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箴曰所不睹者何也。天之體也。所不聞者何也。天之聲也。何以知其然也。經曰鬼神之爲德。其盛矣乎。視之而弗見。聽之而弗聞。體物而不可遺。使天下之人。齊明承祭。洋洋乎如在其上。如在其左右。見下章不睹不聞者。非天而何。民之生也。不能無慾。循其慾而充之。放辟邪侈。無不爲已。然民不敢顯然犯之者。以戒愼也以恐懼也。孰戒愼也。上有官執法也。孰恐懼也。上有君能誅殛之也。苟知其上無君長。其誰不爲放辟邪侈者乎。夫暗室欺心。爲邪思妄念。爲奸淫爲竊盜。厥明日正其衣冠。端坐修容。粹然無瑕君子也。官長莫之知。君王莫之察。終身行詐而不失 當世之美名。索性造惡而能受後世之宗仰者。天下蓋比比矣。聖人以空言垂法。使天下之人。無故戒愼。無故恐懼。豈迂且闇哉。人性原自樂善。使之戒愼。猶之可也。夫恐懼爲物。非無故而可得者也。師敎之而恐懼。是僞恐懼也。君令之而恐懼。是詐恐懼也。恐懼而可以詐僞得之乎。暮行墟墓者。不期恐而自恐。知其有魅魈也。夜行山林者。不期懼而自懼。知其有虎豹也。君子處暗室之中。戰戰栗栗。不敢爲惡。知其有上帝臨女也。今以命性道敎。悉歸之於一理。則理本無知。亦無威能。何所戒而愼之。何所恐而懼之乎。聖人所言。皆至眞至實。必不作矯僞體面之話。以自欺而欺人矣。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보이(睹)지 않(不)는 바(所)라는 것(者)은 무엇(何)인가(也). 하늘(天)의(之) 몸(體)이다(也). 들리(聞)지 않(不)는 바(所)라는 것(者)은 무엇(何)인가(也). 하늘(天)의(之) 음성(聲)이다(也). 어찌하여(何以) 그것(其)이 그러함(然)을 아(知)는가(也). 경(經)에서 말하기(曰)를 ‘귀신(鬼神)의(之) 덕(德)됨(爲)은 마땅히(其) 성하(盛)도다(矣乎). 그것(之)을 보(視)나(而) 보이(見)지 않(弗)고 그것(之)을 들(聽)으나(而) 들리(聞)지 않(弗)는다. 근본적(體)인 것(物)이니(而) 떨어질(遺) 수 없(不可)다. 천하(天下)의(之) 사람(人)으로 하여금(使) 재명(齊明)하고 제사(祭)를 받들게 한(承)다. 한없이 넓(洋洋)도다(乎). 그(其) 위(上)에 있(在)는 듯하(如)고 그(其) 좌우(左右)에 있(在)는 듯하(如)다.’ [아랫(下) 장(章)에 보인(見)다.] 보이(睹)지 않(不)고 들리(聞)지 않(不)는 것(者)은 하늘(天)이 아니(非)고(而) 무엇(何)인가. 백성(民)의(之) 삶(生)은(也) 욕심(慾)이 없(無)을 수 없(不能)다. 그(其) 욕심(慾)을 좇(循)으면서(而) 그것(之)을 채우(充)고 방벽사치(放辟邪侈)를 하(爲)지 않(不)을 수 없(無)을 뿐(已)이다. 그러나(然) 백성(民)이 현연(顯然)히 그것(之)을 범함(犯)을 불감(不敢)한다는 것(者)은 계신(戒愼)으로써(以)이고(也) 공구(恐懼)로써(以)이다(也). 누가(孰) 계신(戒愼)하는가(也). 위(上)에서 벼슬아치(官)가 집법(執法)함이 있(有)다(也). 누가(孰) 공구(恐懼)하는가(也). 위(上)에서 임금(君)이 능히(能) 그(之)를 베(誅)어 죽임(殛)이 있(有)다(也). 진실로(苟) 그(其) 위(上)에 군장(君長)이 없음(無)을 알(知)면 그(其) 누가(誰) 방벽사치(放辟邪侈)를 하(爲)지 않(不)는 사람(者)이겠는가(乎). 