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箴曰盡其性。修己而至於至善也。盡人性。治人而至於至善也。盡物性。上下草木鳥獸咸若也。上二事。大學之明德新民也。下一事。堯典之命益作虞也。其事皆至眞至實。可踐可履。有摸有捉。無誇無誕。一加之以人物性同異之說。則廣漠虛闊。莫知其所以入頭下手之處矣。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그(其) 성(性)을 다함(盡)’은 자기(己)를 닦(修)으면서(而) 지극한(至) 선(善)에(於) 머무름(至)이다(也). 타인(人)의 성(性)을 다함(盡)은 타인(人)을 바로잡(治)으면서(而) 지극한(至) 선(善)에(於) 머무름(至)이다(也). 물(物)의 성(性)을 다함(盡)은 위아래(上下)와 풀과 나무(草木)와 새와 짐승(鳥獸)을 모두(咸) 왕성하게 함(若)이다(也). 위(上) 두(二) 일(事)은 『대학(大學)』의(之) ‘명덕(明德)’과 ‘친민(親民)’이다(也). 아래(下) 한(一) 일(事)은 「요전(堯典)」의(之) ‘익(益)에게 우관(虞)이 되(作)라 명령한 것(命)’이다(也). 그(其) 일(事)은 모두(皆) 지극히(至) 바르(眞)고 지극히(至) 정성스럽(實)게 실천할(踐) 수 있(可)고 행할(履) 수 있(可)으면서 찾음(摸)이 있(有)고 잡음(捉)이 있(有)으나 자만함(誇)이 없(無)고 속임(誕)이 없(無)다. 사람(人)과 물(物)의 성(性)의 같음과 다름(同異)의(之) 말씀(說)으로써(以) 한 번(一)이라도 그것(之)에 더 더하(加)면 곧(則) 넓고 아득하(廣漠)면서 비(虛)고 넓(闊)어서 그(其) 처음(頭) 손대기 시작함(下手)의(之) 부분(處)에 들어가(入)는 방법(所以)을 앎(知)이 없(莫)다(矣).
<해석>
경계해 말한다. ‘그 성(性)을 다함’은 자기를 닦으면서 지극한 선(善)에 머무름이다. ‘타인(人)의 성(性)을 다함’은 타인(人)을 바로잡으면서 지극한 선(善)에 머무름이다. ‘물(物)의 성(性)을 다함’은 산과 숲과 내와 못(上下)과 풀과 나무(草木)와 새와 짐승(鳥獸)을 모두 왕성하게 함이다. 위 두 일은 『대학(大學)』의 ‘명덕(明德)’과 ‘친민(親民)’이다. 아래 한 일은 「요전(堯典)」의 ‘익(益)에게 우관이라는 벼슬(虞)이 되라 명령한 것’이다. 그 일은 모두 지극히 바르고 지극히 정성스럽게 실천할 수 있고 행할 수 있으면서 찾는 것과 잡는 것이 있으나 자만함과 속이는 것이 없다. 사람(人)과 물(物)의 성(性)이 같다고 다른 말씀으로 한 번이라도 더 말하면 곧 넓고 아득하면서 비고 넓어서 그 처음 손대기 시작해야 할 부분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해설>
『서경(書經)』 「순전(舜典)」 - 일부 발췌
帝曰。疇若予上下草木鳥獸。僉曰。益哉。帝曰。兪。咨益。汝作朕虞。
순임금(帝)이 말씀하시기(曰)를 “누가(疇) 나(予)의 산과 숲과 내와 못(上下)과 풀과 나무(草木)와 새와 짐승(鳥獸)을 왕성하게 하(若)겠는가.” 모두(僉)가 말하기(曰)를 “익(益)입니다(哉).” 순임금(帝)이 말씀하시기(曰)를 “그렇다(兪). 아아(咨) 익(益)이여 그대(汝)는 짐(朕)의 우관(虞)이 되(作)거라.”
<원문>
〇盡其性者。盡其所受於天之本分也。自修而至於至善。則我之本分盡矣。治人而至於至善。則人各盡其本分。而其功在我矣。修山林川澤之政。使草木禽獸。生育以時。毋殀毋贕。校人養馬。牧人養牲。農師殖五穀。塲師毓園圃。使動植含生之物。各盡其生育之性。則物各盡其本分。而其功在我矣。山林川澤農圃畜牧之政廢。則萬物之生。夭閼橫亂。不能茂盛。而聖人者修而擧之。則萬物之生。蔚然叢茂。郁然肥澤。使天地改觀。其謂之贊天地之化育。不亦宜乎。聖人盡性之工。不過如此。捨此不圖。別求犬牛人之同處。討仁於虎狼。責禮於豺獺。欲使之修道受敎。咸歸大中。其亦難乎其有成矣。人物同性者。佛之言也。易曰茂對時。育萬物。
<직역>
‘그(其) 성(性)을 다한(盡)다’는 것(者)은 그(其) 하늘(天)에서(於) 받음(受)의(之) 책임(本分)인 바(所)를 다함(盡)이다(也). 스스로(自) 닦(修)으면서(而) 지극한(至) 선(善)에(於) 머무르(至)면 곧(則) 나(我)의(之) 책임(本分)을 다함(盡)이다(矣). 타인(人)을 바로잡(治)으면서(而) 지극한(至) 선(善)에(於) 머무르(至)면 곧(則) 사람들(人)이 각자(各) 그(其) 책임(本分)을 다하(盡)나(而) 그(其) 공로(功)는 나(我)에게 있(在)다(矣). 산과 숲과 내와 못(山林川澤)의(之) 책임(政)을 처리한(修)다. 풀과 나무와 날짐승과 길짐승(草木禽獸)으로 하여금(使) 때를 맞춤(時)으로써(以) 성장하(生育)여 일찍 죽음(殀)이 없(毋)고 알이 곯음(贕)이 없도록 한(毋)다. 