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箴曰中者。不偏不倚無過不及也。名此於經文。具有確證。但不偏之意。不見本篇。惟洪範云無偏無黨惟庸字之義。未有明解。若云平常之理。則聖人以平常之理。名曰至德。亦恐未然。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중(中)이라는 것(者)은 치우치(偏)지 않(不)고 기울(倚)지 않(不)고 지나침(過)과 미치(及)지 못함(不) 없음(無)이다(也). 경문(經文)에서(於) 이것(此)을 이름함(名)은 모두(具) 확증(確證)이 있(有)다. [다만(但) 치우치(偏)지 않음(不)의(之) 뜻(意)은 본편(本篇)에 보이(見)지 않(不)는다. 오직(惟) 「홍범(洪範)」에서 이르기(云)를 ‘어느 한 쪽에 기울지 않(無偏無黨)는다.’] 오직(惟) 용(庸)이라는 글자(字)의(之) 의미(義)는 명해(明解)가 있은 적이 없(未有)다. 만약(若) 평상(平常)의(之) 이(理)라 이른(云)다면 곧(則) 성인(聖人)이 평상(平常)의(之) 이(理)로써(以) 지극한(至) 덕(德)이라 이름하(名)여 말함(曰)이니 또한(亦) 아마도(恐) 그렇지 않(未然)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중(中)이라는 것은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음이다. 경문(經文)에서 이것을 이름함은 모두 확실한 증거가 있다. [다만 치우치지 않음의 뜻은 이 책에 보이지 않는다. 오직 「홍범(洪範)」에서 이르기를 ‘어느 한 쪽에 기울지 않는다.’] 오직 용(庸)이라는 글자의 의미는 분명하게 해석된 적이 없다. 만약 평상(平常)의 이(理)라고 이른다면 곧 성인(聖人)이 평상(平常)의 이(理)로써 지극한 덕(德)이라 이름하여 말했던 것이니 또한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원문>
〇周禮大司樂。以六德敎國子。其目曰中和祗庸孝友。疏云此六德。其中和二德。取大司徒六德之下。孝友二德。取六行之上。其祗庸二德。與被異。庸者有常也。鄭注云康誥曰庸庸祗祗。似與樂德同義。而注則不然。注云庸謂用其所當用。祗謂敬其所當敬。禮記中庸疏云以中和爲用。故謂之中庸。則顯然乖謬。
<직역>
『주례(周禮)』에서 대사악(大司樂)이 육덕(六德)으로써(以) 나라(國)의 공경대부의 자제(子)를 가르친(敎)다. 그(其) 목록(目)에서 말하기(曰)를 ‘중(中)과 화(和)와 지(祗)와 용(庸)과 효(孝)와 우(友)’이다. [주석(疏)에서 이르기(云)를 “이(此) 육덕(六德)에서 그(其) 중(中)과 화(和) 두(二) 덕(德)은 대사도(大司徒) 육덕(六德)의(之) 아래(下)에서 받아들인(取)다. 효(孝)와 우(友) 두(二) 덕(德)은 육행(六行)의(之) 위(上)에서 받아들인(取)다. 그(其) 지(祗)와 용(庸) 두(二) 덕(德)은 저것(被)과(與) 다르(異)다.”] 용(庸)이라는 것(者)은 일정함(常)이 있음(有)이다(也). [정주(鄭注)에서 이른(云)다.] 「강고(康誥)」에서 말하기(曰)를 ‘용용지지(庸庸祗祗)한다.’ 낙덕(樂德)과(與) 같은 뜻(同義) 같(似)다. 그러나(而) 주석(注)은 곧(則) 그렇지 않(不然)다. [주석(注)에서 이르기(云)를 “용(庸)은 그(其) 마땅히(當) 쓸(用) 바(所)를 씀(用)이라 이른(謂)다. 지(祗)는 그(其) 마땅히(當) 공경할(敬) 바(所)를 공경함(敬)이라 이른(謂)다.”] 『예기(禮記) 중용(中庸)』의 주석(疏)에서 이르기(云)를 ‘중화(中和)로써(以) 작용(用)으로 한(爲)다. 그러므로(故) 그것(之)을 중용(中庸)이라 이른(謂)다.’ 곧(則) 뚜렷하(顯然)게 어그러지(乖)고 그르친(謬)다.
