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6일 일요일

중용자잠 23-自箴

<원문>

箴曰武王周公。其達孝矣一節。當與此節。連爲一章。章句屬之下章。則宗廟之禮。郊社之禮。豈武王周公之所刱乎。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은 마땅히(其) 훌륭한(達) 효자(孝)이시리라(矣)’ 한(一) 절(節)은 마땅히(當) 이(此) 절(節)과(與) 연결해(連) 한(一) 장(章)으로 한(爲)다. 『장구(章句)』는 그것(之)과 아래(下) 장(章)을 잇(屬)는다. 곧(則) 종묘(宗廟)의(之) 예(禮)이고 교사(郊社)의(之) 예(禮)이다. 어찌(豈)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의(之) 비롯하(刱)는 바(所)이겠는가(乎).


<해석>

경계해 말한다.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은 마땅히 훌륭한 효자(孝)이시리라’ 한 절(節)은 이 절(節)과 연결해 한 장으로 해야 한다. 『장구(章句)』는 그것과 아랫 장을 이었다. 곧 조상의 위패를 두던 묘(宗廟)의 예(禮)이고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郊社)의 예(禮)이다. 어찌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에서 비롯하는 바이겠는가.




<원문>

〇文王武王。父作子述。而周公成文武之德。此所謂善繼善述也。當屬此章無疑。


<직역>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에서 아버지(父)는 시작하(作)고 아들(子)은 계승했(述)다. 그리고(而) 주공(周公)은 문왕(文)과 무왕(武)의(之) 덕(德)을 이뤘(成)다. 이것(此)이 소위(所謂) 조상의 뜻과 사업을 잘 이어받아 계승함(善繼善述)이다(也). 마땅히(當) 이(此) 장(章)과 이음(屬)에 의심할 것이 없(無疑)다.


<해석>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에서 아버지는 시작하고 아들은 계승했다. 그리고 주공(周公)은 문왕(文)의 덕(德)을 이뤘다. 이것이 이른바 조상의 뜻과 사업을 잘 이어받아 계승한다는 것이다. 이 장(章)과 이어야 하는 것에 의심할 것이 없다.




<원문>

箴曰追王之禮。不自周人始。商頌曰玄王桓撥。鄭箋孔疏。並以玄王爲契。國語曰玄王勤商。十四世而興。韋昭以玄王爲契。斯則追王之典。及於始祖也。漢書禮樂志曰殷武上本卨稷。始生玄王公劉。則是又以玄冥爲玄王也。魯語展禽之言曰商人祖契而郊冥。謂冥勤其官而水死。故列之祀典。祭法之所本玄王非玄冥乎。殷人上德。故追王契冥。周人上親。故追王祖曾。此所謂殷周之損益也。帝王世係。自契至冥六世。至湯十四世。則湯距冥遠矣。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왕(王)으로 추존함(追)의(之) 예(禮)는 주나라(周) 사람(人)에서(自) 시작함(始)이 아니(不)다. 「상송(商頌)」에서 말하기(曰)를 ‘현왕(玄王)이 굳세(桓)게 다스렸(撥)다.’ 정현의 주석(鄭箋)과 공안국의 주석(孔疏)은 모두(並) 현왕(玄王)으로써(以) 설(契)로 했(爲)다. 『국어(國語)』에서 말하기(曰)를 ‘현왕(玄王)이 상나라(商)에서 부지런히 일했(勤)다. 십사(十四)대(世)에(而) 일어났(興)다.’ 위소(韋昭)는 현왕(玄王)으로써(以) 설(契)로 했(爲)다. 이것(斯)은 곧(則) 왕(王)으로 추존함(追)의(之) 법(典)이 시조(始祖)에(於) 미친(及)다(也). 『한서예악지(漢書禮樂志)』에서 말하기(曰)를 ‘은나라(殷) 와 무왕(武)은 위(上)로 설(卨)과 직(稷) 그리고 현왕(玄王)과 공류(公劉)에서 처음(始) 시작함(生)에 근거한(本)다’는 곧(則) 이것(是) 또한(又) 현명(玄冥)으로써(以) 현왕(玄王)으로 함(爲)이다(也). 「노어(魯語)」에서 전금(展禽)의(之) 말씀(言)에 말하기(曰)를 ‘상나라(商) 사람(人)이 설(契)을 본받(祖)으면서(而) 명(冥)에 교사를 지냈(郊)다.’ 명(冥)은 그(其) 벼슬(官)에서 부지런히 일하(勤)고(而) 물에 빠져 죽음(水死)을 이른(謂)다. 그러므로(故) 제사를 지내는 예전(祀典)에서 [제사를 지내는 법(祭法)의(之) 근거하(本)는 바(所)이다.] 그것(之)을 나누(列)면 현왕(玄王)은 현명(玄冥)이 아니(非)겠는가(乎). 은나라(殷) 사람(人)은 덕(德)을 숭상했(上)다. 그러므로(故) 왕(王)으로 추존함(追)은 설(契)과 명(冥)이다. 주나라(周) 사람(人)은 겨레(親)를 높였(上)다. 그러므로(故) 왕(王)으로 추존함(追)은 시조(祖)와 증(曾)이다. 이것(此)이 소위(所謂) 은나라(殷)와 주나라(周)의(之) 줄임(損)과 더함(益)이다(也). 제왕(帝王)의 대(世)가 이어짐(係)은 설(契)에서(自) 명(冥)까지(至) 여섯(六) 세대(世)와 탕왕(湯)까지(至) 십사(十四) 세대(世)이다. 곧(則) 탕왕(湯)의 떨어져 있음(距)이 명(冥)에서 멀(遠)다(矣).