대저(夫) 암실(暗室)에서 기심(欺心)하면 사사망념(邪思妄念)을 하(爲)고 간음(奸淫)을 하(爲)고 절도(竊盜)한(爲)다. 그(厥) 내일(明日)에 그(其) 의관(衣冠)을 바로잡(正)고 단좌(端坐)하고 얼굴(容)을 닦(修)으니 수연(粹然)하고 무하(無瑕)한 군자(君子)이다(也). 관장(官長)이 그것(之)을 알(知)지 못하(莫)고 군왕(君王)이 그것(之)을 살피(察)지 못한(莫)다. 종신(終身) 행사(行詐)하면서(而) 당세(當世)의(之) 미명(美名)을 잃지 아니한(不失)다. 아예(索性) 조악(造惡)하면서(而) 능히(能) 후세(後世)의(之) 종앙(宗仰)을 받(受)는 사람(者)을 천하(天下)가 모두(蓋) 따라한(比比)다(矣). 성인(聖人)이 공언(空言)으로써(以) 형벌(法)을 내려(垂)서 천하(天下)의(之) 사람(人)으로 하여금(使) 아무런 까닭이 없(無故)이 계신(戒愼)하게하고 아무런 까닭 없(無故)이 공구(恐懼)하게하면 어찌(豈) 굽히(迂)고 또한(且) 숨(闇)겠는가(哉). 인성(人性)은 원래(原) 저절로(自) 낙선(樂善)한다. 그것(之)으로 하여금(使) 계신(戒愼)하면 마땅히(猶之) 옳(可)다(也). 대저(夫) 공구(恐懼)의 물(物)됨(爲)은 아무런 까닭이 없(無故)으면서(而) 가히(可) 얻(得)는 것(者)이 아니(非)다(也). 스승(師)이 그(之)를 가르치(敎)면서(而) 공구(恐懼)하면 이것(是)이 거짓(僞) 공구(恐懼)이다(也). 임금(君)이 그(之)에게 명령하(令)면서(而) 공구(恐懼)하면 이것(是)이 거짓(詐) 공구(恐懼)이다(也). 공구(恐懼)하면서(而) 사위(詐僞)하면 그것(之)을 얻(得)을 수 있(可以)는가(乎). 저물녘(暮)에 허묘(墟墓)를 다니(行)는 사람(者)은 두려워하기(恐)로 약속하지 않(不期)았으나(而) 스스로(自) 두려워한(恐)다. 그곳(其)에 홀리(魅)는 도깨비(魈)가 있(有)다고 안(知)다(也). 산림(山林)을 야행(夜行)하는 사람(者)은 조심하기(懼)를 약속하지 않(不期)았으나(而) 스스로(自) 조심한(懼)다. 그곳(其)에 호표(虎豹)가 있(有)다고 안(知)다(也). 군자(君子)는 암실(暗室)의(之) 안(中)에 거주하(處)지만 전전율율(戰戰栗栗)하여 악(惡)을 함(爲)을 불감(不敢)한다. 그곳(其)에 상제(上帝)가 너(女)에게 임함(臨)이 있(有)다고 안(知)다(也). 지금(今) 명(命)과 성(性)과 도(道)와 교(敎)로써(以) 모두(悉) 하나(一)의 이(理)에(於) 그것(之)을 모으(歸)면 곧(則) 이(理)는 원래(本) 앎(知)이 없(無)고 또한(亦) 위엄(威)의 능력(能)이 없(無)다. 어찌(何) 경계하(戒)는 바(所)로서(而) 그것(之)을 삼가(愼)고 어찌(何) 조심하(恐)는 바(所)로서(而) 그것(之)을 두려워하(懼)겠는가(乎). 성인(聖人)이 말하(言)는 바(所)는 모두(皆) 지극히(至) 바르(眞)고 지극히(至) 참되(實)니 반드시(必) 교위(矯僞)함과 체면(體面)함의(之) 말씀(話)을 짓(作)고 그것으로써(以) 자기(自欺)하면서(而) 기인(欺人)하지 않(不)는다(矣).