<해석>
『주례(周禮)』에서 대사악(大司樂)이 육덕(六德)으로써 공경대부의 자제를 가르친다. 그 목록에서 말하기를 ‘중(中)과 화(和)와 지(祗)와 용(庸)과 효(孝)와 우(友)’이다. [주석에서 이르기를 “이 육덕(六德)에서 그 중(中)과 화(和) 두 덕(德)은 대사도(大司徒) 육덕(六德)의 아래에서 받아들이고 효(孝)와 우(友) 두 덕(德)은 육행(六行)의 위에서 받아들이고 그 지(祗)와 용(庸) 두 덕(德)은 나머지와 다르다.”] 용(庸)이라는 것은 일정함(常)이 있음(有)이다. [정주(鄭注)에 이른다.] 「강고(康誥)」에서 말하기를 ‘용용지지(庸庸祗祗)한다.’ 덕(德)을 즐김(樂)과 같은 뜻 같다. 그러나 주석은 곧 그렇지 아니하다. [주석에서 이르기를 “용(庸)은 그 마땅히 쓸 사람을 쓰는 것을 이른다. 지(祗)는 그 마땅히 공경할(敬) 사람을 공경하(敬)는 것을 이른다.”] 『예기(禮記) 중용(中庸)』의 주석에서 이르기를 ‘중화(中和)를 작용(用)으로 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중용(中庸)이라 이른다.’ 곧 뚜렷하게 어그러지고 그르친다.
<원문>
〇竊嘗思之。仲尼之學。源於堯舜。故大學之明德新民。其在堯典曰克明峻德。以親九族。以平百姓。以協萬邦。其在皐陶謨曰愼厥身修。敦敍九族。庶明勵翼。邇可遠在玆。皆是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說。前聖後聖之言。若令符節。奚獨中庸二字。爲仲尼所刱建。而堯舜之世無此說乎。今案皐陶謨皐陶陳九德之目。其一曰寬而栗。夫不偏於寬而濟之以栗則中也。其二曰柔而立。夫不倚於柔而濟之以立則中也。其五曰擾而毅。夫不過於擾而濟之以毅則中也。則六曰直而溫。夫不過於直而滲之以溫則中也。餘所謂愿而恭亂而敬簡而廉剛而塞彊而義。雖其字義。今多不明。要皆不偏於此而兼之如彼之意。詳見余尙書說。今不細論末乃結之曰彰厥有常吉哉。則九德者中也。有常者庸也。中庸二字。其非堯舜以來聖聖相傳之密旨要言乎。其在堯典曰夔命汝典樂。敎冑子。直而溫。寬而栗。剛而無虐。簡而無傲。其爲不偏不倚無過不及之德。又昭昭然。而大司樂中和祗庸之敎。本出堯典。又彰彰然矣。
古者敎人以禮樂。故皐陶謨曰自我五禮有庸哉。梅傳云接之使有常。堯典曰典樂敎冑子以中庸之德。仲尼以中庸立敎。源源本本。起於堯舜。知此而後。中庸二字之義。昭如日星。建諸天地。數千年湮晦不明之學。一朝洞若發矇。何快如之。何樂如之。
<직역>
마음속으로(竊) 이전에(嘗) 그것(之)을 생각해보(思)니 중니(仲尼)의(之) 학문(學)은 요순(堯舜)에(於) 근원한(源)다. 그러므로(故) 『대학(大學)』의(之) 명덕(明德)과 신민(新民)과 그(其) 요전(堯典)에 있(在)어 말하기(曰)를 ‘능히(克) 준덕(峻德)을 밝힌(明)다. 그것으로써(以) 구족(九族)을 친하게 하(親)고 그것으로써(以) 백성(百姓)을 고루 다스리(平)고 그것으로써(以) 모든 나라(萬邦)를 화합시킨(協)다.’ 그(其) 고요모(皐陶謨)에 있(在)어 말하기(曰)를 ‘삼가(愼) 그(厥)의 몸(身)을 닦(修)으면 구족(九族)에게 도탑(敦)게 베풀(敍)고 여러(庶) 현인(明)이 힘써(勵) 돕(翼)는다. 가까운 곳(邇)에서 가히(可) 멀리 감(遠)이 이(玆)에 있(在)다.’ 