫也。大學中庸。皆以誠字爲首功。而大學則曰欲誠其意者。先之以格致。中庸則曰欲誠其身者。先之以明善。亦一例也。然格物致知。不過知物之本末而已。明善則必知天。知天爲愼獨之本。此其異也。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예즉립(豫則立)’ 세(三) 글자(字)는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의(之) 주요한(總) 의미(義)이다(也). 평정하(平)고자 하(欲)는 사람(者)은 먼저(先) 다스린(治)다. 다스리(治)고자 하(欲)는 사람(者)은 먼저(先) 가지런히 한(齊)다. 가지런히 하(齊)고자 하(欲)는 사람(者)은 먼저(先) 닦(修)는다. 닦(修)고자 하(欲)는 사람(者)은 먼저(先) 바로 잡(正)는다. 바로 잡(正)고자 하(欲)는 사람(者)은 먼저(先) 성(誠)한다. 성(誠)이라는 것(者)은 온갖 일(萬事)의(之) 앞서 하(豫)는 바(所)이다(也). 신임을 받(獲)고자 하(欲)는 사람(者)은 먼저(先) 진실하(信)다. 진실하(信)고자 하(欲)는 사람(者)은 먼저(先) 따른(順)다. 따르(順)고자 하(欲)는 사람(者)은 먼저(先) 성(誠)한다. 성(誠)이라는 것(者)은 온갖 일(萬事)의(之) 앞서 하(豫)는 바(所)이다(也).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은 모두(皆) ‘성(誠)’이라는 글자(字)로써(以) 으뜸가는 공로(首功)로 한(爲)다. 그리고(而) 『대학(大學)』에서 곧(則) 말하기(曰)를 ‘그(其) 뜻(意)을 성(誠)하고자 하(欲)는 사람(者)은 헤아림(格)과 지극히 함(致)으로써(以) 그것(之)에 앞선(先)다.’ 『중용(中庸)』에서 곧(則) 말하기(曰)를 ‘그(其) 몸(身)을 성(誠)하고자 하(欲)는 사람(者)은 선(善)을 확실히 함(明)으로써(以) 그것(之)에 앞선(先)다’ 또한(亦) 하나(一)의 종류(例)이다(也). 그러나(然)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는 물(物)의(之) 처음과 끝(本末)을 앎(知)에 지나지 않(不過)을 뿐(而已)이다. 선(善)을 확실히 하(明)면 곧(則) 반드시(必) 하늘(天)을 안(知)다. 하늘(天)을 앎(知)을 신독(愼獨)의(之) 근본(本)으로 한(爲)다. 이것(此)이 그(其) 다름(異)이다(也).


<해석>

경계해 말한다. ‘예즉립(豫則立)’ 세 글자는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의 주요한 의미이다. 평정하(平)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다스린(治)다. 다스리(治)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가지런히 한(齊)다. 가지런히 하(齊)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닦(修)는다. 닦(修)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바로 잡(正)는다. 바로 잡(正)고자하는 사람은 먼저 정성스럽게 한(誠)다. 정성스럽게 함(誠)이라는 것은 온갖 일(萬事)에 앞서 하는 것이다. 신임을 받(獲)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진실하(信)다. 진실하(信)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따른(順)다. 따르(順)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정성스럽게 한(誠)다. 정성스럽게 함(誠)이라는 것은 온갖 일(萬事)에 앞서 하는 것이다.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은 모두 ‘성(誠)’이라는 글자를 으뜸가는 공로로 한다. 그리고 『대학(大學)』에서 곧 말하기를 ‘그 뜻(意)을 정성스럽게 하(誠)고자 하는 사람은 헤아림(格)과 지극히 함(致)으로 그것에 앞선다.’ 『중용(中庸)』에서 곧 말하기를 ‘그 몸(身)을 정성스럽게 하(誠)고자 하는 사람은 선(善)을 확실히 함으로 그것에 앞선다’도 하나의 종류이다. 그러나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는 물(物)의 처음과 끝을 아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선(善)을 확실히 하면 곧 반드시 하늘(天)을 안다. 하늘(天)을 아는 것을 신독(愼獨)의 근본으로 한다. 이것이 그 다름이다.


<해설>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에서 공통적으로 강조 하는 것 : 성(誠) = 정성스럽게 함 = 온갖 일(萬事)에 앞서 하는 것




<원문>

箴曰九經一節。爲得位行道者陳其數也。在下位一節。爲不得位者說其義也。彼亦結之以誠。此亦結之以誠。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구경(九經)’ 한(一) 절(節)은 자리(位)를 얻(得)어 도(道)를 행하(行)는 사람(者)을 위해(爲) 그(其) 규칙(數)을 늘어놓음(陳)이다(也). ‘재하위(在下位)’ 한(一) 절(節)은 자리(位)를 얻지 못한(不得) 사람(者)을 위해(爲) 그(其) 의(義)를 말함(說)이다(也). 저기(彼) 또한(亦) 성(誠)으로써(以) 그것(之)을 마친(結)다. 여기(此) 또한(亦) 성(誠)으로써(以) 그것(之)을 마친(結)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구경(九經)’ 한 절(節)은 자리(位)를 얻어 도(道)를 행하(行)는 사람을 위해 그 규칙을 늘어놓은 것이다. ‘재하위(在下位)’ 한 절(節)은 자리(位)를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해 그 의(義)를 말한 것이다. 저기도 정성스럽게 함(誠)으로 마치고 여기도 정성스럽게 함(誠)으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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