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7일 월요일

중용자잠 34-自箴

<원문>

箴曰尊賢者。師保之臣。所不臣也。親親者。親其宗族。謂公族非事親也。事親在修身之中。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존현(尊賢)이라는 것(者)은 스승이 되어 가르침(師保)의(之) 신하(臣)는 신하(臣)가 아닌(不) 바(所)이다(也). 친친(親親)이라는 것(者)은 그(其) 동성동본의 일가(宗族)와 친함(親)이다. [왕이나 공 따위의 동족(公族)을 이른(謂)다.] 어버이를 섬김(事親)이 아니(非)다(也). 어버이를 섬김(事親)은 수신(修身)의(之) 과정(中)에 있(在)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존현(尊賢)이라는 것은 가르치는 신하를 신하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친친(親親)이라는 것은 그 일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왕이나 공 따위의 동족을 이른다.]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 아니다.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수신(修身)의 과정에 있다.




<원문>

〇朱子曰視羣臣猶吾四體。此正義也。書曰臣作朕股肱耳目。孟子曰君視臣如手足。則臣視君如腹心。章句云設以身處其地而察其心。恐不如四體之說。


<직역>

주자(朱子)가 말하기(曰)를 ‘여러(羣) 신하(臣)를 봄(視)은 내(吾) 사체(四體)와 같(猶)다.’ 이것(此)이 바른 뜻(正義)이다(也). 『서(書)』에서 말하기(曰)를 “신하(臣)는 내(朕) 팔과 다리(股肱)와 귀와 눈(耳目)이 된(作)다.” 『맹자(孟子)』에서 말하기(曰)를 “임금(君)이 신하(臣)를 봄(視)은 수족(手足)과 같(如)으니 곧(則) 신하(臣)가 임금(君)을 봄(視)은 속마음(腹心)과 같(如)다.” [「장구(章句)」에서 이르기(云)를 ‘자신(身)으로써(以) 그(其) 처지(地)에 처함(處)을 가정하(設)여(而) 그(其) 마음(心)을 살핀(察)다’는 아마도(恐) ‘사체(四體)’의(之) 말씀(說)만 못하(不如)다.]


<해석>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여러 신하를 두 팔과 두 다리처럼 본다.’ 이것이 바른 뜻이다. 『서(書)』에서 말하기를 “신하는 내 팔과 다리와 귀와 눈이 된다.” 『맹자(孟子)』에서 말하기를 “임금은 신하를 손과 발처럼 보니 곧 신하는 임금을 속마음처럼 본다.” [「장구(章句)」에서 이르기를 ‘자신(身)이 그 처지에 처했다고 가정하여 그 마음(心)을 살핀다’는 아마도 ‘사체(四體)’의 말씀보다는 못하다.


<해설>

君視臣如手足의 원문 : 君之視臣如手足




<원문>

箴曰齊明盛服。與上鬼神章齊明盛服同。謂齊邀整衣。常若神明照臨也。朱子敬齋箴曰正其衣冠。尊其瞻視。潛心以居。對越上帝。亦此義也。非禮不動則克己爲仁。身斯修矣。朱子曰外內交養而動靜不違。所以爲修身之要也。誠哉。言也。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제명성복(齊明盛服)’과(與) 위(上)의 ‘귀신(鬼神)’ 장(章)의 제명성복(齊明盛服)은 같(同)다. 단정하(齊)게 맞이함(邀)과 옷매무시를 바로잡음(整衣)은 항상(常) 하늘과 땅의 신령(神明)이 내리 비침(照臨)과 같(若)다고 이른(謂)다(也). 주자(朱子)의 「경재잠(敬齋箴)」에서 말하기(曰)를 ‘그(其) 옷과 관(衣冠)을 바르게 한(正)다. 그(其) 시선(瞻視)을 공경한(尊)다. 마음을 가라앉힘(潛心)을 유지함(居)으로써(以) 상제(上帝)에 제사지낸(對越)다.’ 또한(亦) 이(此) 의미(義)이다(也). 예(禮)가 아니(非)면 움직이지 않음(不動)은 곧(則) 극기(克己)하고 인(仁)을 이루(爲)어 몸(身)을 이에(斯) 닦(修)는다(矣). 주자(朱子)가 말하기(曰)를 ‘밖(外)과 안(內)을 함께(交) 기르(養)면서(而) 운동하고 정지함(動靜)이 어긋나(違)지 않음(不)은 수신(修身)의(之) 근본(要)을 하(爲)는 방법(所以)이다(也).’ 자세하(誠)도다(哉). 말씀(言)이여(也).