모두(皆是)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之) 말씀(說)이다. 예전(前)의 성인(聖)과 훗날(後)의 성인(聖)의(之) 말씀(言)이 부절을 맞추는 것과 같(若令符節)다면 어찌(奚) 홀로(獨) 중용(中庸) 두(二) 글자(字)를 중니(仲尼)의 비롯하(刱)고 세우(建)는 바(所)로 하(爲)는가. 그러나(而) 요순(堯舜)의(之) 시대(世)에 이(此) 말씀(說)이 없(無)었겠는가(乎). 지금(今) 상고건대(案) 「고요모(皐陶謨)」에서 고도(皐陶)가 구덕(九德)의(之) 목록(目)을 제시했(陳)다. 그(其) 첫째(一)로 말하기(曰)를 ‘너그러(寬)우면서(而) 견실함(栗).’ 대저(夫) 너그러움(寬)에(於) 치우치지 않(不偏)으면서(而) 견실함(栗)으로써(以) 그것(之)을 이루(濟)면 곧(則) 중(中)이다(也). 그(其) 둘째(二)로 말하기(曰)를 ‘부드러(柔)우면서(而) 똑바로 섬(立).’ 대저(夫) 부드러움(柔)에(於) 기울(倚)지 않(不)으면서(而) 똑바로 섬(立)으로써(以) 그것(之)을 이루(濟)면 곧(則) 중(中)이다(也). 그(其) 다섯째(五)로 말하기(曰)를 ‘유순하(擾)면서(而) 굳셈(毅).’ 대저(夫) 유순함(擾)에(於) 지나치(過)지 않(不)으면서(而) 굳셈(毅)으로써(以) 그것(之)을 이루(濟)면 곧(則) 중(中)이다(也). 그(則) 여섯째(六)로 말하기(曰)를 ‘굳세(直)면서(而) 부드러움(溫).’ 대저(夫) 굳셈(直)에(於) 지나치(過)지 않(不)으면서(而) 부드러움(溫)으로써(以) 그것(之)을 다하(滲)면 곧(則) 중(中)이다(也). 나머지(餘) 소위(所謂) ‘성실하(愿)면서(而) 공손함(恭)’과 ‘다스리(亂)면서(而) 공경함(敬)’과 ‘간략하(簡)면서(而) 날카로움(廉)’과 ‘굳세(剛)면서(而) 성실함(塞)’과 ‘굳세(彊)면서(而) 의로움(義)’은 비록(雖) 그(其) 글자(字)가 옳(義)아도 지금(今)은 확실하지 않음(不明)이 많(多)다. 여기(此)에서(於) 모든(皆) 치우치지 않음(不偏)을 합치(要)고(而) 그것(之)을 아우름(兼)이 저기(彼)의(之) 뜻(意)과 같(如)다. [내(余) 「상서(尙書)」의 주해(說)에 자세히 드러난(詳見)다. 지금(今)은 자세하게 의논하(細論)지 않(不)는다.] 끝내(末乃) 그것(之)을 맺(結)어 말하기(曰)를 ‘그것(厥)을 드러내(彰)고 일정함(常)이 있(有)으니 길합(吉)니다(哉).’ 곧(則) 구덕(九德)이라는 것(者)은 중(中)이다(也). 일정함(常)이 있(有)다는 것(者)은 용(庸)이다(也). 중용(中庸) 두(二) 글자(字)는 그(其) 요순(堯舜) 이래(以來)로 슬기롭게(聖聖) 이어 전함(相傳)의(之) 비밀스러운 명령(密旨)이고 요점을 추린 말(要言)이 아니(非)겠는가(乎). 그(其) 『요전(堯典)』에 있(在)어 말하기(曰)를 “기(夔)여 너(汝)를 전악이라는 관직(典樂)으로 명(命)한다. 과인과 경대부의 맏아들(冑子)을 가르쳐(敎)라. 굳세(直)면서(而) 부드럽(溫)고 너그러(寬)우면서(而) 견실하(栗)고 굳세(剛)면서(而) 모질(虐)지 말(無)고 간략하(簡)면서(而) 성급하(傲)지 말(無)라.” 그것(其)을 치우치지 않(不偏)고 기울(倚)지 않(不)고 지나침(過)과 미치지 못함(不及)이 없음(無)의(之) 덕(德)으로 하(爲)니 또한(又) 뚜렷한(昭昭)듯하(然)다. 그리고(而) 대사악(大司樂)의 중(中)과 화(和)와 지(祗)와 용(庸)의(之) 가르침(敎)은 원래(本) 『요전(堯典)』에 나오(出)니 또한(又) 뚜렷한(彰彰)듯하(然)다(矣).
