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箴曰曲者。屈曲也委曲也。曲當讀之如曲禮三千之曲。謂於萬事萬物。皆盡心以求其至善也。易曰曲成萬物而不遺。易疏云屈曲委細人之致曲於萬事。如天道之曲成萬物。猶言一物無放過也。生知安行之聖。其於化人也。若時雨化之。故能盡人物之性。以贊天地。其次非禮勿視。非禮勿聽。勿言勿動。隨萬事之曲折。盡心致意。斯之謂致曲也。致曲亦能有誠。誠於中則形於外。故誠身者。能動物。物之旣動。未有不變化者。亦可以自盡其性。以盡人物之性。與生知安行者。其功同也。其功同者。以其爲至誠同也。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곡(曲)이라는 것(者)은 꺾이고 굽음(屈曲)이다(也). 자세하고 소상함(委曲)이다(也). 곡(曲)은 마땅히(當) 그것(之)을 읽음(讀)이 ‘곡례(曲禮) 삼천(三千)’의(之) 곡(曲)과 같(如)다. 모든 일(萬事)과 모든 것(萬物)에 대해(於) 이른(謂)다. 모든(皆) 마음(心)을 다함(盡) 그것으로써(以) 그(其) 지극한(至) 선(善)을 구한(求)다(也). 『역(易)』에서 말하기(曰)를 “모든 것(萬物)을 자세하게(曲) 이루(成)면서(而) 남기(遺)지 않(不)는다.” [『역소(易疏)』에서 이르기(云)를 “꺾이고 굽(屈曲)으면서 자세하고 소상하(委細)다.”] 모든 일(萬事)에서(於) 사람(人)의(之) 자세함(曲)에 이름(致)은 하늘(天)의 도(道)의(之) 자세함(曲)이 모든 것(萬物)을 이룸(成)과 같(如)다. 하나(一)의 물(物)도 그대로 지나침(放過)이 없(無)다고 말함(言)과 같(猶)다(也). 나면서 알(生知)고 편안히 행함(安行)의(之) 성인(聖)이 그(其) 사람(人)을 기름(化)에서(於)도(也) 때를 맞추어서 오는 비(時雨)가 그들(之)을 기름(化)과 같(若)다. 그러므로(故) 사람(人)과 물(物)의(之) 성(性)을 다할(盡) 수 있음(能) 그것으로써(以) 천지(天地)를 돕(贊)는다. 그(其) 다음(次)은 예(禮)가 아니(非)면 보(視)지 말(勿)고 예(禮)가 아니(非)면 듣(聽)지 말(勿)고 말하(言)지 말(勿)고 움직이(動)지 말(勿)라. 모든 일(萬事)의(之) 복잡한 사정(曲折)을 따라(隨) 마음(心)을 다하(盡)고 뜻(意)을 정성스럽게 함(致) 이것(斯)의(之) 이름(謂)이 ‘곡(曲)에 이름(致)’이다(也). 곡(曲)에 이름(致) 또한(亦) 성(誠)이 있음(有)에 능하(能)다. 중(中)에(於) 성(誠)하면 곧(則) 밖(外)에서(於) 드러난(形)다. 그러므로(故) 몸(身)을 성(誠)하는 사람(者)은 물(物)을 움직임(動)에 능하(能)다. 물(物)의(之) 이미(旣) 움직이(動)면 변하(變)거나 길러지(化)지 않(不)은 적이 없(未有)다는 것(者)은 또한(亦) 스스로(自) 그(其) 성(性)을 다할(盡) 수 있음(可以)이니 그것으로써(以) 사람(人)과 물(物)의(之) 성(性)을 다하(盡)면 나면서 알(生知)고 편안히 행하(安行)는 사람(者)과(與) 그(其) 공로(功)가 같(同)다(也). 그(其) 공로(功)가 같(同)다는 것(者)은 그(其)가 지극히(至) 성(誠)함이 됨(爲)으로써(以) 같(同)다(也).
<해석>
경계해 말한다. 곡(曲)이라는 것은 꺾이고 굽음이고 자세하고 소상함이다. 곡(曲)은 ‘곡례(曲禮) 삼천(三千)’의 곡(曲)과 같게 읽어야 하며 모든 일(萬事)과 모든 것(萬物)에 대해 이른다. 모든 마음(心)을 다하여 그 지극한 선(善)을 구한다. 『역(易)』에서 말하기를 “모든 것(萬物)을 자세하게 이루면서 남기지 않는다.” [『역소(易疏)』에서 이르기를 “꺾이고 굽으면서 자세하고 소상하다.”] 모든 일(萬事)에서 사람(人)이 자세하게 함(曲)은 하늘(天)의 도(道)의 자세함(曲)이 모든 것(萬物)을 이룸과 같다. 하나의 물(物)도 그대로 지나침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나면서 알(生知)고 편안히 행하(安行)는 성인(聖)이 사람들(人)을 기르는 것은 때를 맞추어서 오는 비가 그들을 기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人)과 물(物)의 성(性)을 다할 수 있도록 하여 천지(天地)를 돕는다. 그 다음은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라. 모든 일(萬事)의 복잡한 사정을 따라 마음(心)을 다하고 뜻(意)을 정성스럽게 함 이것의 이름이 ‘자세함(曲)에 이름’이다. 자세함(曲)에 이름도 잘 정성스럽게 함(誠)이 있는 것이다. 중(中)에 정성스럽게 하(誠)면 곧 밖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몸(身)을 정성스럽게 하(誠)는 사람은 물(物)을 잘 움직인다. 물(物)이 이미 움직이면 변하거나 길러지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도 스스로 그 성(性)을 다할 수 있다는 것으로 사람(人)과 물(物)의 성(性)을 다하면 나면서 알(生知)고 편안히 행하(安行)는 사람과 공로가 같다. 그 공로가 같다는 것은 그가 지극히 정성스럽게 하(誠)게 된다는 의미로 같다는 것이다.
<원문>
〇曲者如布帛之有緯。緯者委也。故曰經禮三百。曲禮三千。曲者委也。
<직역>
곡(曲)이라는 것(者)은 면직물과 견직물(布帛)의(之) 씨줄(緯)이 있음(有)과 같(如)다. 위(緯)라는 것(者)은 굽은 것(委)이다(也). 그러므로(故) 말하기(曰)를 ‘경례(經禮) 삼백(三百)과 곡례(曲禮) 삼천(三千)’에서 곡(曲)이라는 것(者)은 자세함(委)이다(也).
<해석>
곡(曲)이라는 것은 면직물과 견직물에 씨줄(緯)과 같다. 위(緯)라는 것은 굽은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경례(經禮) 삼백(三百)과 곡례(曲禮) 삼천(三千)’에서 곡(曲)이라는 것은 자세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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