<해석>
경계해 말한다. 보이지 않는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늘(天)의 몸(體)이다. 들리지 않는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늘(天)의 음성(聲)이다. 어찌하여 그러하다고 아는가. 경(經)에서 말하기를 '귀신(鬼神)의 덕(德)됨은 마땅히 성하도다. 그것을 보나 보이지 않고 그것을 들으나 들리지 않는다. 근본적(體)인 것(物)이니 떨어질 수 없다. 천하(天下)의 사람으로 하여금 심신을 깨끗하게 하고 제사를 받들게 한다. 한없이 넓도다. 그 위에 있는 듯하고 그 좌우에 있는 듯하다.' [아랫 장(章)에 보인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은 하늘(天)이 아니고 무엇인가. 백성의 삶은 욕심이 없을 수 없다. 그 욕심을 좇아 그것을 채우고 아무 꺼림 없이 제멋대로 마구 놀지 않을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백성이 감히 뚜렷이 그것을 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계신(戒愼)과 공구(恐懼)로 한다는 것이다. 누가 계신(戒愼)하는가. 위에서 벼슬아치가 법령을 굳게 지킨다. 누가 공구(恐懼)하는가. 위에서 임금이 그를 베어 죽일 수 있다. 진실로 그 위에 임금이 없음을 알면 그 누가 아무 꺼림 없이 제멋대로 마구 놀지 않겠는가. 대저 암실(暗室)에서 자기의 양심을 속이면 그릇된 생각을 하고 간음하고 절도한다. 다음날에 그 의관을 바로잡고 단정하게 앉고 얼굴을 닦으니 순박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군자(君子)이다. 윗사람이 그것을 알 수 없고 군왕(君王)이 그것을 살필 수 없다. 죽을 때까지 거짓을 행하면서 당세의 미명(美名)을 잃지 않는다. 아예 나쁜 일을 하면서 후세의 우러러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천하(天下)가 모두 따라한다. 성인(聖人)이 빈 말로 형벌을 내려서 천하(天下)의 사람으로 하여금 아무런 까닭이 없이 계신(戒愼)하게하고 아무런 까닭 없이 공구(恐懼)하게하면 어찌 굽히고 또한 숨겠는가. 인성(人性)은 원래 저절로 선(善)을 즐기니 그것으로 계신(戒愼)하면 마땅히 옳다. 대저 공구(恐懼)의 특성은 아무런 까닭이 없으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승이 그를 가르치면서 공구(恐懼)하면 이것이 거짓 공구(恐懼)이다. 임금이 그에게 명령하면서 공구(恐懼)하면 이것이 거짓 공구(恐懼)이다. 공구(恐懼)하면서 거짓을 꾸미면 그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저물녘에 폐허가 된 무덤을 다니는 사람은 두려워할 생각이 없었으나 스스로 두려워한다. 그곳에 홀리는 도깨비가 있다고 알기 때문이다. 산림(山林)을 밤에 다니는 사람은 조심히 할 생각이 없었으나 스스로 두려워한다. 그곳에 범과 표범이 있다고 알기 때문이다. 군자(君子)는 후미진 곳에 거주하지만 매우 두려워하고 떨어서 악(惡)을 감히 하지 못한다. 