옛날(古者)에는 예악(禮樂)으로써(以) 사람(人)을 가르쳤(敎)다. 그러므로(故) 「고요모(皐陶謨)」에서 말하기(曰)를 “스스로(自) 내(我) 오례(五禮)에 용(庸)이 있(有)도록 한다(哉).” [매씨(梅)의 「전(傳)」에서 이르기(云)를 “그것(之)을 이음(接)에 일정함(常)이 있(有)게 한(使)다.” 「요전(堯典)」에서 말하기(曰)를 “전악이라는 관직(典樂)이 왕과 경대부의 맏아들(冑子)을 중용(中庸)의(之) 덕(德)으로써(以) 가르친(敎)다.” 중니(仲尼)는 중용(中庸)으로써(以) 가르침(敎)을 세웠(立)다. 처음부터 끝까지(源源本本) 요순(堯舜)에서(於) 일어났(起)다. 이(此)를 안(知) 이후(而後)에야 중용(中庸) 두(二) 글자(字)의(之) 의미(義)가 확실히(昭) 해와 별(日星)이 모든(諸) 천지(天地)를 세움(建)과 같(如)다. 수천년(數千年)동안 감춰지(湮晦)고 확실하지 않음(不明)의(之) 학문(學)이 하루 아침(一朝)에 꿰뚫음(洞)이 눈이 뜨이고 귀가 들리게 됨(發矇)과 같(若)다. 어떤(何) 쾌함(快)이 그것(之)과 같(如)고 어떤(何) 즐거움(樂)이 그것(之)과 같(如)겠는가.
<해석>
마음속으로 이전에 그것을 생각해보니 중니(仲尼)의 학문은 요순(堯舜)에 근원을 둔다. 그러므로 『대학(大學)』의 명덕(明德)과 신민(新民)과 요전(堯典)에서 말하는 ‘능히 준덕(峻德)을 밝혀서 구족(九族)을 친하게 하고 백성(百姓)을 고루 다스리고 모든 나라를 화합시킨다’와 고요모(皐陶謨)에서 말하는 ‘삼가 그의 몸을 닦으면 구족(九族)에게 도탑게 베풀고 여러 현인이 힘써 도우니 가까운 곳에서 멀리 갈 수 있는 것이 이에 있다’는 모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말씀이다. 예전과 훗날 모든 성인(聖)의 말씀이 들어맞아 조금도 틀리지 않다면 어찌 홀로 중용(中庸) 두 글자를 중니(仲尼)의 비롯하고 세우는 바로 하는가. 요순(堯舜) 시대에 이 말씀이 없었겠는가. 지금 상고건대 「고요모(皐陶謨)」에서 고도(皐陶)가 구덕(九德)의 목록을 제시했는데 그 첫째로 말하기를 ‘너그러(寬)우면서 견실함(栗).’ 대저 너그러움(寬)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견실함(栗)으로 이루면 곧 중(中)이다. 그 둘째로 말하기를 ‘부드러(柔)우면서 똑바로 섬(立).’ 대저 부드러움(柔)에 기울지 않으면서 똑바로 서(立)서 이루면 곧 중(中)이다. 그 다섯째로 말하기를 ‘유순하(擾)면서 굳셈(毅).’ 대저 유순함(擾)에 지나치지 않으면서 굳셈(毅)으로 이루면 곧 중(中)이다. 그 여섯째(六)로 말하기(曰)를 ‘굳세(直)면서 부드러움(溫).’ 