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7일 월요일

동양철학 아마추어 입문해보기 0 - 들어가며

 

이번에는 시리즈로 '동양철학 아마추어 입문해보기'를 진행해보고자 합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안하고 마는' 분들을 위한 작고 가벼운 이야기 정도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만큼 반박이나 지적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동양철학 '아마추어'가 '아마추어 입문자'에게 드리는 팁 정도로 받아들여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동양철학과 관련된 블로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해를 하실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 짚고 넘어가자면,

누군가 제게 전문성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시면 단호하게

"없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저는 동양철학 관련 학과를 나오지도 않았고 관련된 교육도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그저 대학생 시절에 동양철학 강의를 듣고 흥미를 느껴서 이후로도 계속 조금씩 즐겨 온 '아마추어'이지요.

단지 흥미에 따라, 취미로써, 즐겁게 해왔을 뿐입니다.

뭐, 그렇기 때문에 아마추어(NAVER 국어사전 : 예술이나 스포츠, 기술 따위를 취미로 삼아 즐겨 하는 사람)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전혀 진지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신다면 그에 대해서도

"그건 아닙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취미이기에 다른 압박 없이 나름 궁금했던 부분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 시리즈의 타겟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동양철학에 대해 궁금하긴 하지만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생각까지는 크게 없으신 분들입니다.

저도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조금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래는 전문적인 교육기관에 대해 고민하긴 했으나 여러 개인사로 진학하지 않았습니다...)


잡소리가 좀 많이 길어진 것 같습니다만...

이번

"동양철학 아마추어 입문해보기"

는 동양철학을 흥미로 입문하고 싶으신 분들을 도와드리기 위해 가볍게 내용을 전달해드릴 예정입니다.

읽는 분들께 도움이 되셨음 좋겠고 되도록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ㅎㅎ



어느 새 상서고훈 번역 마지막 권이 출시됐네요.

​예전에 한 번 확인했을 때는 좀 더 걸리겠거니 했는데 상서고훈도 번역이 끝났군요...


8월 달에 마지막 권(5권)이 출시됐다면 벌써 2달이나 지났네요...

 

아니, 그래도 조선시대 명망높은 학자의 책인데 번역된지 2달 밖에 안 지난 걸 수도... 있겠죠...

 

​

 

다산학 관련 도서는 절판되는 경우가 은근 많아서 (시경강의도... 지금은 못 구하죠...ㅠㅠ) 흥미가 있으신 분은 미리 구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 합니다.

 

참고로 전 주역사전과 매씨서평도 미리 사놨습니다. 지금 당장 공부한다기 보다는 절판이 걱정되서요. 얼른 공부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언젠가 완성 될(지 아닐지 모르는) 주역사전 사이트

일단 이 글은 구상중인 것을 기록하기 위해 올려보는 것입니다만...

실제로는 언제 완성할지, 애초에 완성을 할지는 불투명합니다.

주역사전의 내용을 좀 더 보기 쉽게 웹으로 구현하는 것이 목표기는 한데

제가 이 주역 분야를 완전히 모르기도 하고 참고할만한 자료도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순수한 취미 영역인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주역사전의 한글 번역본이 교보문고에 한 권 있는 걸로는 아는데...

한자도 많고 내용도 어려워서 고민이 많습니다.

 

https://ching.oursophy.com

 

태극은... 그냥 간지나게 넣어봤습니다.




상괘와 하괘 부분을 누를 수는 있는데 태극이 있는 상황에서는 안되고 시작 버튼을 눌러야 시작합니다.




시작 버튼을 누르면 64괘 중 건괘가 나옵니다.



이 상황에서 상괘와 하괘를 선택하면 아래에 있는 가장 큰 괘가 변합니다.




일단 다음은 초록상자 부분에 상괘와 하괘의 의미를 넣을 생각입니다.


누군가 한 번 보신다면 의견을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혹시 이 분야(주역사전)를 좀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도움도 받고 싶네요...


설괘방위표(說卦方位表)

주역사전(周易四箋)에 나와있는 설괘물상표에 나와있는 방위표입니다.






출처 :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97A_0650_020_0030&solrQ=query%E2%80%A0%EC%84%A4%EA%B4%98%EB%AC%BC%EC%83%81%ED%91%9C$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MO_AA$solr_toalCount%E2%80%A01$solr_curPos%E2%80%A00$solr_solrId%E2%80%A0GS_ITKC_MO_0597A_0650_020_0030


震괘는 동쪽, 离괘는 남쪽, 兌괘는 서쪽, 坎쪽은 북쪽을 의미합니다.

