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箴曰舊注以過與不及爲兩端。本是正解。若衆論皆過則皆不可用。若衆論皆不及則亦皆不可用也。中與兩端。皆已先在舜自己心內。以之爲權衡尺度。於是執此三者。以察人言。其犯於兩端者去之。其合於中者用之。斯其所以爲舜也。若於人言之內。執其兩端。較量其大小厚薄而用其中品。則宜大宜厚者。亦將以其不中而去之乎。中者至善之所在也。有極大極厚而得中者。有極小匡薄而得中者。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옛(舊) 주석(注)은 지나침(過)과(與) 미치지 못함(不及)으로써(以) 양단(兩端)으로 했(爲)다. 본래(本是) 옳은 해석(正解)이다. 만약(若) 여러 사람들의 의견(衆論)이 모두(皆) 지나치(過)면 곧(則) 모두(皆) 쓸(用) 수 없(不可)다. 만약(若) 여러 사람들의 의견(衆論)이 모두(皆) 미치지 못하(不及)면 곧(則) 또한(亦) 모두(皆) 쓸(用) 수 없(不可)다(也). 중(中)과(與) 양단(兩端)은 모두(皆) 이미(已) 먼저(先) 순임금(舜) 자기(自己) 마음(心) 안(內)에 있(在)다. 그것(之)으로써(以) 저울추와 저울대(權衡)와 표준(尺度)으로 한(爲)다. 그래서(於是) 이(此) 세(三) 가지(者)를 잡(執)고 그것으로써(以) 남의 말(人言)을 살피(察)고 그(其) 양단(兩端)에서(於) 어기(犯)는 것(者) 그것(之)을 버린(去)다. 그(其) 중(中)에(於) 맞(合)는 것(者) 그것(之)을 쓴(用)다. 이것(斯)이 그(其) 순임금(舜)이라 했(爲)던 까닭(所以)이다(也). 만약(若) 남의 말(人言)의(之) 안(內)에서(於) 그(其) 양단(兩端)을 잡(執)고 그(其) 대소(大小)와 후박(厚薄)을 헤아리(較量)면서(而) 그(其) 가운데(中) 종류(品)를 쓰(用)면 곧(則) 마땅히(宜) 크(大)고 마땅히(宜) 두꺼(厚)운 것(者) 또한(亦) 장차(將) 그(其) 중(中)이 아님(不)이라 여기(以)면서(而) 그것(之)을 버리(去)겠는가(乎). 중(中)이라는 것(者)은 지선(至善)의(之) 있는 곳(所在)이다(也). 지극히(極) 큼(大)과 지극히(極) 두꺼움(厚)이 있(有)으면서(而) 중(中)을 얻(得)는 것(者)이고 지극히(極) 작음(小)과 가는(匡) 얇음(薄)이 있(有)으면서(而) 중(中)을 얻(得)는 것(者)이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옛 주석은 지나침(過)과 미치지 못함(不及)으로써 양단(兩端)으로 했다. 본래 옳은 해석이다. 만약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모두 지나치(過)면 모두 쓸 수 없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모두 미치지 못한(不及)다면 곧 또한 모두 쓸 수 없다. 중(中)과 양단(兩端)은 모두 이미 순임금(舜) 자신의 마음(心) 안에 있다. 그것으로 저울추와 저울대(權衡)와 표준(尺度)으로 한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잡아 남의 말을 살피고 그 양단(兩端)에서 어기는 것은 버리고 그 중(中)에 맞는 것은 쓴다. 이것이 그 순임금(舜)이라 했던 까닭이다. 만약 남의 말 안에서 그 양단(兩端)을 잡아 그 대소(大小)와 후박(厚薄)을 헤아리면서 그 가운데(中) 종류를 쓰면 곧 마땅히 크(大)고 마땅히 두꺼(厚)운 것 또한 장차 그 중(中)이 아님이라 여기면서 버리겠는가. 중(中)이라는 것은 지극히 선(善)함의 있는 곳이다. 지극히 크(大)고 지극히 두꺼워(厚)도 중(中)을 얻는 것이고 지극히 작(小)고 가늘게 얇아(薄)도 중(中)을 얻는 것이다.
<원문>
〇惡者過不及之論也。善者得中之論也。
<직역>
악(惡)이라는 것(者)은 과불급(過不及)의(之) 견해(論)이다(也). 선(善)이라는 것(者)은 중(中)을 얻음(得)의(之) 견해(論)이다(也).
<해석>
악(惡)이라는 것은 과불급(過不及)의 견해이다. 선(善)이라는 것은 중(中)을 얻은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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