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6일 일요일

중용자잠 15-自箴

<원문>

箴曰皐陶謨九德之目。以彊而義爲終。强者所以有常也。所以持久也。不强則旣不能中立而不倚。亦不能至死不變。强之爲德。乃中庸之至要也。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고요모(皐陶謨)」에서 구덕(九德)의(之) 목록(目)은 ‘굳세(彊)면서(而) 의로움(義)’으로써(以) 마지막(終)으로 한(爲)다. 강(强)이라는 것(者) 일정함(常)을 가지(有)는 방법(所以)이다(也). 오래 유지하(持久)는 방법(所以)이다(也). 강(强)이 아니(不)라면 곧(則) 이미(旣) 중립(中立)해도(而) 치우치(倚)지 않(不)을 수 없(不能)다. 또한(亦) 죽음(死)에 이르(至)러도 불변(不變)할 수 없(不能)다. 강(强)의(之) 덕(德)됨(爲)은 이에(乃) 중용(中庸)의(之) 더없이 중요함(至要)이다(也).


<해석>

경계해 말한다. 「고요모(皐陶謨)」에서 구덕(九德)의 목록(目)은 ‘굳세(彊)면서 의로움(義)’으로 마친다. 강(强)이라는 것은 일정함(常)을 가지거나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다. 강(强)이 아니라면 곧 이미 중립(中立)했더라도 치우치지 않을 수 없고 또한 죽음에 이르러도 변하지 아니할 수 없다. 강(强)의 덕(德)됨은 이에 중용(中庸)의 더없이 중요한 것이다.




<원문>

〇南方北方。先儒不言其境界。若以赤道分之。則中國百越都屬北方。若以中國言之則冀雍爲北方。荊揚爲南方。將云堯舜文武之聖。皆北方之强。而楚隨吳越之人。乃爲君子乎。余謂北方者。六狄五貉之地。周之獯粥。漢之匈奴濊貊之等是也。此邦之人。衽用金革。死而無悔。南方者中國也。對北方而言之。故名曰南方也。


<직역>

남방(南方)과 북방(北方)은 선대의 유학자들(先儒)이 그(其) 경계(境界)를 말하(言)지 않(不)았다. 만약(若) 적도(赤道)로써(以) 그것(之)을 나누(分)면 곧(則) 중국(中國)과 백월(百越)은 모두(都) 북방(北方)에 모인(屬)다. 만약(若) 중국(中國)으로써(以) 그것(之)을 말하(言)면 곧(則) 기주(冀)와 옹주(雍)는 북방(北方)이 되(爲)고 형주(荊)와 양주(揚)는 남방(南方)이 된(爲)다. 장차(將) 이르기(云)를 “요순문무(堯舜文武)의(之) 슬기(聖)는 모두(皆) 북방(北方)의(之) 강(强)이다. 그리고(而) 초수오월(楚隨吳越)의(之) 사람들(人)은 이에(乃) 군자(君子)라 하(爲)겠는가(乎).” 내(余)가 이르기(謂)를 “북방(北方)이라는 것(者)은 육적(六狄)과 오맥(五貉)의(之) 땅(地)이다. 주나라(周)의(之) 훈육(獯粥)과 한나라(漢)의(之) 흉노(匈奴)와 예맥(濊貊)의(之) 무리(等)가 이것(是)이다(也). 이(此) 나라(邦)의(之) 사람들(人)은 옷섶(衽)에 금혁(金革)을 써(用)서 죽(死)어도(而) 뉘우침(悔)이 없(無)었다. 남방(南方)이라는 것(者)은 중국(中國)이다(也). 북방(北方)을 대조하(對)면서(而) 그것(之)을 말한(言)다. 그러므로(故) 이름하(名)여 말하기(曰)를 남방(南方)이다(也).”


<해석>

남방(南方)과 북방(北方)은 선대의 유학자들이 그 경계를 말하지 않았다. 만약 적도(赤道)를 기준으로 그것을 나누면 곧 중국(中國)과 고대의 월족(百越)은 모두 북방(北方)에 모인다. 만약 중국(中國)을 기준으로 그것을 말하면 곧 기주(冀)와 옹주(雍)는 북방(北方)이 되고 형주(荊)와 양주(揚)는 남방(南方)이 된다. 장차 이르기를 “요순(堯舜)임금과 문무(文武)왕의 슬기는 모두 북방(北方)의 강(强)이고 초나라(楚)와 수나라(隨)와 오나라(吳)와 월나라(越)의 사람들은 이에 군자(君子)라 하겠는가.” 내가 이르기를 “북방(北方)이라는 것은 육적(六狄)과 오맥(五貉)의 땅과 주나라(周)의 훈육(獯粥)과 한나라(漢)의 흉노(匈奴)와 예맥(濊貊)의 무리가 이것이다. 이 나라의 사람들은 옷섶(衽)에 전쟁에 쓰는 도구를 써서 죽어도 뉘우침이 없었다. 남방(南方)이라는 것은 중국(中國)이다. 북방(北方)을 대조하면서 그것을 말하므로 이름하여 말하기를 남방(南方)이다.”


