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君子之道。費而隱。
夫婦之愚。可以與知焉。及其至也。雖聖人亦有所不知焉。
夫婦之不肖。可以能行焉。及其至也。雖聖人亦有所不能焉。
天地之大也。人猶有所憾。
故君子語大。天下莫能載焉。語小。天下莫能破焉。
詩云。鳶飛戾天。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
君子之道。造端乎夫婦。及其至也。察乎天地。
군자지도。비이은。부부지우。가이여지언。급기지야。수성인역유소부지언。부부지불초。가이능행언。급기지야。수성인역유소불능언。천지지대야。인유유소감。
고군자어대。천하막능재언。어소。천하。막능파언。
시운。연비려천。어약우연。
언기상하찰야。
군자지도。조단호부부。급기지야。찰호천지。
<직역>
군자(君子)의(之) 도(道)는 널리 쓰이(費)면서(而) 은(隱)하다. 부부(夫婦)의(之) 어리석음(愚)으로도 함께(與) 알(知) 수 있(可以)다(焉). 그(其) 지극함(至)에 미치(及)면(也) 비록(雖) 성인(聖人) 또한(亦) 알지 못하(不知)는 바(所)가 있(有)다(焉). 부부(夫婦)의(之) 못남(不肖)으로도 능히(能) 행할(行) 수 있(可以)다(焉). 그(其) 지극함(至)에 미치(及)면(也) 비록(雖) 성인(聖人) 또한(亦) 할 수 없(不能)는 바(所)가 있(有)다(焉).
천지(天地)의(之) 큼(大)에(也) 사람들(人)이 근심하(憾)는 바(所)가 있(有)는 듯하(猶)다.
그러므로(故) 군자(君子)가 넓음(大)을 말하(語)면 천하(天下)가 능히(能) 알고 행함(載)이 없(莫)다(焉). 자세함(小)을 말하(語)면 천하(天下)가 능히(能) 깨뜨림(破)이 없(莫)다(焉).
『시(詩)』에서 이르기(云)를 “솔개(鳶)가 날(飛)아서 하늘(天)에 이르(戾)고 물고기(魚)가 못(淵)에서(于) 뛰며 좋아하(躍)네.”
그(其) 상하(上下)를 살핌(察)을 말한(言)다(也).
군자(君子)의(之) 도(道)는 부부(夫婦)에서(乎) 처음(端)을 시작하(造)나 그(其) 지극함(至)에 미치(及)면(也) 천지(天地)에(乎) 드러난(察)다.
<해석>
군자(君子)의 도(道)는 널리 쓰이(費)면서 희미하(隱)다. 부부(夫婦)의 어리석음으로도 함께 알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미치면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 부부(夫婦)의 못남으로도 행할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미치면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할 수 없는 바가 있다.
천지(天地)처럼 크니 사람들이 근심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넓다는 점을 말하면 천하(天下) 모두가 알고 행할 수는 없고 자세하다는 점을 말하면 천하(天下) 모두가 어길 수만은 없다.
『시(詩)』에서 이르기를 “솔개가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가 못에서 뛰며 좋아하네.”
그 위아래를 살피고 있음을 말한다.
군자(君子)의 도(道)는 부부(夫婦)에서 처음을 시작하나 그 지극함에 미치면 천지(天地)에 드러난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費。用之廣也。隱。體之微也。
君子之道。近自夫婦居室之間。遠而至於聖人天地之所不能盡。其大無外。其小無內。可謂費矣。然其理之所以然。則隱而莫之見也。蓋可知可能者。道中之一事。及其至而聖人不知不能。則擧全體而言。聖人固有所不能盡也。侯氏曰。聖人所不知。如孔子問禮問官之類。所不能。如孔子不得位。堯舜病博施之類。愚謂。人所憾於天地。如覆載生成之偏。及寒暑災祥之不得其正者。
詩。大雅旱麓之篇。鳶。鴟類。戾。至也。察。著也。子思引此詩。以明化育流行。上下昭著。莫非此理之用。所謂費也。然其所以然者。則非見聞所及。所謂隱也。故程子曰。此一節。子思喫緊爲人處。活潑潑地。讀者其致思焉。
結上文。
右。第十二章。子思之言。蓋以申明首章道不可離之意也。其下八章。雜引孔子之言以明之。
비(費)는 작용(用)의(之) 넓음(廣)이다(也). 은(隱)은 근본(體)의(之) 작음(微)이다(也).
군자(君子)의(之) 도(道)는 가까운 데서(近)는 부부(夫婦)가 기거하는 방(居室)의(之) 사이(間)부터(自) 먼 데서(遠)는 성인(聖人)과 천지(天地)의(之) 다할(盡) 수 없(不能)는 바(所)에(於) 이르기까지(而至) 그(其) 큼(大)에 밖(外)이 없(無)고 그(其) 작음(小)에 안(內) 없(無)으니 참으로(可謂) ‘비(費)’이다(矣). 그러나(然) 그(其) 이치(理)의(之) 그렇게 된 까닭(所以然)은 곧(則) 어두워(隱)서(而) 그것(之)을 보(見)지 못함(莫)이다(也). 대개(蓋) 알(知) 수 있(可)고 능할(能) 수 있(可)는 것(者)은 길(道) 가운데(中)의(之) 한(一) 일(事)이다. 그(其) 지극함(至)에 미쳐(及)서는(而) 성인(聖人)도 알지 못하(不知)고 할 수 없음(不能)은 곧(則) 전부(全體)를 통틀(擧)면서(而) 말함(言)이니 성인(聖人)도 진실로(固) 다할(盡) 수 없(不能)는 바(所)가 있(有)다. 후씨(侯氏)가 말하기(曰)를 “성인(聖人)도 알지 못하(不知)는 바(所)는 공자(孔子)께서 예(禮)를 묻(問)고 일(官)을 물음(問)의(之) 종류(類)와 같(如)다. 할 수 없(不能)는 바(所)는 공자(孔子)께서 자리(位)를 얻지 못함(不得)과 요순(堯舜)께서도 널리 베풂(博施)을 근심함(病)의(之) 종류(類)와 같(如)다.” 내(愚)가 이르기(謂)를 사람들(人)이 천지(天地)에 대해(於) 섭섭해하(憾)는 바(所)는 하늘이 덮고 땅이 싣(覆載)고 생겨남(生成)의(之) 치우침(偏)과(及) 추위와 더위(寒暑)와 재앙과 복됨(災祥)의(之) 그(其) 바름(正)을 얻지 못한(不得) 것(者)과 같(如)다.
