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6일 일요일

중용자잠 18-自箴

<원문>

箴曰欲行中庸之道者。非恕不能。一恕字可以貫萬事萬物。上節言天道。此節言人道。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중용(中庸)의(之) 도(道)를 행하(行)고자 하(欲)는 사람(者)은 서(恕)가 아닐(非) 수 없(不能)다. 오로지(一) 서(恕)라는 글자(字)는 온갖 일(萬事)과 모든 것(萬物)을 꿸(貫) 수 있다. 윗(上) 절(節)은 하늘(天)의 도(道)를 말하(言)고 이(此) 절(節)은 사람(人)의 도(道)를 말한(言)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중용(中庸)의 도(道)를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서(恕)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서(恕)라는 글자가 온갖 일(萬事)과 모든 것(萬物)을 꿸 수 있다. 윗 절(節)은 하늘(天)의 도(道)를 말하고 이 절(節)은 사람(人)의 도(道)를 말한다.




<원문>

〇道不遠人者。孟子所謂萬物皆備於我也。有求乎子則事父之道在我也。有求乎臣則事君之道在我也。有求乎弟則事兄之道在我也。


<직역>

‘도(道)는 사람(人)에서 멀(遠)지 않(不)다’는 것(者)은 『맹자(孟子)』에서 소위(所謂) ‘모든 것(萬物)이 모두(皆) 나(我)에게(於) 갖추어졌(備)다’이다(也). 자식(子)에게(乎) 구함(求)이 있(有)다면 곧(則) 아버지(父)를 섬김(事)의(之) 도(道)는 나(我)에게 있(在)다(也). 신하(臣)에게(乎) 구함(求)이 있(有)다면 곧(則) 임금(君)을 섬김(事)의(之) 도(道)는 나(我)에게 있(在)다(也). 동생(弟)에게(乎) 구함(求)이 있(有)다면 곧(則) 형(兄)을 섬김(事)의(之) 도(道)는 나(我)에게 있(在)다(也).


<해석>

‘도(道)는 사람(人)에서 멀지 않다’는 것은 『맹자(孟子)』에서 이른바 ‘모든 것(萬物)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이다. 자식(子)에게 구하는 것이 있다면 곧 아버지(父)를 섬기는 방법(道)은 나에게 있다. 신하(臣)에게 구하는 것이 있다면 곧 임금(君)을 섬기는 방법(道)은 나에게 있다. 동생(弟)에게 구하는 것이 있다면 곧 형(兄)을 섬기는 방법(道)은 나에게 있다.




<원문>

〇道不在我則道遠於人也。旣曰人道而遠於人身。則不可以爲道。


<직역>

도(道)가 나(我)에게 있(在)지 않(不)다면 곧(則) 도(道)가 사람(人)에서(於) 멂(遠)이다(也). 이미(旣) 말하기(曰)를 사람(人)의 도(道)이나(而) 사람(人)의 몸(身)에서(於) 멀(遠)다면 곧(則) 도(道)라 여길(以爲) 수 없(不可)다.


<해석>

도(道)가 나에게 있지 않다면 곧 도(道)가 사람(人)에서 멀다는 것이다. 이미 사람(人)의 도(道)이면서 사람(人)의 몸에서 멀다면 곧 도(道)라 여길 수 없다고 말했다.




<원문>

〇以人治人者。所求乎人以事人也。我之所以事人者。與我之所以求於人者不同。則改我之所爲而后已。此所謂改而止也。執柯以伐柯者。新柯與舊柯不同。則或改而長之。或改而短之。或改而大之。或改而小之。必新舊相準而后止。以人治人。亦猶是也。


