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周禮守祧。掌守先王先公之廟祧。其遺衣服藏焉。若將祭祀則以其服授尸。其廟則有司修除之。其祧則守祧黝堊之。
<직역>
『주례(周禮)』에서 “사당을 지키는 관리(守祧)는 선왕(先王)과 선공(先公)의(之) 신주를 모신 사당과 먼 조상을 한 곳에 모아 제사하는 사당(廟祧)을 지킴(守)을 맡(掌)는다. 그(其) 죽은 사람이 입고 있던 저고리와 적삼(遺衣)옷(服)을 간직한(藏)다(焉). 만약(若) 장차(將) 제사(祭祀)하면 곧(則) 그(其) 옷(服)을 가지고(以) 시동(尸)에게 준(授)다. 그(其) 신주를 모신 사당(廟)에서는 곧(則) 유사(有司)가 그것(之)을 닦(修)고 깨끗이 한(除)다. 그(其) 먼 조상을 한 곳에 모아 제사하는 사당(祧)에서는 곧(則) 사당을 지키는 관리(守祧)가 그것(之)을 검게 하(黝)고 희게 칠한(堊)다.
<해석>
『주례(周禮)』에서 “사당을 지키는 관리는 선왕(先王)과 선공(先公)의 신주를 모신 사당과 먼 조상을 한 곳에 모아 제사하는 사당을 지키는 일을 맡는다. 죽은 사람이 입고 있던 적고리와 적삼옷을 가지고 시동에게 준다. 그 신주를 모신 사당에서는 곧 유사라는 관리가 그것을 닦고 깨끗이 한다. 먼 조상을 한 곳에 모아 제사하는 사당에서는 곧 사당을 지키는 관리가 그것을 땅을 평평하게 하여 검게 하고 담벽을 희게 칠한다.
<해설>
한국고전종합DB - 유악(黝堊) : 땅을 평평하게 하여 검게 하고 담벽을 희게 칠하여 꾸미는 일을 말한다
참고 : 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5&cate1=Z&cate2=&dataGubun=%EC%B5%9C%EC%A2%85%EC%A0%95%EB%B3%B4&dataId=ITKC_BT_1444A_0080_010_0040
<원문>
〇陳曰此修其祖廟也。
<직역>
진(陳)이 말하기(曰)를 “이것(此)은 그(其) 선조의 묘(祖廟)를 닦음(修)이다(也).”
<해석>
진(陳)이 말하기를 “이것은 그 선조의 묘를 닦는 것이다.”
<원문>
〇毛曰舊註以糞除爲言。祭義云宮室旣修。牆屋旣設。設是黝堊。卽飾治之義。春秋傳晉侯伐齊。齊人賂晉侯以宗器樂器。杜注云宗器。祭祀之器。衰廿五年又鄭子展子産伐陳。陳俟使司馬桓子賂以宗器。亦同年又陳無宇獻萊宗器于襄宮。襄七年又晉人徵朝于公孫僑。對曰蕭魚之役。寡君盡其土實。重之以宗器。襄二十二年杜註云宗廟禮樂之器。鐘磬之屬。國語云其官不備其宗器。
<직역>
모(毛)가 말하기(曰)를 “옛(舊) 주석(註)은 ‘치워(糞) 없앰(除)’으로써(以) 견해(言)로 했(爲)다.” 「제의(祭義)」에서 이르기(云)를 ‘궁전 안에 있는 방(宮室)을 이미(旣) 고쳤(修)다. 담과 지붕(牆屋)을 이미(旣) 설비했(設)다’의 설(設)은 이(是) 검게 하(黝)고 희게 칠함(堊)이니 곧(卽) 꾸미(飾)고 수리함(治)의(之) 의미(義)이다. 『춘추전(春秋傳)』에서 ‘진후(晉侯)가 제나라(齊)를 쳤(伐)다. 제나라(齊) 사람(人)이 제기(宗器)와 악기(樂器)로써(以) 진후(晉侯)에게 뇌물을 줬(賂)다. 두예(杜)의 주석(注)에서 이르기(云)를 ‘종기(宗器)는 제사(祭祀)의(之) 도구(器)이다.’ [제양공(襄) 이십오(廿五)년(年)] 또한(又) ‘정나라(鄭)의 자전(子展)과 자산(子産)이 진나라(陳)를 쳤(伐)다. 