그곳에 상제(上帝)가 너에게 임한다고 알기 때문이다. 지금 명(命)과 성(性)과 도(道)와 교(敎)로 모두 하나의 이(理)에 모으니 곧 이(理)는 원래 앎이 없고 또한 위엄의 능력이 없으니 어찌 경계하는 바로서 그것을 삼가고 어찌 조심하는 바로서 그것을 두려워하겠는가. 성인(聖人)이 말하는 바는 모두 지극히 바르고 지극히 참되니 반드시 속여 꾸미고 체면차리는 말씀을 지어서 스스로 속이면서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원문>
〇道心與天命。不可分作兩段看。天之儆告我者。不以雷不以風。密密從自己心上丁寧告戒。假如一刻驀有傷人害物之志。萌動出來時。覺得一邊有溫言以止之者曰咎皆由汝。何可怨彼。汝若釋然。豈非汝德。丁寧諦聽。無所熹微。須知此言。乃是赫赫之天命。循而順之則爲善爲祥。慢而違之則爲惡爲殃。君子之戒愼恐懼。亶在此也。
<직역>
도심(道心)과(與) 천명(天命)은 두(兩) 부분(段看)으로 나눠(分)짐(作)이 불가(不可)하다. 하늘(天)의(之) 나(我)에게 경계하(儆)여 고하(告)는 것(者)은 천둥(雷)으로써(以)가 아니(不)고 바람(風)으로써(以)가 아니(不)다. 밀밀(密密)하게 자기(自己)의 심상(心上)에서 정녕(丁寧)히 고계(告戒)함을 좇(從)는다. 만약(假如) 일각(一刻)동안 갑자기(驀) 상인해물(傷人害物)의(之) 뜻(志)에 맹동(萌動)하여 출래(出來)하는 때(時)가 있(有)다면 각득(覺得)한 일변(一邊)에 온언(溫言) 그것으로써(以) 그것(之)을 말리(止)는 것(者)이 있(有)다. 말하기(曰)를 ‘허물(咎)은 모두(皆) 너(汝)를 말미암(由)는다. 어찌(何) 가히(可) 그(彼)를 원망하(怨)겠는가. 네(汝)가 만약(若) 석연(釋然)하면 어찌(豈) 네(汝) 덕(德)이 아닌(非)가.’ 정녕(丁寧) 체청(諦聽)하면 희미(熹微)한 바(所)가 없(無)다. 이(此) 말씀(言)을 수지(須知)한다. 원래(乃是) 혁혁(赫赫)의(之) 천명(天命)이다. 그것(之)을 좇(循)으면서(而) 따르(順)면 곧(則) 선(善)을 하(爲)고 상서로움(祥)이 된(爲)다. 그것(之)을 업신여기(慢)면서(而) 어기(違)면 곧(則) 악(惡)을 하(爲)고 재앙(殃)이 된(爲)다. 군자(君子)의(之) 계신(戒愼)과 공구(恐懼)는 오로지(亶) 이(此)에 있(在)다(也).
<해석>
도심(道心)과 천명(天命)은 두 부분으로 나눠질 수 없다. 하늘(天)의 나에게 경계하여 고하는 것은 천둥으로써도 아니고 바람으로써도 아니다. 빈틈없이 자기의 마음속에서 친절히 타일러 훈계하는 것을 좇는다. 만약 잠깐이라도 갑자기 사람을 해치고 물건에 손해를 끼칠 뜻에 싹이 터서 밖으로 나오려는 때가 있다면 깨달아 얻은 한 쪽에서 온화한 말씨로 그것을 말리는 것이 있다. 말하기를 ‘허물은 모두 너에게서 말미암는다. 어찌 그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네가 만약 마음이 환하게 풀리면 어찌 네 덕(德)이 아닌가.’ 틀림없이 주의하여 자세히 들으면 희미한 바가 없다. 이 말씀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원래의 빛나는 천명(天命)을 좇으면서 따르면 곧 선(善)을 하고 상서롭게되고 업신여기면서 어기면 곧 악(惡)을 하고 재앙이 된다. 군자(君子)의 계신(戒愼)과 공구(恐懼)는 오로지 이에 있다.