<직역>

사람(人)으로써(以) 사람(人)을 바로잡(治)는다는 것(者)은 타인(人)에게(乎) 구하(求)는 바(所) 그것으로써(以) 사람(人)을 섬김(事)이다(也). 나(我)의(之) 타인(人)을 섬기(事)는 방법(所以)이라는 것(者)과(與) 나(我)의(之) 타인(人)에게(於) 구하(求)는 방법(所以)이라는 것(者)이 서로 같지 않(不同)다면 곧(則) 나(我)의(之) 하(爲)는 바(所)를 고친(改) 이후(而后)에 그친(已)다. 이것(此)이 소위(所謂) ‘고치(改)고(而) 그친(止)다’이다(也). 자루(柯)를 잡음(執) 그것으로써(以) 도끼 자루감을 도끼로 베(伐柯)는 것(者)은 새로운(新) 자루(柯)와(與) 옛(舊) 자루(柯)가 서로 같지 않(不同)다면 곧(則) 어떤 이(或)는 고치(改)면서(而) 그것(之)을 길게 하(長)고 어떤 이(或)는 고치(改)면서(而) 그것(之)을 짧게 하(短)고 어떤 이(或)는 고치(改)면서(而) 그것(之)을 크게 하(大)고 어떤 이(或)는 고치(改)면서(而) 그것(之)을 작게 한(小)다. 반드시(必) 새 것과 헌 것(新舊)이 서로(相) 동등한(準) 이후(而后)에 그친(止)다. 사람(人)으로써(以) 사람(人)을 바로잡(治)는다 또한(亦) 마땅히(猶) 옳(是)다(也).


<해석>

사람(人)으로 사람(人)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타인에게 구하는 바로 사람(人)을 섬기는 것이다. 내가 타인을 섬기는 방법과 내가 타인에게 구하는 방법이 서로 같지 않다면 곧 내가 하는 바를 고친 이후에야 그친다. 이것이 이른바 ‘고치고 그친다’이다. 자루를 잡아서 도끼 자루감을 도끼로 베는 것은 새로운 자루와 옛 자루가 서로 같지 않다면 곧 고쳐서 길게 늘리거나 짧게 줄이거나 크게 키우거나 작게 줄인다. 반드시 새 것과 헌 것이 서로 같게된 이후에야 그친다. 사람(人)으로 사람(人)을 바로잡는다는 것도 마땅히 옳다.




<원문>

〇恕者以一而貫萬者也。謂之忠恕者。以中心行恕也。若必盡己之謂忠。推己之謂恕。則忠恕仍是二物。恐不可也。經云忠恕。而所言君子之道四。仍只是恕。不復言忠。斯可知也。


<직역>

서(恕)라는 것(者)은 하나(一)를 가지(以)고(而) 갖가지(萬)를 꿰(貫)는 것(者)이다(也). 그것(之)을 충서(忠恕)라고 이르(謂)는 것(者)이다. 적절한(中) 마음(心)으로써(以) 서(恕)를 행한(行)다(也). 만약(若) 반드시(必) 자기(己)를 다함(盡) 그것(之)을 충(忠)이라 이르(謂)고 자기(己)를 헤아림(推) 그것(之)을 서(恕)라 이른(謂)다면 곧(則) 충서(忠恕)는 여전히(仍是) 두(二) 종류(物)이다. 아마도(恐) 아니(不可)다(也). 경(經)이 ‘충서(忠恕)’라 이르(云)면서(而) 말하(言)는 바(所)는 ‘군자(君子)의(之) 도(道)는 넷(四)이다’이다. 거듭(仍) 단지(只是) 서(恕)이다. 다시(復) 충(忠)을 말하(言)지 않(不)는다. 이것(斯)을 알 수 있(可知)다(也).


<해석>

서(恕)라는 것은 하나를 가지고 갖가지를 꿰는 것으로 그것을 충서(忠恕)라 이르는 것이다. 적절한 마음(心)으로 서(恕)를 행한다. 만약 반드시 자기를 다하는 것을 충(忠)이라 이르고 자기를 헤아리는 것을 서(恕)라 이르려고 한다면 곧 충서(忠恕)는 여전히 두 종류이다. 아마도 아니다. 경(經)이 ‘충서(忠恕)’라 이르면서 말하는 바는 ‘군자(君子)의 도(道)는 넷이다’이다.


<해설>

『중용장구(中庸章句)』를 비롯하여 일반적으로 충서(忠恕)를 충(忠)과 서(恕)로 쪼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충서(忠恕)의 본질은 서(恕)이다.