근데 자세히 보시면 원본의 방위표는 저희가 평소에 보는 방위랑 비교해 180도 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180도 돌려서 만든 그림입니다.

이러면 좀 더 보기 편하시려나요?

사실 제가 보다가 조금 어려워서 만들었습니다.

만들다보니 괘도 익숙하지 않아서 음도 같이 적게 되더군요. ㅎㅎ;;


중용자잠 59-自箴 (끝)

<원문>

箴曰此節有二義。其一以上天之無聲無臭。明君子之所以化民。不在聲色。而在乎至誠也。其一以上天之無聲無臭。明天道隱微。非目之所能睹。非耳之所能聞。惟其戒愼恐懼。如在其上。如在其左右。故曰至矣。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이(此) 절(節)에 두(二) 의미(義)가 있(有)다. 그(其) 하나(一)는 상천(上天)의(之)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음(無聲無臭)으로써(以) 군자(君子)의(之) 백성(民)을 가르치(化)는 방법(所以)을 밝힌(明)다. 목소리(聲)와 기색(色)에 있(在)지 않(不)고(而) 지극한(至) 성(誠)에(乎) 있(在)다(也). 그(其) 하나(一)는 상천(上天)의(之)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음(無聲無臭)으로써(以) 하늘(天)의 도(道)의 은미(隱微)함을 밝힌(明)다. 눈(目)의(之) 볼(睹) 수 있(能)는 바(所)가 아니(非)다. 귀(耳)의(之) 들(聞)을 수 있(能)는 바(所)가 아니(非)다. 오직(惟) 그(其) 계신(戒愼)과 공구(恐懼)이다. 그(其) 위(上)에 있(在)는 듯하(如)다. 그(其) 좌우(左右)에 있(在)는 듯하(如)다. 그러므로(故) 말하기(曰)를 ‘지극하(至)도다(矣).’


<해석>

경계해 말한다. 이 절(節)에 두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상천(上天)의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음으로 군자(君子)가 백성(民)을 가르치는 방법을 밝힌다. 목소리(聲)와 기색(色)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한 정성(誠)에 있다. 그 하나는 상천(上天)의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음으로 하늘(天)의 도(道)의 희미하(隱)고 자세함(微)을 밝힌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신(戒愼)하고 공구(恐懼)할 뿐이다. 그 위에 있는 듯하고 그 좌우(左右)에 있는 듯하므로 ‘지극하도다’라 말한다.




<원문>

〇倫者。序也理也。如脈理腠理之理毛雖至微。獨是有形之物。故能有倫理次序。可以指數。若上天之載。都無形質。竝無聲臭。其微極矣。聲臭空於形質。故極言無形。而至謂之無聲無臭。


<직역>

윤(倫)이라는 것(者)은 차례(序)이다(也). 이치(理)이다(也). [글의 이치(脈理)나 결합 조직(腠理)의(之) 이(理)와 같(如)다.] 터럭(毛)이 비록(雖) 지극히(至) 작(微)아도 다만(獨) 이것(是)은 형태(形)가 있음(有)의(之) 물(物)이다. 그러므로(故) 윤리(倫理)와 차례(次序)가 있(有)을 수 있(能)다. 가리켜(指) 헤아릴(數) 수 있(可以)다. 상천(上天)의(之) 일(載)은 모두(都) 모양과 성질(形質)이 없(無)고 모두(竝) 소리(聲)와 냄새(臭)가 없(無)어 그(其) 작음(微)이 지극함(極)과 같(若)다(矣). 소리(聲)와 냄새(臭)는 모양과 성질(形質)에(於) 없(空)다. 그러므로(故) 형태(形)가 없(無)다고 간하여 말한(極言)다. 그리고(而) 지극함(至) 그것(之)을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음(無聲無臭)이라 이른(謂)다.


<해석>

윤(倫)이라는 것은 차례이고 이치이다. [글의 이치(脈理)나 결합 조직(腠理)의 이(理)와 같다.] 터럭이 비록 지극히 작아도 다만 이것은 형태(形)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倫理)와 차례(次序)가 있을 수 있고 가리켜 헤아릴 수 있다. 상천(上天)의 일(載)은 모두 모양과 성질이 없고 모두 소리와 냄새가 없어 지극히 작은 것과 같다. 소리와 냄새는 모양과 성질에 없다. 그러므로 형태(形)가 없다고 간하여 말한다. 그리고 지극함(至)을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음이라 이른다.




