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7일 월요일

중용자잠 45-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致廣大而盡精微。極高明而道中庸。

<원문>

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致廣大而盡精微。極高明而道中庸。

溫故而知新。敦厚以崇禮。

고군자존덕성이도문학。치광대이진정미。극고명이도중용。

온고이지신。돈후이숭례。


<직역>

그러므로(故) 군자(君子)는 덕성(德性)을 높이(尊)면서(而) 물음(問)과 배움(學)을 말미암(道)고 넓고 큼(廣大)에 이르(致)면서(而) 자세함(精微)을 다하(盡)고 높은 곳(高)에서 밝힘(明)에 이르(極)면서(而) 중용(中庸)을 말미암(道)는다.

옛 것을 익히(溫故)면서(而) 새로운 것을 안(知新)다. 정직함(敦厚) 그것으로써(以) 예(禮)를 높인(崇)다.


<해석>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덕성(德性)을 높이면서 물음과 배움을 말미암고 넓고 크게 되면서 최대한 자세히 하고 높은 곳에서 밝히게 되면서 중용(中庸)을 말미암는다.

옛 것을 익히면서 새로운 것을 알고 정직함으로 예(禮)를 높인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尊者。恭敬奉持之意。德性者。吾所受於天之正理。道。由也。溫。猶燖溫之溫。謂故學之矣。復時習之也。敦。加厚也。尊德性。所以存心而極乎道體之大也。道問學。所以致知而盡乎道體之細也。二者。修德凝道之大端也。不以一毫私意自蔽。不以一毫私欲自累。涵泳乎其所已知。敦篤乎其所已能。此皆存心之屬也。析理則不使有毫釐之差。處事則不使有過不及之謬。理義則日知其所未知。節文則日謹其所未謹。此皆致知之屬也。蓋非存心。無以致知。而存心者。又不可以不致知。故此五句。大小相資。首尾相應。聖賢所示入德之方。莫詳於此。學者宜盡心焉。

존(尊)이라는 것(者)은 공손히 섬기(恭敬)면서 받들어 지님(奉持)의(之) 뜻(意)이다. 덕성(德性)이라는 것(者)은 내(吾) 하늘(天)에서(於) 받(受)은 바(所)의(之) 올바른 도리(正理)이다. 도(道)는 말미암음(由)이다(也). 온(溫)은 다시 익힘(燖溫)의(之) 온(溫)과 같(猶)으니 옛날(故)에 그것(之)을 배우(學)고(矣) 다시(復) 때때로(時) 그것(之)을 익힘(習)을 이른(謂)다(也). 돈(敦)은 두텁게 함(加厚)이다(也). 존덕성(尊德性)은 마음(心)을 보존하(存)면서(而) 도(道)의 근본(體)의(之) 큼(大)에(乎) 이르(極)는 방법(所以)이다(也). 도문학(道問學)은 앎(知)에 이르(致)면서(而) 도(道)의 근본(體)의(之) 작음(細)에(乎) 다하(盡)는 방법(所以)이다(也). 두(二)가지(者)는 덕(德)을 닦(修)고 도(道)를 모음(凝)의(之) 대강(大端)이다(也). 작은 털(一毫)의 사사로운(私) 뜻(意)으로써(以) 스스로(自) 속이(蔽)지 않(不)고 작은 털(一毫)의 사사로운(私) 욕심(欲)으로써(以) 스스로(自) 더럽히(累)지 않(不)고 그(其) 이미(已) 아(知)는 바(所)에(乎) 들어갔다 나오(涵泳)면서 그(其) 이미(已) 하(能)는 바(所)에(乎) 두터이함(敦篤) 이것들(此)은 모두(皆) 마음(心)을 보존함(存)의(之) 종류(屬)이다(也). 이치(理)를 분석하(析)면 곧(則) 매우 적은 분량(毫釐)의(之) 다름(差)이 있(有)지 않(不)도록 하(使)고 일(事)을 처리하(處)면 곧(則) 지나치(過)거나 미치지 못함(不及)의(之) 잘못(謬)이 있(有)지 않(不)도록 하(使)고 의(義)를 이해하(理)면 곧(則) 나날이(日) 그(其) 아직 모르(未知)는 바(所)를 알(知)고 글(文)을 알맞게 하(節)면 곧(則) 날마다(日) 그(其) 삼가(謹)지 못한(未) 바(所)를 삼감(謹) 이것들(此)은 모두(皆) 앎(知)에 이름(致)의(之) 종류(屬)이다(也). 모두(蓋) 마음(心)을 보존함(存)이 아니(非)면 앎(知)에 이를(致) 수 없(無以)고(而) 마음(心)을 보존하(存)는 사람(者)은 또한(又) 앎(知)에 이르(致)지 못할(不) 수 없(不可以)다. 그러므로(故) 이(此) 다섯(五) 글귀(句)는 큰 것(大)과 작은 것(小)이 서로 돕(相資)고 머리(首)와 꼬리(尾)가 서로 어울리(相應)니 성인(聖)과 어진 사람(賢)이 덕(德)에 들어감(入)의(之) 방법(方)이 이것(此)보다(於) 자세하(詳)지 않음(莫)을 보여주(示)는 바(所)이니 배우(學)는 사람(者)은 마땅히(宜) 마음(心)을 다하여야 한(盡)다(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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