<해설>

기준이 적도(赤道) : 북방(北方) = 중국(中國)과 월족(百越) 

기준이 중국(中國) : 북방(北方) = 기주(冀)와 옹주(雍)[요순문무(堯舜文武)] ↔ 남방(南方) = 형주(荊)와 양주(揚)[초수오월(楚隨吳越)]

정약용 선생님 : 북방(北方) = 육적(六狄)과 오맥(五貉)의 땅(地) + 주나라(周)의 훈육(獯粥)과 한나라(漢)의 흉노(匈奴)와 예맥(濊貊)의 무리(等) ↔ 남방(南方) = 중국(中國)




<원문>

〇陳自曾曰老子以慈爲强。與南方同。


<직역>

진자증(陳自曾)이 말하기(曰)를 “노자(老子)는 자(慈)로써(以) 강(强)으로 했(爲)다. 남방(南方)과(與) 같(同)다.”


<해석>

진자증(陳自曾)이 말하기를 “노자(老子)는 자(慈)를 강(强)으로 했다. 남방(南方)과 같다.”




<원문>

〇衽者衣衽也。鎧甲正以金革爲衽。章句訓衽爲席。恐不然也。


<직역>

임(衽)이라는 것(者)은 옷(衣)의 옷섶(衽)이다(也). 개갑(鎧甲)은 참으로(正) 금혁(金革)으로써(以) 옷섶(衽)으로 한(爲)다. 『장구(章句)』의 가르침(訓)은 임(衽)을 깔다(席)로 한(爲)다. 아마도(恐) 그렇지 아니하(不然)다(也).


<해석>

임(衽)이라는 것은 옷의 옷섶이다. 개갑(鎧甲)은 참으로 전쟁에 쓰는 도구를 옷섶으로 한다. 『장구(章句)』의 가르침은 임(衽)을 깐다로 하는데 아마도 그렇지 않다.




<원문>

朱子曰矯。强貌。魯頌云矯矯虎臣。


<직역>

주자(朱子)가 말하기(曰)를 “교(矯)는 강(强)의 모양(貌)이다. 「노송(魯頌)」에서 이르기(云)를 ‘날래고 사나운(矯矯) 호랑이(虎) 같은 신하(臣).’”


<해석>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교(矯)는 강(强)의 모양이다. 「노송(魯頌)」에서 이르기를 ‘날래고 사나운(矯矯) 호랑이 같은 신하.’”




<원문>

〇箴曰揉曲爲矯。矯者矢直也。子路好强。南方之强。似不滿其意。故孔子歷言南方之强。而終之以贊歎之辭曰强哉矯强哉矯。至三至四。蓋云南方之强。未嘗不强。汝無用薄之。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굽음(曲)을 바로잡음(揉)을 교(矯)라 한(爲)다. 교(矯)라는 것(者)은 화살(矢)의 곧음(直)이다(也). 자로(子路)가 좋아하(好)는 강(强)과 남방(南方)의(之) 강(强)은 그(其) 뜻(意)에 만족하(滿)지 않음(不) 같(似)다. 그러므로(故) 공자(孔子)는 분명히(歷) 남방(南方)의(之) 강(强)을 말씀하셨(言)다. 그리고(而) 찬탄(贊歎)의(之) 말씀(辭)으로써(以) 그것(之)을 마치(終)며 말하기(曰)를 “강(强)하구나(哉) 곧춤(矯)이여. 강(强)하구나(哉) 곧춤(矯)이여.” 세 번(三)에 이르(至)고 네 번(四)에 이르(至)렀다. 모두(蓋) 이르기(云)를 ‘남방(南方)의(之) 강(强)이 과연(未嘗不) 강(强)이다.’ 너(汝)는 쓸데가 없음(無用)이라 그(之)를 다그쳤(薄)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굽음을 바로잡음을 교(矯)라 한다. 교(矯)라는 것은 화살의 곧음이다. 자로(子路)가 좋아하는 강(强)과 남방(南方)의 강(强)은 그 뜻에 만족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므로 공자(孔子)는 분명히 남방(南方)의 강(强)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감탄하는 말씀으로써 마치며 말하기를 “강(强)하구나 곧춤(矯)이여. 강(强)하구나 곧춤(矯)이여.” 세 번에 이르고 네 번에 이르렀다. 모두 이르기를 ‘남방(南方)의 강(强)이야말로 과연 강(强)이다.’ 너는 쓸데가 없다고 그를 다그쳤다.