<원문>

漢書揚雄傳引詩曰上天之縡。顔師古曰縡事也。讀與載同。又說文新附字云縡事也。余謂縡者宰也。宰制萬物。故謂之上天之縡。


<직역>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이 시(詩)를 인용하(引)여 말하기(曰)를 “상천(上天)의(之) 일(縡).”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曰)를 “재(縡)는 일(事)이다(也).” 독(讀)과(與) 재(載)는 같(同)다. 또한(又) 『설문(說文)』의 새로(新) 붙(附)은 글자(字)에서 이르기(云)를 “재(縡)는 일(事)이다(也).” 내(余)가 이르기(謂)를 “재(縡)라는 것(者)은 일(宰)이다(也). 모든 것(萬物)을 재제(宰制)한다. 그러므로(故) 그것(之)을 상천(上天)의(之) 일(縡)이라 이른(謂)다.”


<해석>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이 시(詩)를 인용하여 말하기를 “상천(上天)의 일(縡).”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재(縡)는 일이다.” 독(讀)과 재(載)는 같다. 또한 『설문(說文)』의 새로 붙은 글자에서 이르기를 “재(縡)는 일이다.” 내가 이르기를 “재(縡)라는 것은 일이다.” 모든 것(萬物)을 처리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상천(上天)의 일(縡)이라 이른다.”

중용자잠 59-詩云。德輶如毛。

<원문>

詩云。德輶如毛。

毛猶有倫。

上天之載。無聲無臭。

至矣。

시운。덕유여모。

모유유륜。

상천지재。무성무취。

지의。


<직역>

『시(詩)』에서 이르기(云)를 “덕(德)의 가벼움(輶)이 터럭(毛)과 같(如)다.”

터럭(毛)도 오히려(猶) 순서(倫)가 있(有)다.

“상천(上天)의(之) 일(載)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無聲無臭)다.”

지극하(至)도다(矣).


<해석>

『시(詩)』에서 이르기를 “덕(德)의 가벼움이 터럭과 같다.”

터럭도 오히려 구분할 수 있다.

“상천(上天)의 일(載)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지극하도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不若烝民之詩所言德輶如毛。則庶乎可以形容矣。而又自以爲謂之毛。則猶有可比者。是亦未盡其妙。不若文王之詩所言上天之載無聲無臭。然後乃爲不顯之至耳。

蓋聲臭。有氣無形。在物。最爲微妙。而猶曰無之。故惟此可以形容不顯篤恭之妙。非此德之外。又別有是三等。然後爲至也。

右。第三十三章。子思因前章極致之言。反求其本。復自下學爲己謹獨之事。推而言之。以馴致乎篤恭而天下平之盛。又贊其妙。至於無聲無臭而後已焉。蓋擧一篇之要而約言之。其反復丁寧示人之意。至深切矣。學者其可不盡心乎。

「증민(烝民)」의(之) 시(詩)에서 말한(言) 바(所)는 ‘덕(德)의 가벼움(輶)이 터럭(毛)과 같(如)다’만 못하(不若)니 곧(則) 묘사할(形容) 수 있음(可以)에(乎) 가깝(庶)다(矣). 그리고(而) 또한(又) 스스로(自) 그것(之)을 터럭(毛)이라 이르(謂)니 곧(則) 오히려(猶) 비교할(比) 수 있(可)는 것(者)이 있(有)으니 이것(是) 또한(亦) 그(其) 묘함(妙)을 다하(盡)지 못한(未)다고 여긴(以爲)다. 「문왕(文王)」의(之) 시(詩)에서 말한(言) 바(所)의 ‘상천(上天)의(之) 일(載)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無聲無臭)다’만 못하(不若)니 그러한 뒤(然後)에 비로소(乃) 드러나(顯)지 않음(不)의(之) 지극함(至)으로 삼(爲)을따름이다(耳).