시(詩)는 「대아(大雅) 한록(旱麓)」의(之) 편(篇)이다. 연(鳶)은 솔개(鴟)의 종류(類)이다. 려(戾)는 이름(至)이다(也). 찰(察)은 나타남(著)이다(也). 자사(子思)께서 이(此) 시(詩)를 인용하(引)여 그것으로써(以) 만들어 기름(化育)이 널리 퍼져(流行) 위아래(上下)에 환하게 드러나(昭著) 아닌게 아니라(莫非) 이것(此)이 이(理)의(之) 작용(用)이라 밝혔(明)다. 소위(所謂) 널리 쓰임(費)이다(也). 그러나(然) 그것(其)이 그렇게 된 까닭(所以然)이라는 것(者)은 곧(則) 보(見)고 들음(聞)이 미치(及)는 바(所)가 아니(非)니 소위(所謂) 은(隱)이다(也). 그러므로(故)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시기(曰)를 “이(此) 한(一) 절(節)은 자사(子思)께서 매우 중요하게(喫緊) 사람(人)을 위한(爲) 것(處)이고 활기가 넘치는 것(活潑潑地)이다.” 독자(讀者)는 마땅히(其) 생각(思)을 열심히해야 한(致)다(焉).
윗글(上文)을 끝냈(結)다.
오른쪽(右)은 제(第) 십이(十二)장(章)이다. 자사(子思)의(之) 말씀(言)은 모두(蓋) 그것으로써(以) 첫(首) 장(章)의 도(道)가 떠날(離) 수 없음(不可)의(之) 뜻(意)을 거듭(申) 밝혔(明)다(也). 그(其) 아래(下) 여덟(八) 장(章)은 모두(雜) 공자(孔子)의(之) 말씀(言)을 인용하(引)여 그것으로써(以) 그것(之)을 밝혔(明)다.
<해설>
일반적으로 재(載)는 ‘싣다’로 해석하고 파(破)는 ‘깨뜨린다’로 해석한다. 그러나 여기서 대상은 ‘군자(君子)의 도(道)’이고 여기서 도(道)의 원뜻은 ‘길’이며 여기서 파생되어 ‘법도’, ‘방법’등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길이나 법도를 싣는다”거나 “길이나 법도를 깨뜨린다”고 해석하면 해석이 완전히 엇나가 버린다. 하물며 떨어질 수도 없는 것이 도(道)인데 깨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앞부분을 잘 보면 여기서도 지행(知行)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재(載)와 파(破)는 지행(知行)과 관련지어 해석해야 하므로 재(載)는 ‘알고 행하다’로 해석했다. 마찬가지로 파(破)를 해석할 때 ‘법도를 깬다’는 것은 ‘규칙을 깬다’, ‘규칙을 어긴다’의 의미일 것이고 여기서 규칙은 ‘길에서 옳은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길 또는 법도를 어기다”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어기다’로 해석했다. 길의 방향대로 가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인데 모든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만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조금이라도 옳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 부부(夫婦)의 어리석음이나 못남으로도 알고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소(大小)의 대(大)는 앞의 비(費)와 연결지어 해석했다. ‘길이 크다는 점을 말하면’, ‘길이 넓다는 점을 말하면’, ‘법도가 널리 쓰인다는 점을 말하면’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소(小)를 해석할 때 앞에서 대(大)를 말하고 뒤에서 소(小)를 말해서 둘을 보통 반대의 의미로 해석하는데 ‘길이 작다는 점을 말하면’이나 ‘길의 작은 부분을 말하면’으로 해석하면 뒤의 ‘법도를 어길 수만은 없다’와 연결되지 않는다. 여기서도 도(道)를 법도로 해석하여 ‘법도가 자세하다는 점을 말하면’으로 해석하면 비로소 뒤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천지(天地)의 큼(大)’ 역시 맥락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걸어야 할 길’, ‘인간이 따라야 할 법도’ 등을 말하는데 왜 갑자기 ‘천지(天地)가 크다’는 내용이 나오는가. 이 부분도 앞뒤 맥락을 볼 때 당연히 ‘군자(君子)의 도(道)’가 대상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군자(君子)의 도(道)가 천지(天地)처럼 크니’로 해석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다음에 나오는 ‘그러므로(故)’ 이하의 문장들과 연결된다. ‘군자(君子)의 도(道)가 천지(天地)처럼 크니 사람들은 아직 부족하다 여겨 근심하며 멈추지 않는다.’
이 절(節)은 앞 절(節)과 뒷 절(節)을 이어준다. 앞까지는 군자(君子)가 걷고 있는 길(道)은 무엇이며 길대로 걷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했고 뒤에서는 길(道) 걷는 방법을 말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는 어리석은 남자와 어리석은 여자들(愚夫愚婦)이 걷고 있는 길(道)이 군자(君子)가 걷는 길(道)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여 장차 군자(君子)가 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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