<원문>
〇天命不但於賦生之初。畀以此性。原來無形之體妙用之神。以類相入。與之相感也。故天之儆告。亦不由有形之耳目。而每從無形。妙用之道心。誘之誨之。此所謂天誘其衷也。順其誘而從之。奉天命者也。慢其誘而違之。逆天命者也。曷不戒愼。曷不恐懼。
<직역>
삶(生)의(之) 처음(初)을 받음(賦)에서(於) 천명(天命)은 이(此) 성(性)으로써(以) 줄(畀) 뿐만 아니라(不但) 원래(原來)의 무형(無形)의(之) 체(體)와 묘용(妙用)의(之) 신(神)이 동종(類)으로써(以) 상입(相入)한다. 그것(之)과(與) 서로(相) 느낀(感)다(也). 그러므로(故) 하늘(天)의(之) 경계하(儆)고 고함(告)은 또한(亦) 유형(有形)의(之) 이목(耳目)을 불유(不由)한다. 그리고(而) 늘(每) 무형(無形)을 좇(從)는다. 묘용(妙用)의(之) 도심(道心)은 그(之)를 꾀(誘)고 그(之)를 가르친(誨)다. 이것(此)이 소위(所謂) ‘하늘(天)이 그(其) 충(衷)을 꾄(誘)다(也).’ 그(其) 꾐(誘)을 따르(順)면서(而) 그것(之)을 좇(從)으면 천명(天命)을 받드(奉)는 것(者)이다(也). 그(其) 꾐(誘)을 업신여기(慢)면서(而) 그것(之)을 어기(違)면 천명(天命)을 거스른(逆)다는 것(者)이다(也). 어찌(曷) 계신(戒愼)하지 않(不)고 어찌(曷) 공구(恐懼)하지 않(不)겠는가.
<해석>
태어났을 때 천명(天命)은 이 성(性)으로써 줄 뿐만 아니라 전부터 있던 모양(形)이 없는 체(體)와 묘용(妙用)의 신(神)은 같은 것끼리 서로 융합하고 그것과 서로 느낀다. 그러므로 하늘(天)의 경계하고 고하는 것은 또한 모양(形)이 있는 귀와 눈(耳目)에 복종하지 않는다. 그리고 늘 무형(無形)을 좇는다. 묘하게 작용하는 도심(道心)은 그를 꾀고 가르친다. 이것이 소위(所謂) ‘하늘(天)이 그 속마음을 꾄다.’ 그 꾐을 따르면서 좇으면 천명(天命)을 받드는 것이고 그 꾐을 업신여기면서 어기면 천명(天命)을 거스른다는 것이다. 어찌 계신(戒愼)하지 않고 어찌 공구(恐懼)하지 않겠는가.
<원문>
〇天之靈明。直通人心。無隱不察。無微不燭。照臨此室。日監在玆。人苟知此。雖有大膽者。不能不戒愼恐懼矣。
<직역>
하늘(天)의(之) 영명(靈明)은 사람(人)의 마음(心)을 직통(直通)한다. 은(隱)도 살피(察)지 않음(不)이 없(無)고 미(微)도 비추(燭)지 않음(不)이 없(無)다. 이(此) 집(室)을 조림(照臨)한다. 해(日)의 살핌(監)이 여기(玆)에 있(在)다. 사람(人)은 진실로(苟) 이(此)를 안(知)다. 비록(雖) 대담(大膽)이 있(有)는 사람(者)이라도 계신(戒愼)과 공구(恐懼)하지 않음(不)이 불능(不能)하다(矣).
<해석>
하늘(天)의 영명(靈明)은 사람의 마음(心)을 바로 통한다. 희미한 것(隱)도 살피지 않음이 없고 자세한 것(微)도 비추지 않음이 없다. 이집을 내리 비치니 해의 살핌이 여기에 있다. 사람은 진실로 이를 안다. 비록 대담한 사람이라도 계신(戒愼)과 공구(恐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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