<해석>

경계해 말한다. ‘제명성복(齊明盛服)’과 위의 ‘귀신(鬼神)’ 장(章)의 제명성복(齊明盛服)은 같다. 단정하게 맞이함과 옷매무시를 바로잡음은 항상 하늘과 땅의 신령이 내리 비치는 것 같다고 이른다. 주자(朱子)의 「경재잠(敬齋箴)」에서 말하기를 ‘그 옷과 관을 바르게 하고 공경의 눈빛을 지니고 마음(心) 가라앉히기를 유지하여 상제(上帝)에 제사지낸다.’또한 이 의미이다. 예(禮)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극기(克己)하고 인(仁)을 이루어 몸(身)을 닦는 것이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밖과 안을 함께 기르면서 운동하고 정지함이 어긋나지 않음은 수신(修身)의 근본을 하는 방법이다.’ 자세하도다. 말씀이여.




<원문>

朱子曰信讒邪則任賢不專。徇貨色則好賢不篤。賈捐之所謂後宮盛色則賢者隱微。佞人用事則諍臣杜口。蓋持衡之勢。此重則彼輕。理固然矣。


<직역>

주자(朱子)가 말하기(曰)를 “헐뜯는 자(讒)와 간사한 자(邪)를 믿(信)는다면 곧(則) 어진 사람(賢)에게 맡김(任)으로만 마음을 쓰(專)지 않(不)는다. 재물과 여색(貨色)을 쫓(徇)는다면 곧(則) 어진 사람(賢)을 좋아함(好)이 깊(篤)지 않(不)다. 가연지(賈捐之)의 소위(所謂) ‘후궁(後宮)이 아름답고 곱(盛色)다면 곧(則) 어진(賢) 사람(者)이 숨(隱微)는다. 아첨하는 사람(佞人)이 권력을 장악하(用事)면 곧(則) 바른말 하는 신하(諍臣)가 입을 다문(杜口)다.’ 모든(蓋) 저울(衡)을 유지함(持)의(之) 형세(勢)는 여기(此)가 무겁(重)다면 곧(則) 저기(彼)는 가볍(輕)다. 이치(理)가 원래 그러하(固然)다(矣).”


<해석>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헐뜯는 자와 간사한 자를 믿는다면 곧 어진 사람(賢)에게만 맡길 수 없고 재물과 여색을 쫓는다면 곧 어진 사람(賢)을 깊게 좋아할 수 없다. 가연지()의 이른바 ‘후궁이 아름답고 곱다면 곧 어진(賢) 사람이 숨는다. 아첨하는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면 곧 바른말 하는 신하가 입을 다문다.’ 모든 저울을 유지하는 형세는 여기가 무겁다면 곧 저기는 가벼운 법이니 이치가 원래 그러하다.”




<원문>

〇案賢賢易色之義。孔子屢言之。蓋好色者必不好賢。故小人讒佞者。必交通宮掖以去賢者。


<직역>

상고건대(案) ‘다른 사람의 현명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듯 함(賢賢易色)’의(之) 의미(義)를 공자(孔子)는 그것(之)을 여러 차례 말했(屢言)다. 모든(蓋) 여색을 좋아하(好色)는 사람(者)은 반드시(必) 어짊(賢)을 좋아하(好)지 않(不)는다. 그러므로(故) 소인(小人)이 아첨하(讒佞)는 것(者)은 반드시(必) 환관(宮掖)과 결탁하(交通)여 그것으로써(以) 현자(賢者)를 내쫓(去)는다.


<해석>

상고건대 ‘다른 사람의 현명함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듯 함(賢賢易色)’의 의미를 공자(孔子)는 여러 차례 말했다. 모든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어짊(賢)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첨하는 소인(小人)은 반드시 환관과 결탁해서 어진(賢) 사람을 내쫓는다.


<해설>

네이버 한자사전에 따르면 궁액(宮掖)을 ‘각 궁에 딸려 있던 하인(下人)’으로 말하나 실제로 번역을 해 놓은 한국고전종합DB를 보면 궁액(宮掖)을 환관으로 해석한다.

참고 : db.itkc.or.kr/dir/item?itemId=GO#dir/node?grpId=&itemId=GO&gubun=book&depth=5&cate1=Z&cate2=&dataGubun=%EC%B5%9C%EC%A2%85%EC%A0%95%EB%B3%B4&dataId=ITKC_GO_1356A_0010_000_0030&upSeoji=ITKC_GO_1305A&viewSync=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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