대개(蓋) 소리(聲)와 냄새(臭)는 기(氣)는 있(有)는데 모양(形)이 없(無)어 물(物)에 있(在)는 가장(最) 섬세하고 묘함(微妙)으로 삼(爲)으나(而) 오히려(猶) 그것(之)이 없(無)다고 말했(曰)다. 그러므로(故) 오직(惟) 이것(此)이 드러나(顯)지 않(不)고 공손(恭)을 두터이 함(篤)의(之) 묘함(妙)을 묘사할(形容) 수 있(可以)으니 이(此) 덕(德)의(之) 바깥(外)에 또한(又) 따로(別) 이(是) 세(三) 등급(等)이 있(有)고 그러한 뒤(然後)에 지극함(至)이 됨(爲)은 아니(非)다(也).

오른쪽(右)은 제(第) 삼십삼(三十三) 장(章)이다. 자사(子思)는 앞(前) 장(章)의 극단(極致)의(之) 말씀(言)을 말미암(因)아 그(其) 근본(本)을 자기에게서 찾(反求)고 다시(復) 스스로(自) 하학(下學)을 자기(己)의 홀로(獨)에도 삼감(謹)의(之) 일(事)로 하(爲)고 미루(推)어(而) 그것(之)을 말하(言)여 그것으로써(以) 공손(恭)을 두터이 하(篤)여(而) 천하(天下)가 평안해짐(平)의(之) 대단함(盛)에(乎) 이르게 하(馴致)고 또한(又) 그(其) 묘함(妙)을 기려(贊)서 소리(聲)가 없(無)고 냄새(臭)도 없음(無)에(於) 이른(至) 이후(而後)에야 그쳤(已)다(焉). 모두(蓋) 책의 일부(一篇)의(之) 요점(要)을 들(擧)어(而) 그것(之)을 줄여(約) 말했(言)다. 그(其) 되풀이하(反復)고 간곡하게(丁寧) 사람들(人)에게 보여줌(示)의(之) 뜻(意)이 지극히(至) 깊(深)고 적절하(切)니(矣) 배우(學)는 자(者)가 어찌(其) 마음(心)을 다하(盡)지 않(不)을 수 있(可)겠는가(乎).

중용자잠 58-自箴

<원문>

箴曰文王不大聲以色。惟小心昭事。使民懷德。此愼獨以化育也。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문왕(文王)은 소리(聲)와(以) 기색(色)을 크게 하(大)지 않(不)는다. 오직(惟) 조심히(小心) 밝게 하늘을 섬긴(昭事)다. 백성(民)으로 하여금(使) 덕(德)을 품(懷)게 한다. 이것(此)이 신독(愼獨) 그것으로써(以) 화육(化育)함이다(也).


<해석>

경계해 말한다. 문왕(文王)은 소리(聲)와 기색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조심히 밝게 하늘을 섬기고 백성으로 하여금 덕(德)을 품게 할 뿐이다. 이것이 신독(愼獨)으로 만들어 기르(化育)는 것이다.




<원문>

〇天道不言。而文王不大聲。天道不動。而文王不以色。不動不言。則不覩不聞也。聖人事天以誠。則民亦事君以誠。皆一理也。


<직역>

하늘(天)의 도(道)가 말을 하지 않(不言)는다. 그리고(而) 문왕(文王)은 소리(聲)를 크게 하(大)지 않(不)는다. 하늘(天)의 도(道)가 움직이지 아니한(不動)다. 그리고(而) 문왕(文王)은 기색(色)으로 하(以)지 않(不)는다. 움직이지 아니하(不動)고 말을 하지 않(不言)으니 곧(則) 보이(覩)지 않(不)고 들리(聞)지 않음(不)이다(也). 성인(聖人)이 성(誠)으로써(以) 하늘(天)을 섬김(事) 성하면 곧(則) 백성(民) 또한(亦) 성(誠)으로써(以) 임금(君)을 섬긴(事)다. 모두(皆) 하나(一)의 이치(理)이다(也).


<해석>

하늘(天)의 도(道)가 말을 하지 않듯 문왕(文王)은 소리를 크게 하지 않는다. 하늘(天)의 도(道)가 움직이지 아니하듯 문왕(文王)은 기색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고 말을 하지 않으니 곧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음이다. 성인(聖人)이 정성(誠)으로 하늘(天)을 섬기면 곧 백성(民)도 임금을 정성(誠)으로 임금을 섬긴다. 모두 하나의 이치이다.