대저 굳셈(直)에 지나치지 않으면서 부드러움(溫)으로 다하면 곧 중(中)이다. 나머지 이른바 ‘성실하(愿)면서 공손함(恭)’과 ‘다스리(亂)면서 공경함(敬)’과 ‘간략하(簡)면서 날카로움(廉)’과 ‘굳세(剛)면서 성실함(塞)’과 ‘굳세(彊)면서 의로움(義)’은 비록 그 글자가 옳아도 지금은 확실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여기에서 모든 치우치지 않은 것들을 합치고 아우름이 저기의 뜻과 같다. [내 「상서(尙書)」의 주해에 자세히 드러난다. 지금은 자세하게 의논하지 않는다.] 끝내 그것을 맺어 말하기를 ‘그것을 드러내고 일정함(常)이 있으니 길합니다.’ 곧 구덕(九德)이라는 것은 중(中)이다. 일정함(常)이 있다는 것은 용(庸)이다. 중용(中庸) 두 글자는 요순(堯舜) 이래로 슬기롭게 이어 전해온 비밀스러운 명령이고 요점을 추린 말이 아니겠는가. 그 『요전(堯典)』에서 말하기를 “기(夔)여 너를 전악(典樂)이라는 관직으로 명하노니 과인과 경대부의 맏아들을 가르쳐라. 굳세(直)면서 부드럽(溫)고 너그러(寬)우면서 견실하(栗)고 굳세(剛)면서 모질(虐)지 말고 간략하(簡)면서 성급하(傲)지 말라.” 그것을 치우치지 않(不偏)고 기울(倚)지 않(不)고 지나침(過)과 미치지 못함(不及)이 없(無)는 덕(德)으로 하니 또한 뚜렷하다. 그리고 대사악(大司樂)의 중(中)과 화(和)와 지(祗)와 용(庸)의 가르침은 원래 『요전(堯典)』에 나오니 또한 뚜렷하다.
옛날에는 예악(禮樂)으로 사람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고요모(皐陶謨)」에서 말하기를 “스스로 내 오례(五禮)에 용(庸)이 있도록 한다.” [매씨(梅)의 「전(傳)」에서 이르기를 “그것을 이음에 일정함(常)이 있게 한다.” 「요전(堯典)」에서 말하기를 “전악(典樂)이라는 관직이 왕과 경대부의 맏아들을 중용(中庸)의 덕(德)으로 가르친다.” 중니(仲尼)는 중용(中庸)으로 가르침을 세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요순(堯舜)에서 일어났다. 이를 안 이후에야 중용(中庸) 두 글자의 의미가 확실히 해와 별이 모든 천지(天地)를 세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수천년동안 감춰지고 확실하지 않은 학문이 하루 아침에 꿰뚫는 것이 눈이 뜨이고 귀가 들리게 됨과 같다. 어떤 상쾌함이 그것과 같을 수 있고 어떤 즐거움이 그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해설>
若令符節는 若合符節일 것이다. [한국고전종합DB는 수정하지 않음]
則六曰는 其六曰일 것이다. [한국고전종합DB는 수정했으나 표시하지 않음]
<원문>
