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箴曰庸之爲字。原是有常之意。故君子進德修業。以能久爲貴。易曰天地之道。恆久而不已也。易曰天行健。君子以。自强不息。易曰九二悔亡。能久中也。書曰乃大淫昏。不克終。日勸于帝之迪。多方文皆以能久爲德也。論語曰民鮮久矣。雖毋能字。亦自成文。若云世敎衰而行之者鮮。則論語將柰何。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용(庸)의(之) 글자(字)됨(爲)은 본디(原是) 일정함(常)의(之) 뜻(意)이 있(有)다. 그러므로(故) 군자(君子)는 덕(德)으로 나아가(進)고 학업이나 기술을 익힌(修業)다. 능히(能) 오래 머무름(久)으로써(以) 귀하게 여기(貴)도록 한(爲)다. 『역(易)』에서 말하기(曰)를 “천지(天地)의(之) 도(道)는 항상(恆) 오래되(久)면서(而) 멈추지 않(不已)는다(也).” 『역(易)』에서 말하기(曰)를 “천행(天行)이 활발하(健)다. 군자(君子)는 그것으로써(以) 자강불식(自强不息)한다.” 『역(易)』에서 말하기(曰)를 “구이(九二)는 뉘우침(悔)이 없어진(亡)다. 능히(能) 중(中)에 오래 머무른(久)다(也).” 『서(書)』에서 말하기(曰)를 “이에(乃) 크(大)게 문란한 짓을 하(淫昏)여 아침부터 저녁까지(終日) 제(帝)의(之) 나아감(迪)에(于) 힘쓸(勸) 수 없(不克)다.” [「다방(多方)」의 글(文)] 모두(皆) 능히(能) 오래 머무름(久)으로써(以) 덕(德)으로 한(爲)다(也). 『논어(論語)』에서 말하기(曰)를 “사람들(民)은 오래 머무름(久)이 드물(鮮)도다(矣).” 비록(雖) ‘능(能)’이라는 글자(字)가 없(毋)어도 또한(亦) 스스로(自) 글(文)이 갖추어진(成)다. 만약(若) 이르기(云)를 세상의 가르침(世敎)가 쇠하(衰)면서(而) 그것(之)을 행하(行)는 사람(者)이 드물(鮮)면 곧(則) 『논어(論語)』는 장차(將) 어찌하랴(柰何).
<해석>
경계해 말한다. 용(庸)의 글자됨은 본디 일정함(常)의 뜻이 있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덕(德)으로 나아가고 학업이나 기술을 익히며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역(易)』에서 말하기를 “천지(天地)의 도(道)는 항상 오래되면서 멈추지 않는다.” 『역(易)』에서 말하기를 “천행(天幸)이 활발하니 군자(君子)는 그것으로써 스스로 힘을 쓰고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않(自强不息)는다.” 『역(易)』에서 말하기를 “구이(九二)는 뉘우침이 없어진다는 것은 중(中)에 오래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서(書)』에서 말하기를 “이에 크게 문란한 짓을 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帝)의 나아감에 힘쓸 수 있다.” [「다방(多方)」의 글] 모두 오래 머무를 수 있음을 덕(德)으로 한다. 『논어(論語)』에서 말하기를 “사람들은 오래 머무름이 드물도다.” 비록 ‘능(能)’이라는 글자가 없어도 또한 스스로 글이 갖추어진다. 만약 이르기를 세상의 가르침이 쇠하면서 행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하면 곧 『논어(論語)』는 장차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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