진후(陳侯)가 사마(司馬)와 환자(桓子)로 하여금(使) 제기 및 악기(宗器)로써(以) 뇌물을 주게 했(賂)다.’ [또한(亦) 같은 해(同年)] 또한(又) ‘진무우(陳無宇)가 제양공(襄)의 종묘(宮)에(于) 래나라(萊)의 제기 및 악기(宗器)를 바쳤(獻)다. [제양공(襄) 칠(七)년(年)] 또한(又) ‘진나라(晉) 사람(人)이 공손교(公孫僑)에게(于) 불러져(徵) 배알했(朝)다. 대하(對)여 말하기(曰)를 -소어(蕭魚)의(之) 전쟁(役)에서 과군(寡君)께서는 그(其) 토지의 생산물(土實)을 다하(盡)고 제기 및 악기(宗器)로써(以) 그것(之)을 바쳤(重)습니다.-’ [제양공(襄) 이십이(二十二)년(年)] 두예(杜)의 주석(註)에서 이르기(云)를 ‘위패를 두던 묘(宗廟)와 예악(禮樂)의(之) 그릇(器)은 종과 경쇠(鐘磬)의(之) 종류(屬)이다.’” [『국어(國語)』에서 이르기(云)를 “그(其) 집(宮)에 그(其) 제기 및 악기(宗器)를 갖추(備)지 못했(不)다.”]
<해석>
모(毛)가 말하기를 "옛 주석은 '치워 없앰'이라고 주장했다." 「제의(祭義)』에서 이르기를 '궁전 안에 있는 방을 이미 고쳤다. 담과 지붕을 이미 설비했(設)다.'의 설(設)은 이 땅을 평평하게 하여 검게 하고 담벽을 희게 칠함이니 곧 꾸미고 수리한다는 의미이다. 『춘추전(春秋傳)』에서 ‘진후(晉侯)'가 제나라(齊)를 쳤다. 제나라(齊) 사람이 제기와 악기를 진후(晉侯)에게 뇌물을 줬다. 두예(杜)의 주석에서 이르기를 '종기(宗器)는 제사의 도구이다.' [제양공(襄) 25년] 또한 '정나라(鄭) 자전(子展)과 자산(子産)이 진나라(陳)를 쳤다. 진후(晉侯)가 사마(司馬)와 환자(桓子)로 하여금 제기 및 악기를 뇌물로 주게 했다.' [또한 같은 해] 또한 진무우(陳無宇)가 제양공(襄)의 종묘에 래나라(萊)의 제기 및 악기를 바쳤다. [제양공(襄) 7년] 또한 '진나라(晉) 사람이 공손교(公孫僑)에게 불러져 배알했다. 대하여 말하기를 -소어(蕭魚)의 전쟁에서 과군께서는 모든 토지의 생산물과 제기 및 악기를 바쳤습니다.-' [제양공(襄) 22년] 두예(杜)의 주석에서 이르기를 '위패를 두던 묘와 예악의 그릇은 종과 경쇠의 종류이다.'" [『국어(國語)』에서 이르기를 "그 집에 그 제기 및 악기를 갖추지 못했다."]
<해설>
衰廿五年은 襄廿五年이다.
陳俟은 陳侯이다.
其官不備其宗器은 其宮不備其宗器이다.
<원문>
〇案宗器者。祭祀之器。又詳講義補。裳衣時食之義。亦詳于彼。
<직역>
상고컨대(案) 종기(宗器)라는 것(者)은 제사(祭祀)의(之) 도구(器)이다. 또한(又) 『강의보(講義補)』에 자세하(詳)다. [살아있던 적의 신분의 옷(裳衣)과 때맞춰 바치는 음식(時食)의(之) 의미(義) 또한(亦) 저기(彼)에(于) 자세하(詳)다.]
<해석>
상고컨대 종기(宗器)라는 것은 제사의 도구이다. 또한 『강의보(講義補)』에 자세하다. [살아있던 적의 신분의 옷(裳衣)과 때맞춰 바치는 음식(時食)의 의미 또한 저기에 자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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