〇中之爲德。理固然矣。其必以有常爲貴者。抑何以哉。人之秉德。雖至正大中。若其人朝變夕改。月異歲殊。則卒無以爲成德之君子。必固執恆守。永久不渝而後。方可以信其爲德。故孔子謂顔淵曰回也。其心三月不違仁。其餘或至數日。或至一月。故孔子曰其餘日月至焉而已矣。此經曰擇乎中庸而不能期月守者。此之謂也。孟子曰朝晝之所爲。梏亡其夜氣。又曰一日暴之。十日寒之。所戒皆無常也。易曰聖人久於其道而天下化成。易曰不恆其德。或承之羞。孔子引南人之言曰人而無恆。不可以爲巫毉。又曰得見有恆者斯可矣。無恆之戒。何可勝數。此皐陶九德之目。所以結之以有常者也。
<직역>
중(中)의(之) 덕(德)됨(爲)은 이치(理)가 원래 그러하(固然)다(矣). 그것(其)은 반드시(必) 일정함(常)이 있음(有)으로써(以) 귀한(貴) 것(者)으로 한(爲)다. 도대체(抑) 어째서(何以)인가(哉). 사람(人)의(之) 덕(德)을 아우름(秉)이 비록(雖) 지극히(至) 바르(正)고 큰(大) 중(中)이어도 만약(若) 그(其) 사람(人)이 아침저녁으로 뜯어고쳐(朝變夕改)여 달(月)마다 다르(異)고 해(歲)마다 다르(殊)다면 곧(則) 마침내(卒) 덕(德)을 이룸(成)의(之) 군자(君子)라고 여김(以爲)이 없(無)다. 반드시(必) 고집(固執)을 항상(恆) 지키(守)고 영구(永久)히 변하지 않(不渝)은 이후(而後)에야 장차(方) 그(其) 덕(德)됨(爲)을 믿(信)을 수 있(可以)다. 그러므로(故) 공자(孔子)가 안연(顔淵)에게 일러(謂) 말하기(曰)를 “회(回)는(也) 그(其) 마음(心)이 세(三)달(月)동안 인(仁)에 어긋나(違)지 않(不)는다.” 그(其) 나머지(餘)는 혹(或) 수일(數日)동안 이르(至)고 혹(或) 한(一)달(月)동안 이른(至)다. 그러므로(故) 공자(孔子)가 말하기(曰)를 “그(其) 나머지(餘)는 하루(日)나 한 달(月)동안 여기(焉)에 이를(至)뿐이(而已)다(矣).” 이(此) 경(經)에서 말하기(曰)를 ‘중용(中庸)에서(乎) 고르(擇)지만(而) 만 한 달(期月)동안 지킬(守) 수 없(不能)다’라는 것(者)은 이것(此)의(之) 이름(謂)이다(也). 맹자(孟子)가 말하기(曰)를 “아침부터 낮까지(旦晝)의(之) 하는 일(所爲)이 그(其) 밤의 기운(夜氣)을 묶(梏)어 멸망시킨(亡)다.” 또한(又) 말하기(曰)를 “하루(一日)는 그것(之)을 따뜻하게 하(暴)고 십일(十日)은 그것(之)을 식힌(寒)다.” 경계하(戒)는 바(所)는 모두(皆) 일정함(常)이 없음(無)이다(也). 『역(易)』에서 말하기(曰)를 “성인(聖人)은 그(其) 도(道)에(於) 오래 머무르(久)면서(而) 천하(天下)가 길러서 자라게 한(化成)다.” 『역(易)』에서 말하기(曰)를 “그(其) 덕(德)을 늘 그렇게 하(恆)지 않(不)으면 혹(或) 그것(之)을 받음(承)이 부끄럽(羞)다.” 공자(孔子)가 남쪽(南) 사람(人)의(之) 말(言)을 인용하(引)여 말하기(曰)를 “사람(人)에 만약(而) 변하지 않음(恆)이 없(無)다면 무당(巫)과 의원(毉)이라고 여길(以爲)수 없(不可)다.” 또한(又) 말하기(曰)를 “변하지 않음(恆)이 있(有)는 사람(者)을 만나(得) 보(見)면 이에(斯) 좋(可)다(矣).” 변하지 아니함(恆)이 없음(無)의(之) 경계함(戒)이 어찌(何) 가히(可) 모두(勝) 헤아리(數)는가. 이(此) 고도(皐陶)의 구덕(九德)의(之) 목록(目)이 그것(之)을 맺(結)는 방법(所以)은 일정함(常)이 있(有)는 것(者)으로써(以)이다(也).