<해설>

교(矯) = 굽음(曲)을 바로잡음(揉) = 화살(矢)의 곧음(直) = 곧춤(straighten)




<원문>

〇和之久。必至於流。中立之久。必至於倚。不流不倚。不可但作得中說。乃是旣中而又能久也。此之謂中庸。


<직역>

화(和)의(之) 오램(久)은 반드시(必) 흐름(流)에(於) 이른(至)다. 중립(中立)의(之) 오램(久)은 반드시(必) 치우침(倚)에(於) 이른(至)다. 흐르(流)지 않(不)고 치우치(倚)지 않(不)을 수 없(不可)지만(但) 중(中)을 얻음(得)의 말씀(說)에서 비롯한(作)다. 이에(乃) 이것(是)이 이미(旣) 중(中)이면서(而) 또한(又) 오래 머무름(久)에 능함(能)이다(也). 이것(此) 그것(之)을 중용(中庸)이라 이른(謂)다.


<해석>

화(和)가 오래되면 반드시 흐르게 되고 중립(中立)이 오래되면 반드시 치우치게 된다. 흐르지 않고 치우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중(中)을 얻은 말씀에서 비롯하니 이에 이것이 이미 중(中)이면서 또한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중용(中庸)이라 이른다.




<원문>

〇陳自曾曰塞。滿也充也。不變塞。言不爲充滿所變。余謂不變塞。自不滿也。卽富貴不能淫之意。淫者溢也。充滿則必至於濫溢。


<직역>

진자증(陳自曾)이 말하기(曰)를 “색(塞)은 만족함(滿)이고(也) 가득 참(充)이다(也). 색(塞)이 불변(不變)함은 충만(充滿)의 변하(變)는 바(所)가 있(爲)지 않음(不)을 말한(言)다.” 내(余)가 이르기(謂)를 “색(塞)이 불변(不變)함은 스스로(自) 교만해지(滿)지 않음(不)이다(也). 곧(卽) 부귀(富貴)가 욕심내게 할(淫) 수 없음(不能)의(之) 뜻(意)이다. 음(淫)이라는 것(者)은 넘침(溢)이다(也). 충만(充滿)하면 곧(則) 반드시(必) 넘치(濫)고 넘침(溢)에(於) 이른(至)다.”


<해석>

진자증(陳自曾)이 말하기를 “색(塞)은 만족함(滿)이고 가득 참(充)이다. 색(塞)이 변하지 아니함은 가득 찬 것이 변하지 않음을 말한다.” 내가 이르기를 “만족함(塞)이 변하지 아니함은 스스로 교만해지지 않음이다. 곧 부귀(富貴)가 욕심내도록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음(淫)이라는 것은 넘침이다. 가득하면 곧 반드시 넘치게 된다.”




<원문>

〇至死不變者。貧賤凍餒。因極以至於死。而不變其所執。中庸之道。不仕不食祿。唯義之與比也。


<직역>

지사불변(至死不變)이라는 것(者)은 빈천(貧賤)과 헐벗고 굶주림(凍餒)이 지극함(極)을 말미암(因)아 그것으로써(以) 죽음(死)에(於) 이른(至)다. 그러나(而) 그(其) 잡(執)은 바(所)가 불변(不變)한다. 중용(中庸)의(之) 도(道)는 벼슬을 시켜도 나서서 하지 않음(不仕)과 녹을 받아 먹(食祿)지 않음(不)이다. 오직(唯) 의(義) 그것(之)과(與) 비교한(比)다(也).


<해석>

죽음에 이르러도 변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가난하고 천함과 헐벗고 굶주림이 심각해서 죽음에 이르나 그 잡은 바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중용(中庸)의 도(道)는 벼슬을 시켜도 나서서 하지 않고 녹을 받아 먹지 않는다. 오직 의(義)와 비교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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