말을 관장하는 사람(校人)은 말을 먹여 기르(養馬)고 목장(牧)의 사람(人)은 제사에 쓰이는 짐승(牲)을 기르(養)고 농사를 가르치는 사람(農師)은 오곡(五穀)<다섯 가지 곡식(穀食). 곧 쌀, 보리, 조, 콩, 기장>을 심(殖)는다. 밭(塲)의 전문가(師)는 밭(園圃)을 기른(毓)다. 동물(動)과 식물(植)로 하여금(使) 생명을 가짐(含生)의(之) 물(物)이 각자(各) 그(其) 성장함(生育)의(之) 성(性)을 다하게 하(盡)면 곧(則) 물(物)이 각자(各) 그(其) 책임(本分)을 다하(盡)나(而) 그(其) 공로(功)는 나(我)에게 있(在)다(矣). 산과 숲과 내와 못(山林川澤)과 밭(農圃)과 가축을 들에서 기름(畜牧)의(之) 책임(政)이 그치(廢)면 곧(則) 모든 것(萬物)의(之) 삶(生)에 일찍 죽음(夭閼)과 뜻밖(橫)의 난리(亂)와 우거지(茂盛)지 못하(不能)나(而) 성인(聖人)이라는 것(者)이 그것(之)을 기르(修)면서(而) 일으키(擧)면 곧(則) 모든 것(萬物)의(之) 삶(生)에 울창히(蔚然) 숲(叢)이 우거지(茂)고 무성히(郁然) 못(澤)을 살찌워(肥) 천지(天地)로 하여금(使) 모양(觀)을 고치(改)도록 하니 그(其)는 그것(之)을 천지(天地)의(之) 만들어지고 길러짐(化育)을 도움(贊)이라 이른(謂)다. 또한(亦) 마땅하(宜)지 않(不)은가(乎). 성인(聖人)이 성(性)의(之) 기능(工)을 다함(盡)은 이와 같음(如此)에 지나지 않(不過)는다. 이것(此)을 버리(捨)면서 계획하(圖)지 않(不)고 따로(別) 개(犬)와 소(牛)와 사람(人)의(之) 같(同)은 부분(處)을 구하(求)면서 호랑이와 이리(虎狼)에게(於) 인(仁)으로 비난하(討)고 승냥이(豺)와 수달(獺)에게(於) 예(禮)로 나무라(責)고 그것들(之)로 하여금(使) 수도(修道)와 수교(受敎)하여 모두(咸) 훌륭한(大) 중(中)으로 돌아가도록 하(歸)고자 하(欲)면 그(其) 또한(亦) 그것(其)에 성취가 있기(有成)에(乎) 어렵(難)다(矣). 사람(人)과 물(物)이 성(性)이 같(同)다는 것(者)은 부처(佛)의(之) 말씀(言)이다(也). 『역(易)』에서 말하기(曰)를 “때(時)를 잘(茂) 대하(對)니 모든 것(萬物)이 자란(育)다.”
<해석>
‘그 성(性)을 다한다’는 것은 그 하늘(天)에서 받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스스로 닦으면서 지극한 선(善)에 머무르면 곧 나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타인(人)을 바로잡으면서 지극한 선(善)에 머무르면 곧 사람들이 각자 그 책임을 다하게 되나 그 공로는 나에게 있다. 산과 숲과 내와 못(山林川澤)을 관리하고 풀과 나무와 날짐승과 길짐승(草木禽獸)으로 하여금 때를 맞춰 성장하여 일찍 죽거나 알이 곯지 않도록 한다. 말을 관장하는 사람은 말을 먹여 기르고 목장의 사람은 제사에 쓰이는 짐승을 기르고 농사를 가르치는 사람은 쌀과 보리와 조와 콩과 기장을 심는다. 밭의 전문가는 밭을 기른다. 동물과 식물로 하여금 생명을 가진 것들이 각자 그 성장하는 성(性)을 다하게 하면 곧 물(物)이 각자 그 책임을 다하게 되나 그 공로는 나에게 있다. 산과 숲과 내와 못(山林川澤)과 밭과 가축을 들에서 기르는 책임을 멈추면 곧 모든 것(萬物)의 삶에 일찍 죽고 뜻밖의 난리가 나고 우거지지 못하나 성인(聖人)이 기르면서 일으키면 곧 모든 것(萬物)의 삶에 울창히 숲에 우거지고 무성히 못을 살찌워 천지(天地)로 하여금 모양을 고치도록 하니 그는 그것을 천지(天地)의 만들어지고 길러짐(化育)을 돕는다고 일렀다.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성인(聖人)이 성(性)의 기능을 다한다는 것은 이러한 것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을 버리면서 계획하지 않고 따로 개와 소와 사람의 같은 부분을 구하면서 호랑이와 이리에게 인(仁)으로 비난하고 승냥이와 수달에게 예(禮)로 나무라고 그것들로 하여금 도(道)를 닦고 가르침(敎)을 받아서 모두 훌륭한 중(中)으로 돌아가도록 하고자 하면 그도 그것에 성취를 얻기 힘들다. 사람(人)과 물(物)의 성(性)이 같다는 것은 부처(佛)의 말씀이다. 『역(易)』에서 말하기를 “때를 잘 맞추니 모든 것(萬物)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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