<해석>
중(中)의 덕(德)됨은 이치가 원래 그러하다. 그것은 반드시 일정함(常)이 있는 것을 귀한 것으로 한다. 도대체 어째서인가. 사람의 덕(德)을 아우름이 비록 지극히 바르고 큰 중(中)이어도 만약 그 사람이 일관성 없이 자주고쳐 달마다 다르고 해마다 다르다면 곧 마침내 덕(德)을 이룬 군자(君子)라고 여길 수 없다. 반드시 고집을 항상 지키고 영구히 변하지 않은 이후에야 장차 그 덕(德)됨을 믿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가 안연(顔淵)에게 일러 말하기를 “회(回)는 그 마음(心)이 세달동안 인(仁)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는 수일동안만 이르기도하고 한달동안만 이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그 나머지는 하루나 한 달동안 여기에 이를뿐이다.” 이 경(經)에서 말하기를 ‘중용(中庸)에서 고르지만 만 한 달동안 지킬 수 없다’라는 것은 이것의 이름이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아침부터 낮까지 하는 일이 그 밤의 기운을 묶어 멸망시킨다.” 또한 말하기를 “하루는 그것을 따뜻하게 하고 열흘은 그것을 식힌다.” 모두 일정함(常)이 없음을 경계한다. 『역(易)』에서 말하기를 “성인(聖人)은 그 도(道)에 오래 머무르면서 천하(天下)가 길러서 자라게 한다.” 『역(易)』에서 말하기를 “그 덕(德)을 늘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혹 그것을 받음이 부끄럽다.” 공자(孔子)가 남쪽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사람에 만약 변하지 않음이 없다면 무당(巫)과 의원(毉)이라고 여길수 없다.” 또한 말하기를 “변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 보면 좋겠구나.” 변하지 아니함이 없음을 경계하는 것을 어찌 모두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 고도(皐陶)의 구덕(九德)의 목록은 일정함(常)이 있는 것으로 맺었다.
<해설>
其餘日月至焉而已矣。의 원문 :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朝晝之所爲。梏亡其夜氣。의 원문 : 其旦晝之所爲。有梏亡之矣。
<원문>
〇堯命舜。舜命禹曰允執其中。而皐陶中庸之學。傳于周公。以至孔子。其在立政曰籲俊尊上帝。迪知忱詢于九德之行。則皐陶九德之說也。乃其用人之法。一則曰庶常吉士。二則曰其惟克用常人。歷言成湯文王皆由此法。則皐陶中庸之學。灼有傳授。聖聖相承。罔敢墜地。有如是者。欲知中庸之義者。盍於皐陶謨求之。洪範云沈潛剛克。高明柔克。亦中德也。
<직역>
요임금(堯)이 순임금(舜)에게 명하(命)고 순임금(舜)이 우임금(禹)에게 명하(命)여 말하기(曰)를 ‘진실로(允) 그(其) 중(中)을 잡(執)아라.’ 그리고(而) 고요(皐陶)의 중용(中庸)의(之) 학문(學)은 주공(周公)에서(于) 공자(孔子)까지(以至) 전한(傳)다. 그(其) 「입정(立政)」에 있(在)어 말하기(曰)를 ‘어진 사람을 구하는 일(籲俊)은 상제(上帝)를 높인(尊)다. 구덕(九德)의(之) 행함(行)으로(于) 따(迪)라 알(知)고 참으로(忱) 믿(詢)는다.’ 곧(則) 고요(皐陶)의 구덕(九德)의(之) 말씀(說)이다(也). 이에(乃) 그(其) 사람을 씀(用人)의(之) 법(法)에서 첫째(一) 법칙(則)이 말하기(曰)를 ‘뭇(庶) 일정한(常) 길사(吉士).’ 