중용자잠 58-詩云。予懷明德。不大聲以色。

<원문>

詩云。予懷明德。不大聲以色。

子曰。聲色之於以化民。末也。

시운。여회명덕。부대성이색。

자왈。성색지어이화민。말야。


<직역>

『시(詩)』에서 이르기(云)를 “나(予)는 밝(明)은 덕(德)을 품(懷)는다. 소리(聲)와(以) 기색(色)을 크게 하(大)지 않(不)는다.”

선생님(子)이 말씀하시기(曰)를 “목소리와 얼굴빛(聲色)의(之) 기댐(於) 그것으로써(以) 백성(民)을 가르침(化)은 하위(末)이다(也).


<해석>

『시(詩)』에서 이르기를 “나는 밝은 덕(德)을 품고 소리와 기색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목소리와 얼굴빛에 기대서 백성을 가르치는 것은 하위의 것이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詩。大雅皇矣之篇。引之。以明上文所謂不顯之德者。正以其不大聲與色也。又引孔子之言。以爲聲色。乃化民之末務。今但言不大之而已。則猶有聲色者存。是未足以形容不顯之妙。

시(詩)는 「대아(大雅) 황의(皇矣)」의(之) 편(篇)이다. 그것(之)을 인용하(引)여 그것으로써(以) 윗(上) 글(文)에서 이른바(所謂) 드러나(顯)지 않음(不)의(之) 덕(德)이라는 것(者)은 바로(正) 그것으로써(以) 그(其) 소리(聲)와(與) 기색(色)을 대단하게 여기(大)지 않음(不)을 밝혔(明)다(也). 또한(又) 공자(孔子)의(之) 말씀(言)을 인용하(引)여 소리(聲)와 기색(色)은 곧(乃) 백성(民)을 교화함(化)의(之) 하찮은 일(末務)이라 여긴(以爲)다. 지금(今) 단지(但) 그것(之)을 대단하게 여기(大)지 않음(不)이라 말했(言)을뿐(而已)이라면 곧(則) 오히려(猶) 소리(聲)와 기색(色)이라는 것(者)이 있음(存)이 있(有)으니 이것(是)은 드러나(顯)지 않음(不)의(之) 묘함(妙)을 묘사하기(形容)에 충분하(足以)지 않(未)다. 


『중용장구(中庸章句)』는 원래 아래와 붙어 있는데 임의로 쪼갰다.

중용자잠 57-自箴

<원문>

箴曰不顯者。誠也愼獨也。義與上節同。天道不顯而君子戒愼。故君德不顯。而百辟儀刑。亦天人感應之妙。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드러나(顯)지 않(不)는다’라는 것(者)은 성(誠)이다(也). 신독(愼獨)이다(也). 의미(義)가 윗(上) 절(節)과(與) 같(同)다. 하늘(天)의 도(道)가 드러나(顯)지 않(不)아도(而) 군자(君子)는 계신(戒愼)한다. 그러므로(故) 임금(君)의 덕(德)은 드러나(顯)지 않(不)아도(而) 여러 제후(百辟)의 본보기(儀刑)이다. 또한(亦) 하늘(天)과 사람(人)의 감응(感應)의(之) 묘함(妙)이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드러나지 않는다’라는 것은 정성(誠)이고 신독(愼獨)이다. 의미가 윗 절(節)과 같다. 하늘(天)이 도(道)가 드러나지 않아도 군자(君子)는 계신(戒愼)한다. 그러므로 임금의 덕(德)은 드러나지 않아도 여러 제후의 본보기이다. 또한 하늘(天)과 사람(人)이 반응하는 것의 정교함이다.

중용자잠 57-詩曰。不顯惟德。百辟其刑之。

<원문>

詩曰。不顯惟德。百辟其刑之。

是故。君子篤恭而天下平。

시왈。불현유덕。백벽기형지。

시고。군자독공이천하평。


<직역>

『시(詩)』에서 말하기(曰)를 “드러나(顯)지 않(不)은 이(惟) 덕(德)을 여러 제후들(百辟)이 마땅히(其) 그것(之)을 본받(刑)으리라.”

그러므로(是故) 군자(君子)는 공손(恭)을 두터이 하(篤)면서(而) 천하(天下)를 평정한(平)다.


