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箴曰律。法也率也。襲。承也因也。上律天時者。春生秋殺。仁義竝隆也。下襲水土者。山高澤卑。涵育無方也。不必取某事某事。曰律曰襲。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률(律)은 본받음(法)이다(也). 좇음(率)이다(也). 습(襲)은 받듦(承)이다(也). 말미암음(因)이다(也). ‘위(上)로는 천시(天時)를 따랐(律)다’는 것(者)은 봄에는 낳게 하고 가을에는 죽여서(春生秋殺) 인의(仁義)를 나란히(竝) 높인(隆)다(也). ‘아래(下)로는 물과 땅(水土)을 따른(襲)다’는 것(者)은 산(山)이 높(高)고 못(澤)이 낮(卑)아 교화함(涵育)에 거스름(方)이 없음(無)이다(也). 어떠한 일(某事)과 어떠한 일(某事)을 고를(取) 필요 없(不必)다. 본받음(律)이라 말하(曰)고 따름(襲)이라 말한(曰)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률(律)은 본받음이고 좇음이다. 습(襲)은 받들고 말미암음이다. ‘위로는 하늘로부터 받은 좋은 시기(天時)를 따랐다’는 것은 봄에는 낳게 하고 가을에 죽여서 인의(仁義)를 나란히 높인다는 것이다. ‘아래로는 물과 땅을 따른다’는 것은 산이 높고 못이 낮듯이 교화함에 거스름이 없다는 것이다. 어떠 어떠한 일을 따로 고를 필요 없으니 본받는다거나 따른다고 말한다.
<원문>
〇此節武土幬叶韻。行明叶韻。害悖化大叶韻。中庸叶韻處。不止於此。
<직역>
이(此) 절(節)에서 ‘무(武)’와 ‘토(土)’와 ‘주(幬)’는 협운(叶韻)이다. ‘행(行)’과 ‘명(明)’은 협운(叶韻)이다. ‘해(害)’와 ‘패(悖)’와 ‘화(化)’와 ‘대(大)’는 협운(叶韻)이다. [『중용(中庸)』에서 협운(叶韻)인 곳(處)은 여기(此)에서(於) 멈추지 않(不止)는다.]
<해석>
이 절(節)에서 ‘무(武)’와 ‘토(土)’와 ‘주(幬)’는 운율을 맞춘 말(叶韻)이다. ‘행(行)’과 ‘명(明)’도 운율을 맞춘 말(叶韻)이다. ‘해(害)’와 ‘패(悖)’와 ‘화(化)’와 ‘대(大)’도 운율을 맞춘 말(叶韻)이다. [『중용(中庸)』에서 운율을 맞춘 곳은 여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원문>
朱子曰天覆地載。萬物竝育於其間而不相害。四時日月錯行代明而不相悖。
<직역>
주자(朱子)가 말하기(曰)를 “하늘이 덮고 땅은 실(天覆地載)으니 모든 것(萬物)이 그 사이(其間)에서(於) 가지런히 자라(竝育)면서(而) 서로(相) 해하(害)지 않(不)는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四時)과 해와 달(日月)이 번갈아(錯) 움직이(行)고 번갈아(代) 밝히(明)면서(而) 서로(相) 어그러지(悖)지 않(不)는다.”
<해석>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하늘이 덮고 땅은 실으니 모든 것(萬物)이 그 사이에서 가지런히 자라면서 서로 해하지 않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과 해와 달이 번갈아 움직이고 번갈아 밝히면서 서로 어그러지지 않는다.”
<원문>
〇案四時錯行者。寒暑相交也。日月代明者。水火迭耀也。日月之行。同在一天。而赤道白道。互相交遇。春夏秋冬。弦望晦朔。其所行之遲疾進退。千差萬變。而不相絓礙。不相擊觸。此之謂竝行而不相悖也。
<직역>
상고건대(案)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四時)이 번갈아(錯) 움직인(行)다는 것(者)은 추위와 더위(寒暑)가 서로(相) 바뀜(交)이다(也). 해와 달(日月)이 번갈아(代) 밝힌(明)다는 것(者)은 물과 불(水火)이 번갈아(迭) 빛남(耀)이다(也). 해와 달(日月)의(之) 행적(行)은 한(一) 하늘(天)에 같이 있(同在)어서(而) 적도(赤道)와 백도(白道)에서 서로서로(互相) 오가(交)고 만난(遇)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春夏秋冬)과 반달(弦)과 보름달(望)과 그믐(晦)과 초하루(朔)의 그(其) 하는 행위(所行)의(之) 더디(遲)고 빠르(疾)고 나아가(進)고 물러나(退)서 여러 번(千) 달라짐(差)과 끝없이 변화함(萬變)이다. 그러나(而) 서로(相) 걸리(絓)고 거리끼(礙)지 않(不)는다. 이것(此)의(之) 이름(謂)이 ‘함께(竝) 가(行)면서(而) 서로(相) 어그러지(悖)지 않(不)는다’이다(也).