둘째(二) 법칙(則)이 말하기(曰)를 ‘그(其) 오직(惟) 능히(克) 일정한(常) 사람(人)을 쓴(用)다.’ 지난(歷) 말씀(言)에서 성탕(成湯)과 문왕(文王)은 모두(皆) 이(此) 법(法)을 말미암(由)는다. 곧(則) 고요(皐陶)의 중용(中庸)의(之) 학문(學)을 밝(灼)게 전수(傳授)함이 있(有)었다. 슬기롭게(聖聖) 이어 간(相承)다. 감히(敢) 땅(地)에 떨어짐(墜)이 없(罔)다. 이렇게(如是) 있(有)는 것(者)이다. 중용(中庸)의(之) 의미(義)를 알(知)고자 하(欲)는 사람(者)이 어찌(盍) 「고요모(皐陶謨)」에서(於) 그것(之)을 구하(求)지 않는가. [「홍범(洪範)」에서 이르기(云)를 ‘성정이 가라앉아 겉으로 드러나지 않(沈潛)다면 굳세(剛)게 해내(克)고 높(高)이 드러내(明)면 부드럽(柔)게 해낸(克)다.’ 또한(亦) 중(中)의 덕(德)이다(也)].
<해석>
요임금(堯)이 순임금(舜)에게 명하고 순임금(舜)이 우임금(禹)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아라.’ 그리고 고요(皐陶)의 중용(中庸)의 학문은 주공(周公)에서 공자(孔子)까지 전한다. 그 「입정(立政)」에서 말하기를 ‘어진 사람을 구하는 일은 상제(上帝)를 높인다. 구덕(九德)의 행함(行)으로 따라 알고 참으로 믿는다.’ 곧 고요(皐陶)의 구덕(九德)의 말씀이다. 이에 그 사람을 쓰는 법에서 첫째 법칙이 말하기를 ‘뭇 일정한(常) 길사(吉士).’ 둘째 법칙이 말하기를 ‘일정할(常) 수 있는 사람만을 쓴다.’ 지난 말씀에서 성탕(成湯)과 문왕(文王)은 모두 이 법을 말미암으니 곧 고요(皐陶)의 중용(中庸)의 학문을 밝게 전했고 슬기롭게 이어가니 감히 땅(地)에 떨어지지 않았으니 이렇게 있는 것이다. 중용(中庸)의 의미(義)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어찌 「고요모(皐陶謨)」에서 구하지 않는가. [「홍범(洪範)」에서 이르기를 ‘성정이 가라앉아 겉으로 드러나지 않다면 굳세게 해내고 높이 드러내면 부드럽게 해낸다.’ 또한 중(中)이라는 덕(德)이다.]
<원문>
箴曰小人其處心也或偏或倚。未發而不中其行事也或過或不及。已發而不和旣然如此。其秉德不能有常。此之謂反中庸。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소인(小人)의 그(其) 평소(處) 마음(心)은(也) 혹(或) 치우치(偏)고 혹(或) 기운(倚)다. [미발(未發)하면서(而) 중(中)이 아니(不)다.] 그(其)의 행사(行事)는(也) 혹(或) 지나치(過)고 혹(或) 미치(及)지 못한(不)다. [이발(已發)하면서(而) 화(和)가 아니(不)다.] 이미(旣然) 이렇게(如此) 그(其) 덕(德)을 잡음(秉)에 일정함(常)이 있(有)을 수 없(不能)다. 이것(此)의(之) 이름(謂)이 반중용(反中庸)이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소인(小人)의 그 평소 마음(心)은 치우치기도 하고 기울기도 한다. [쏘아지(發)지 않으면서 중(中)이 아니다.] 그의 행사(行事)는 지나치기도하고 미치지 못하기도 한다. [이미 쏘아지(發)면서 화(和)가 아니다.] 이미 이렇게 그 덕(德)을 잡음에 일정함(常)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을 반중용(反中庸)이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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