<해석>

『시(詩)』에서 말하기를 “드러나지 않은 이 덕(德)을 여러 제후들이 마땅히 본받으리라.”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공손을 두터이 하면서 천하(天下)를 평정한(平)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詩。周頌烈文之篇。不顯。說見二十六章。此。借引以爲幽深玄遠之意。承上文。言天子有不顯之德。而諸侯法之。則其德愈深而效愈遠矣。篤。厚也。篤恭。言不顯其敬也。篤恭而天下平。乃聖人至德淵微自然之應。中庸之極功也。

시(詩)는 「주송(周頌) 열문(烈文)」의(之) 편(篇)이다. 불현(不顯)은 해설(說)이 이십육(二十六) 장(章)에 보이(見)니 여기(此)에서 빌려(借) 인용하(引)여 그것으로써(以) 깊숙하고 그윽하(幽深)면서 깊숙하고 멂(玄遠)의(之) 뜻(意)으로 삼(爲)았다. 윗(上) 글(文)을 연결하(承)여 천자(天子)가 드러나(顯)지 않음(不)의(之) 덕(德)이 있(有)어(而) 제후(諸侯)가 그것(之)을 따르(法)면 곧(則) 그(其) 덕(德)이 더욱(愈) 깊(深)어(而) 공로(效)가 더욱(愈) 멂(遠)을 말한(言)다(矣). 독(篤)은 두터움(厚)이다(也). 독공(篤恭)은 그(其) 공경(敬)이 드러나(顯)지 않음(不)을 말한(言)다(也). 공경(恭)을 두터이 해(篤)서(而) 천하(天下)가 평안해짐(平)은 곧(乃) 성인(聖人)의 지극한(至) 덕(德)이 깊(淵)고 작(微)고 스스로 그러함(自然)의(之) 반응함(應)이니 중용(中庸)의(之) 지극한(極) 공로(功)이다(也).

중용자잠 56-自箴

<원문>

箴曰奏詩作鬷。毛傳曰鬷者總也。輻輳流湊。字皆從奏。奏亦總也。奏假無言者。謂萬民總格于無言之化也。七引詩。上三自修也。下三民化也。末一天載也。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주(奏)는 『시(詩)』에서 모임(鬷)으로 한(作)다. 『모전(毛傳)』에서 말하기(曰)를 “종(鬷)이라는 것(者)은 모임(總)이다(也). 부(輻)와 주(輳)와 류(流)와 주(湊)라는 글자(字)는 모두(皆) 주(奏)를 따른(從)다. 주(奏) 또한(亦) 모임(總)이다(也).” ‘모여(奏) 이르(假)니 말(言)이 없(無)다’는 것(者)은 모든 백성(萬民)이 말(言)이 없음(無)의(之) 교화(化)에(于) 모여(總) 오게 함(格)이라 이른(謂)다(也). 시(詩)를 일곱 번(七) 인용하(引)니 위(上) 세 번(三)은 스스로(自) 닦음(修)이다(也). 아래(下) 세 번(三)은 백성(民)을 가르침(化)이다(也). 마지막(末) 한 번(一)은 하늘(天)의 일(載)이다(也).


<해석>

경계해 말한다. 주(奏)는 『시(詩)』에서 모임으로 한다. 『모전(毛傳)』에서 말하기를 “종(鬷)이라는 것은 모임이다. 부(輻)와 주(輳)와 류(流)와 주(湊)라는 글자는 모두 주(奏)를 따른다. 주(奏)도 모임이다.” ‘모여 이르니 말(言)이 없다’는 것은 모든 백성이 말(言) 없는 교화에 모여 오게 함이라 이른다. 시(詩)를 일곱 번 인용하니 위 세 번은 스스로 닦는 것이고 아래 세 번은 백성을 가르치는 것이고 마지막 한 번은 하늘(天)의 일(載)이다.




<원문>

箴曰愼獨則致中和。致中和則成位育之功。故曰民勸民威也。上文云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신독(愼獨)하면 곧(則) 치중화(致中和)한다. 치중화(致中和)하면 곧(則) 위육(位育)의(之) 공로(功)를 이룬(成)다. 그러므로(故) 말하기(曰)를 ‘민권(民勸)’과 ‘민위(民威)’이다(也). 윗(上) 글(文)에서 이르기(云)를 ‘그(其) 성(性)을 다할(盡) 수 있(能)다면 곧(則) 사람(人)의(之) 성(性)을 다할(盡) 수 있(能)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신독(愼獨)하면 곧 중화(中和)에 이른다. 중화(中和)에 이르면 곧 자리잡고 자라(位育)는 공로를 이룬다. 그러므로 ‘백성(民)이 힘쓴(勸)다’와 ‘백성(民)이 두려워한(威)다’라 말한다. 윗 글에서 이르기를 윗 글에서 이르기를 ‘그 성(性)을 다할 수 있다면 곧 사람(人)의 성(性)을 다할 수 있다.’