<해석>
상고건대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四時)이 번갈아 움직인다는 것은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바뀌는 것이다. 해와 달(日月)이 번갈아 밝힌다는 것은 물과 불이 번갈아 빛나는 것이다. 해와 달(日月)의 행적은 한 하늘에 같이 있어서 해의 경로(赤道)와 달의 경로(白道)에서 서로서로 오가고 만난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春夏秋冬)과 반달(弦)과 보름달(望)과 그믐(晦)과 초하루(朔)의 하는 행위가 더디고 빠르고 나아가고 물러나서 여러 번 달라지고 끝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 걸리고 거리끼지 않는다. 이것의 이름이 ‘함께 가면서 서로 어그러지지 않는다’이다.
<원문>
〇三千受敎。七十承化。推此以往。天地萬物。皆入範圍。是竝育而不相害也。或以德行。或以政事。或以文學。或以言語。各因其性。各成其材。是竝行而不相悖也。易曰大人者。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
<직역>
삼천(三千)이 가르침(敎)을 받(受)았다. 칠십(七十)이 가르침(化)을 계승했(承)다. 그 동안(以往) 이것(此)을 헤아린(推)다. 천지만물(天地萬物)이 모두(皆) 범위(範圍)에 들어간(入)다. 이것(是)이 ‘가지런히 자라(竝育)면서(而) 서로(相) 해하(害)지 않(不)는다’이다(也). 혹(或) 덕행(德行)으로써(以) 혹(或) 정사(政事)로써(以) 혹(或) 문학(文學)으로써(以) 혹(或) 언어(言語)로써(以) 각자(各) 그(其) 성(性)을 말미암(因)고 각자(各) 그(其) 재능(材)을 이룬(成)다. 이것(是)이 ‘함께(竝) 가(行)면서(而) 서로(相) 어그러지(悖)지 않(不)는다’이다(也). 『역(易)』에서 말하기(曰)를 “대인(大人)이라는 것(者)은 천지(天地)와(與) 그(其) 덕(德)을 맞춘(合)다. 해와 달(日月)과(與) 그(其) 밝기(明)을 맞춘(合)다.
<해석>
3000명이 가르침을 받고 70명이 가르침을 계승했다. 그 동안 이것을 헤아리면 천지만물(天地萬物)이 모두 정해진 구역에 들어간다. 이것이 ‘가지런히 자라면서 서로 해하지 않는다’이다. 덕행(德行)이나 정사(政事)나 문학(文學)이나 언어(言語)로 각자 그 성(性)을 말미암고 각자 그 재능을 완성한다. 이것이 ‘함께 가면서 서로 어그러지지 않는다’이다. 『역(易)』에서 말하기를 “대인(大人)이라는 것은 천지(天地)와 같은 덕(德)을 갖추고 해와 달(日月)처럼 비춘다.”
<원문>
〇小德者。弟子之德小者也。大德者。弟子之德大者也。德小者。順其性。因其勢而導之。所謂川流也。如七十弟子德大者。厚其培。因其財而篤焉。所謂敦化也。如四科十哲之類孟子曰大德役小德。孔子曰大德不踰閑。小德出入。皆以德之大小言。
<직역>
작(小)은 덕(德)이라는 것(者)은 제자(弟子)의(之) 덕(德)이 작(小)은 사람(者)이다(也). 큰(大) 덕(德)이라는 것(者)은 제자(弟子)의(之) 덕(德)이 큰(大) 사람(者)이다(也). 덕(德)이 작(小)은 사람(者)은 그(其) 성(性)을 좇(順)는다. 그(其) 기세(勢)에 의지하(因)면서(而) 그(之)를 인도한(導)다. 소위(所謂) ‘냇물의 흐름(川流)’이다(也). [칠십(七十) 제자(弟子)와 같(如)다.] 덕(德)이 큰(大) 사람(者)은 그(其) 기름(培)을 열심히 하(厚)고 그(其) 재물(財)에 의지하(因)면서(而) 열심히 한(篤)다(焉). 소위(所謂) ‘힘써(敦) 교화한(化)다’이다(也). [사과십철(四科十哲)의(之) 종류(類)와 같(如)다.] 맹자(孟子)가 말하기(曰)를 “큰(大) 덕(德)이 작(小)은 덕(德)을 부린(役)다.’ 공자(孔子)가 말하기(曰)를 ‘큰(大) 덕(德)은 경계(閑)를 넘(踰)지 않(不)는다. 작(小)은 덕(德)은 나가고 들어간(出入)다.’ 모두(皆) 덕(德)의(之) 크(大)고 작음(小)으로써(以) 말한(言)다.