<원문>

〇朱子曰違道不遠。如齊師違穀七里之違。


<직역>

주자(朱子)가 말하기(曰)를 “도(道)에서 떨어짐(違)이 멀(遠)지 않음(不)은 ‘제나라(齊) 군대(師)가 곡 지역(穀)과 떨어짐(違)이 칠(七)리(里)입니다’의(之) 위(違)와 같(如)다.


<해석>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도(道)에서 거의 떨어져 있지 않음은 ‘제나라(齊)의 군대(師)가 곡 지역(穀)과 떨어짐(違)이 칠(七) 리(里)입니다’의(之) 위(違)와 같(如)다.”




<원문>

〇庸德者。恆德也。庸言者。恆言也。庸德之行則德常進矣。庸言之謹則言常訒矣。


<직역>

용(庸)덕(德)이라는 것(者)은 변하지 아니하(恆)는 덕(德)이다(也). 용(庸)언(言)이라는 것(者)은 변하지 아니하(恆)는 말(言)이다(也). 용(庸)덕(德)의(之) 행적(行)은 곧(則) 덕(德)으로 항상(常) 나아감(進)이다(矣). 용(庸)언(言)의(之) 삼감(謹)은 곧(則) 말(言)을 항상(常) 참음(訒)이다(矣).


<해석>

한결같(庸)은 덕(德)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덕(德)이다. 한결같(庸)은 말(言)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말(言)이다. 한결같(庸)은 덕(德)의 행적(行)은 곧 덕(德)으로 항상 나아가는 것이다. 한결같(庸)은 말(言)의 삼감은 곧 말(言)을 항상 참는 것이다.




<원문>

朱子曰德不足而勉則行益力。言有餘而訒則謹益至。


<직역>

주자(朱子)가 말하기(曰)를 “덕(德)이 부족하(不足)나(而) 힘쓴(勉)다면 곧(則) 행함(行)이 더욱(益) 부지런해진(力)다. 말(言)에 나머지(餘)가 있(有)으나(而) 말을 참(訒)는다면 곧(則) 삼감(謹)이 더욱(益) 지극해진(至)다.”


<해석>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덕(德)이 모자라나 힘쓴다면 곧 행하는 것이 더욱 부지런해진다. 말(言)에 나머지가 있으나 말을 참는다면 곧 삼가는 것이 더욱 지극해진다.”




<원문>

〇箴曰君子每行一事出一言。先以權衡設中于乃心。盤庚文於中有所不足。則不敢不勉。於中有所餘剩。則不敢遂盡。斯之謂中庸也。朱子謂德不足而言有餘。其義亦好。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군자(君子)는 늘(每) 한 가지(一) 일(事)을 행하(行)고 한 마디(一) 말(言)을 낸(出)다.  먼저(先) 저울(權衡)로써(以) 그대(乃)의 마음(心)에(于) 중(中)을 갖춰(設)라. [「반경(盤庚)」의 글(文)] 가운데(中)에서(於) 부족(不足)한 바(所)가 있(有)다면 곧(則) 힘쓰(勉)지 않음(不)을 감히 하지 못한(不敢)다. 가운데(中)에서(於) 남(餘剩)은 바(所)가 있(有)다면 곧(則) 다함(盡)을 끝냄(遂)을 감히 하지 못한(不敢)다. 이것(斯)의(之) 이름(謂)이 중용(中庸)이다(也). 주자(朱子)가 이르기(謂)를 ‘덕(德)이 부족(不足)하면(而) 말(言)에 나머지(餘)가 있(有)다.’ 그(其) 의미(義) 또한(亦) 좋(好)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군자(君子)는 늘 한 가지 일(事)을 행하고 한 마디 말(言)을 낸다. 먼저 저울로 그대의 마음에 중(中)을 갖춰라. [「반경(盤庚)」의 글] 가운데(中)에서 모자란 바가 있다면 곧 감히 힘쓰지 않을 수 없다. 가운데(中)에서 남은 바가 있다면 곧 감히 최선을 다하는 것을 끝내지 못한다. 이것의 이름이 중용(中庸)이다. 주자(朱子)가 이르기를 ‘덕(德)이 모자라면 말(言)에 나머지가 있다.’ 그 의미 또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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