<원문>

〇君子事天。不動而敬。不言而信。故小民事君子。亦不賞而勸。不怒而威。此天人感應之妙。


<직역>

군자(君子)는 하늘(天)을 섬긴(事)다. 움직이(動)지 않(不)으나(而) 공경한(敬)다. 말하(言)지 않(不)으나(而) 믿(信)는다. 그러므로(故) 평민(小民)이 군자(君子)를 섬김(事) 또한(亦) 상주(賞)지 않(不)아도(而) 힘쓴(勸)다. 성내지 아니하(不怒)여도(而) 두려워한(威)다. 이것(此)이 하늘(天)과 사람(人)의 감응(感應)의(之) 묘함(妙)이다.


<해석>

군자(君子)는 하늘(天)을 섬긴다. 움직이지 않으나 공경한다. 말하지 않으나 믿는다. 그러므로 평민이 군자(君子)를 섬김도 상주지 않아도 힘쓴다. 성내지 않아도 두려워한다. 이것이 하늘(天)과 사람(人)이 반응하는 것의 정교함이다.

중용자잠 56-詩曰。奏假無言。時靡有爭。

<원문>

詩曰。奏假無言。時靡有爭。

是故。君子不賞而民勸。不怒而民威於鈇鉞。

시왈。주격무언。시미유쟁。

시고。군자불상이민권。불노이민위어부월。


<직역>

『시(詩)』에서 말하기(曰)를 “모여(奏) 이르(假)나 말(言)이 없(無)다. 그 때에(時)도 다툼(爭)이 있(有)지 않(靡)다.”

그러므로(是故) 군자(君子)가 상을 주(賞)지 않(不)아도(而) 백성(民)이 힘쓴(勸)다. 성내(怒)지 않(不)아도(而) 백성(民)이 도끼(鈇鉞)보다(於) 두려워한(威)다.


<해석>

『시(詩)』에서 말하기를 “모여 이르나 말(言)이 없다. 그 때에도 다툼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상을 주지 않아도 백성이 힘쓰고 성내지 않아도 백성이 도끼보다 두려워한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詩。商頌烈祖之篇。奏。進也。承上文而遂及其效。言進而感格於神明之際。極其誠敬。無有言說而人自化之也。威。畏也。鈇。莝斫刀也。鉞。斧也。

시(詩)는 「상송(商頌) 열조(烈祖)」의(之) 편(篇)이다. 주(奏)는 나아감(進)이다(也). 윗(上) 글(文)을 연결하(承)면서(而) 드디어(遂) 그(其) 공로(效)에 미친(及)다. 말하자면(言) 나아가(進)면서(而) 하늘과 땅의 신령(神明)에(於) 느껴(格) 다다름(格)의(之) 즈음(際)에 그(其) 참됨(誠)과 공경(敬)을 지극히 하(極)여 설명하는 말(言說)이 있(有)지 않(無)아도(而) 사람들(人)이 스스로(自) 그것(之)에 교화된(化)다(也). 위(威)는 두려워함(威)이다(也). 부(鈇)는 여물(莝)을 자르(斫)는 칼(刀)이다(也). 월(鉞)은 도끼(斧)이다(也).

중용자잠 55-自箴

<원문>

箴曰相在爾室者。愼獨也。天道不動。而君子不弛其敬。此戒愼乎其所不睹也。天道不言。而君子不壞其信。此恐懼乎其所不聞也。此本胡雲峰之說。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네(爾) 거처(室)에 있음(在)을 본(相)다’는 것(者)은 신독(愼獨)이다(也). 하늘(天)의 도(道)는 움직이지 않(不動)는다. 그러나(而) 군자(君子)는 그(其) 공경(敬)을 늦추(弛)지 않(不)는다. 이것(此)이 ‘그(其) 보(睹)지 못하(不)는 바(所)에서(乎) 계신(戒愼)한다’이다(也). 하늘(天)의 도(道)는 말을 하지 않(不言)는다. 그러나(而) 군자(君子)는 그(其) 믿음(信)을 무너뜨리(壞)지 않(不)는다. 이것(此)이 ‘그(其) 듣(聞)지 못하(不)는 바(所)에서(乎) 공구(恐懼)한다’이다(也). [이것(此)은 호운봉(胡雲峰)의(之) 말씀(說)에 근거한(本)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네 거처에 있음을 본다’는 것은 신독(愼獨)이다. 하늘(天)의 도(道)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군자(君子)는 그 공경을 늦추지 않는다. 이것이 ‘그 보지 못하는 바에서 계신(戒愼)한다’이다. 하늘(天)의 도(道)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군자(君子)는 그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이것이 ‘그 듣지 못하는 바에서 공구(恐懼)한다’이다. [이것은 호운봉(胡雲峰)의 말씀에 근거한다.