<해석>
소덕(小德)이라는 것은 제자 중에 덕(德)이 작은 사람이다. 대덕(大德)이라는 것은 제자 중에 덕(德)이 큰 사람이다. 덕(德)이 작은 사람은 그 성(性)을 좇고 그 기세에 의지하면서 그를 인도하니 이른바 ‘냇물의 흐름(川流)’이다. [칠십명의 제자와 같다.] 덕(德)이 큰 사람은 열심히 기르고 재물에 의지하면서 열심히 하니 이른바 ‘힘써 교화한다’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 네 부문에 뛰어난 열 명(四科十哲)]의 종류와 같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큰 덕(德)이 작은 덕(德)을 부린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큰 덕(德)은 경계를 넘지 않으나 작은 덕(德)은 나가고 들어간다.’ 모두 덕(德)의 크고 작음으로 말한다.
<해설>
『예기(禮記)』
是故昔先王之制禮也。因其財物而致其義焉爾。故作大事必順天時。爲朝夕必放於日月。爲高必因丘陵。爲下必因川澤。是故天時雨澤。君子達亹亹焉。
그러므로(是故) 옛날(昔) 선대의 임금(先王)의(之) 예(禮)를 만듦(制)에(也) 그(其) 재물(財物)에 의지하(因)고(而) 여기(爾)에서(焉) 그(其) 의(義)를 지극히 한(致)다. 그러므로(故) 큰(大) 제사(事)를 행함(作)에 반드시(必) 하늘로부터 받은 좋은 시기(天時)를 따르(順)며 해의 제사(朝)와 달의 제사(夕)를 함(爲)에 반드시(必) 해와 달(日月)에(於) 따르(放)며 높은 곳의 제사(高)를 함(爲)에 반드시(必) 언덕(丘陵)에 의지하(因)며 낮은 곳의 제사(下)를 함(爲)에 반드시(必) 내와 못(川澤)에 의지한(因)다. 그러므로(是故) 하늘(天)이 때맞춰(時) 비(雨)를 베풀(澤)듯 군자(君子)는 마땅히(達) 힘써 부지런하(亹亹)도다(焉).
큰 덕(德)을 행하는 사람이 재물에 의지하는 것은 의(義)를 지극히 하기 위해서이다.
<원문>
〇道一而已。萬民竝行。轂擊肩磨而共由此道。此所謂竝行而不相悖也。今人欲二道竝行。不亦難乎。
<직역>
도(道)는 하나(一)뿐이다(而已). 모든 백성(萬民)이 함께(竝) 간(行)다. 수레의 바퀴통이 서로 부딪치고 사람의 어깨가 스치(轂擊肩摩)면서(而) 함께(共) 이(此) 도(道)를 말미암(由)는다. 이것(此)이 소위(所謂) ‘함께(竝) 가(行)하면서(而) 서로(相) 어그러지(悖)지 않(不)는다’이다(也). 지금 세상의 사람들(今人)은 두(二) 도(道)를 함께(竝) 가(行)고자 한(欲)다. 또한(亦) 어렵(難)지 않(不)겠는가(乎).
<해석>
도(道)는 하나뿐이다. 모든 백성이 함께 번화한 이 길(道)를 말미암는다. 이것이 이른바 이른바 ‘함께 가면서 서로 어그러지지 않는다’이다. 지금 세상의 사람들은 두 도(道)를 함께 가고자 하니 어렵지 않겠는가.
<해설>
轂擊肩磨는 轂擊肩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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