<해석>

경계해 말한다. 왕으로 추존하는 예(禮)는 주나라(周) 사람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상송(商頌)」에서 말하기를 '현왕(玄王)이 굳세게 다스렸다.' 정현(鄭)의 주석과 공안국(孔)의 주석은 모두 현왕(玄王)을 설(契)이라고 했다. 『국어(國語)』에서 말하기를 '현왕(玄王)이 상나라(商)에서 부지런히 일하여 14대에 일어났다.' 위소(韋昭)는 현왕(玄王)을 설(契)이라고 했다. 이것은 곧 왕으로 추조하는 법이 시조에 미치는 것이다. 『한서예악지(漢書禮樂志)』에서 말하기를 '은나라(殷) 때 무왕(武)은 위로 설(卨)과 직(稷) 그리고 현왕(玄王)과 공류(公劉)에서 처음 시작한 것에 근거한다'는 곧 이것도 현명(玄冥)을 현왕(玄王)으로 한 것이다. 「노어(魯語)」에서 전금(展禽)이 말하기를 '상나라(商) 사람이 설(契)을 본받으면서 명(冥)에 교사를 지냈다. 명(冥)은 그 벼슬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물에 빠져 주었던 것을 이른다. 그러므로 제사를 지내는 예전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법이 근거하는 것] 그것을 나누면 현왕(玄王)은 현명(玄冥)이 아니겠는가. 은나라(殷) 사람은 덕(德)을 숭상했으므로 설(契)과 명(冥)을 왕으로 추존했고 주나라(周) 사람은 겨레(親)를 높였으므로 시조와 증(曾)을 왕으로 추존했다. 이것이 이른바 은나라(殷)와 주나라(周)가 줄이고 더한 것이다. 제왕(帝王)의 대는 설(契)에서 명(冥)까지 6세대와 탕왕(湯)까지 14세대로 이어지니 곧 탕왕(湯)은 명(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원문>

鄭曰衣讀如殷。齊人言殷聲如衣。今有衣姓者。殷之裔也。


<직역>

정현(鄭)이 말하기(曰)를 “의(衣)의 읽음(讀)은 은(殷)과 같(如)다. 제나라(齊) 사람(人)이 은(殷)의 발음(聲)이 의(衣)와 같(如)다고 말했(言)다. 지금(今) 의(衣)가 성(姓)인 사람(者) 있(有)다면 은나라(殷)의(之) 후손(裔)이다(也).”


<해석>

정현(鄭)이 말하기를 “의(衣)는 은(殷)과 같이 읽어야 한다. 제나라(齊) 사람이 은(殷)의 발음이 의(衣)와 같다고 말했다. 지금 의(衣)가 성인 사람이 있다면 은나라(殷)의 후손이다.”


<해설>

정현(鄭) : 의(衣)를 은(殷)으로 고쳐야 한다.




<원문>

〇朱子曰戎衣。甲冑之屬。壹戎衣。武成篇文。言壹著戎衣以伐紂。


<직역>

주자(朱子)가 말하기(曰)를 “융의(戎衣)는 갑주(甲冑)의(之) 종류(屬)이다. 한 번(壹) 전쟁용(戎) 옷을 입음(衣)은 「무성(武成)」 편(篇)의 글(文)에서 한 번(壹) 전쟁용(戎) 옷(衣)을 입음(著) 그것으로써(以) 주임금(紂)을 침(伐)을 말한(言)다.”


<해석>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융의(戎衣)는 갑옷과 투구의 종류이다. 한 번 군복을 입음은 「무성(武成)」편의 글에서 한 번 군복을 입어서 주임금(紂)을 치는 것을 말한다.”