중용자잠 55-詩云。相在爾室。尚不愧於屋漏。

<원문>

詩云。相在爾室。尚不愧於屋漏。

故君子不動而敬。不言而信。

시운상재이실。상불괴우옥루。

고군자부동이경。불언이신。


<직역>

『시(詩)』에서 이르기(云)를 “네(爾) 거처(室)에 있음(在)을 보(相)아도 또한(尚) 가장 깊숙한 곳(屋漏)에서(於)도 부끄러워하(愧)지 않(不)다.”

그러므로(故) 군자(君子)는 움직이(動)지 않(不)으나(而) 공경하(敬)고 말하(言)지 않(不)으나(而) 믿(信)는다.


<해석>

『시(詩)』에서 이르기를 “네가 거처에 있다고 생각해보아도 가장 깊숙한 곳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움직이지 않으나 공경하고 말하지 않으나 믿는다.


<선행연구>

『중용장구(中庸章句)』

詩。大雅抑之篇。相。視也。屋漏。室西北隅也。承上文。又言君子之戒謹恐懼。無時不然。不待言動而後敬信。則其爲己之功。益加密矣。故下文。引詩。幷言其效。

시(詩)는 「대아(大雅) 억(抑)」의(之) 편(篇)이다. 상(相)은 봄(視)이다(也). 옥루(屋漏)는 집(室)의 서북(西北)쪽 모퉁이(隅)이다(也). 윗(上) 글(文)을 연결하(承)여 또한(又) 군자(君子)의(之) 경계하(戒)고 삼가(謹)고 공구(恐懼)함이 때마다(時) 그렇지 아니함(不然)이 없(無)고 말(言)과 행동(動)을 기다린(待) 이후(而後)에야 공경하(敬)고 믿음(信)이 아니(不)니 곧(則) 그(其) 자기(己)를 위함(爲)의(之) 공로(功)가 더욱(益) 자세함(密)을 더함(加)을 말한(言)다(矣). 그러므로(故) 아랫(下) 글(文)에서 시(詩)를 인용해(引)서 그(其) 공로(效)를 아울러(幷) 말한(言)다.

중용자잠 54-自箴

<원문>

箴曰潛雖伏矣。亦孔之昭者。微之顯也。天道微而顯。故君子愼其獨。愼其獨。故內省不疚。


<직역>

경계해(箴) 말한(曰)다. ‘가라앉(潛)아 오직(雖) 엎드린(伏)다(矣). 그래도(亦) 그것(之)을 통하(孔)여 밝힌(昭)다’라는 것(者)은 미(微)의(之) 드러남(顯)이다(也). 하늘(天)의 도(道)는 미(微)하면서(而) 드러난(顯)다. 그러므로(故) 군자(君子)는 그(其) 홀로(獨)에도 삼간(愼)다. 그(其) 홀로(獨)에도 삼가(愼)므로(故) 내성불구(內省不疚)한다.


<해석>

경계해 말한다. ‘가라앉아 오직 엎드린다. 그래도 그것을 통하여 밝힌다’라는 것은 자세한 것(微)이 드러남이다. 하늘(天)의 도(道)는 자세하(微)면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그 홀로(獨)에도 삼간(愼)다. 그 홀로(獨)에도 삼가(愼)므로 자기자신을 되돌아보아 마음속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원문>

〇朱子曰無惡於志。猶言無愧於心。


<직역>

주자(朱子)가 말하기(曰)를 “‘뜻(志)에(於) 부끄러움(惡)이 없(無)다’는 마음(心)에(於) 부끄러움(愧)이 없(無)다고 말함(言)과 같(猶)다.”


<해석>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뜻(志)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마음(心)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