<원문>

〇毛曰壹是殪字。 康誥曰殪戎殷。言滅大殷也。戎殷則與泰誓稱戎商正同。自註武成者多誤解。作一著戎衣。而朱子亦卽以一著戎衣爲註。夫以兵衣爲戎衣。不知有據。


<직역>

모(毛)가 말하기(曰)를 “일(壹)은 이(是) 에(殪)라는 글자(字)이다. 「강고(康誥)」에서 말하기(曰)를 ‘은나라(殷)를 쓰러뜨렸(殪戎)다’는 ‘대국(大) 은나라(殷)가 멸망했(滅)다(也)’를 말한(言)다. ‘은나라(殷)를 쳤(戎)다’라면 곧(則) 「태서(泰誓)」가 일컬(稱)은 ‘상나라(商)를 쳤(戎)다’와(與) 정확히(正) 같(同)다. 「무성(武成)」을 스스로(自) 주해한(註) 것(者)은 자주(多) 뜻을 잘못 이해하(誤解)여 ‘한 번(一) 전쟁용(戎) 옷(衣)을 입(著)었다’라 지었(作)다. 그리고(而) 주자(朱子) 또한(亦) 이미(卽) ‘한 번(一) 전쟁용(戎) 옷(衣)을 입(著)었다’로써(以) 주석(註)으로 했(爲)다. 대저(夫) 병사(兵)의 옷(衣)으로써(以) 융의(戎衣)라 함(爲)은 근거(據)가 있음(有)을 알지 못한(不知)다.”


<해석>

모(毛)가 말하기를 “일(壹)은 에(殪)라는 글자이다. 「강고(康誥)」에서 말하기를 ‘은나라(殷)를 쓰러뜨렸다’는 ‘대국 은나라(殷)가 멸망했다’를 말한다. ‘은나라(殷)를 쳤다’라면 곧 「태서(泰誓)」가 일컬은 ‘상나라(商)를 쳤다’와 정확히 같다. 「무성(武成)」을 스스로 주해한 것은 자주 뜻을 잘못 이해하여 ‘한 번 군복을 입었다’로 주석을 지었다. 대저 병사의 옷을 융의(戎衣)라고 한 것은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다.


<해설>

일융의(壹戎衣)에 대한 해설 : 

정현(鄭) : 의(衣) → 은(殷)

모(毛) : 일(壹) → 에(殪)

vs.

주자(朱子) : 일착융의(一著戎衣)




<원문>

〇案梅氏武成則竊中庸固無可論。惟殪戎殷。見於康誥。戎商見於國語。單襄公引太誓文。鄭說未可非也。但武成云一戎衣天下大定。明是一著甲冑之意。蕭山若從殪戎殷之說。則其所信梅氏武成。又一破綻。將若之何。


<직역>

상고컨대(案) 매씨(梅氏)의 「무성(武成)」은 곧(則) 분명히(竊) 『중용(中庸)』은 원래(固) 논할(論) 수 있음(可)이 없(無)다. 오직(惟) ‘은나라(殷)를 쓰러뜨렸(殪戎)다’는 「강고(康誥)」에서(於) 보인(見)다. ‘상나라(商)를 쳤(戎)다’는 『국어(國語)』에서(於) 보인(見)다. [단양공(單襄公)이 「태서(太誓)」의 글(文)을 인용했(引)다.] 정현(鄭)의 말씀(說)이 아니(非)라 할 수 없(未可)다(也). 다만(但) 「무성(武成)」에서 이르기(云)를 ‘한 번(一) 전쟁용(戎) 옷을 입(衣)자 천하(天下)가 크(大)게 안정됐(定)다’는 이(是) ‘한 번(一) 갑주(甲冑)를 입(著)었다’의(之) 뜻(意)이 명료하게 드러난(明)다. 소산(蕭山)이 만약(若) ‘은나라(殷)를 쓰러뜨렸(殪戎)다’의(之) 말씀(說)을 따르(從)면 곧(則) 그(其) 매씨(梅氏)의 「무성(武成)」을 믿(信)는 바(所) 또한(又) 한 번(一) 그릇된(破綻)다. 장차(將) 어찌(何) 그(之)와 같(若)겠는가.


<해석>

상고컨대 매씨(梅氏)의 「무성(武成)」을 따르면 곧 『중용(中庸)』을 논할 수 없게된다. ‘은나라(殷)를 쓰러뜨렸다’는 「강고(康誥)」에서만 보이고 ‘상나라(商)를 쳤다’는 『국어(國語)』에서만 보인다. [단양공(單襄公)이 「태서(太誓)」의 글을 인용했다.] 정현(鄭)의 말씀이 아니라 할 수는 없다. 다만 「무성(武成)」에서 이르기를 ‘한 번 군복을 입자 천하(天下)가 크게 안정됐다’는 ‘한 번 갑옷과 투구를 입었다’의 뜻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소산(蕭山)이 만약 ‘은나라(殷)를 쓰러뜨렸다’의 말씀을 따르면 곧 그 매씨(梅氏)가 「무성(武成)」을 믿는 것도 한 번 그릇된다. 장차 어찌 그와 같겠는가.


<해설>

「무성(武成)」의 의(衣)를 은(殷)으로 고치면 해석할 수 없게 되므로 의(衣)를 고쳐서는 안된다.

일융의(壹戎衣)는 일착융의(一著戎衣)로 해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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